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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살아있는 양재천, 반갑다 '누치,잉어'야!


살아있는 양재천, 반갑다 '누치,잉어'야! 




7월의 양재천변은 수풀로 무성했다.

발을 들여놓을 틈도 없을만치 빼곡한 풀섶을 가만히 소리죽여 가는 동안
 나는 줄곧 양재천의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팔뚝보다 더 큰 누치와 잉어가 조용히 유영을 하고 있었다.



 한 두마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무리를 짓지 않아도 한눈에 서로를 의식할 정도의 거리를 두고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그들의 조용하고 우아한 유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한발짝 한발짝을 고양이가 먹이로 접근 하는 듯 소리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7월이 만든 수양버들의 무성한 숲 사이로
누치와 숭어가 가끔씩 배를 뒤집기도 했다.




 봄에 본 그들이 아닌 것 같았다.
학여울에서 등용문을 통과한 이들이
마침내 양재천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의 팔뚝보다 더 큰 누치는 얕은 양재천 바닥에 몸을 납짝 엎드렸으나
가끔씩 등지느러미와 꼬리 지느러미가 물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나는 거의 숨이 멎다시피 숨을 죽이고 그들과 최단거리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내가 그들 곁 10m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다는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수양버들 뒤에 숨어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발목을 겨우 넘어 정강이 아래밖에 되지 않는 수심속에서
누치와 잉어는 폭염을 식히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보고 있는 동안
 짱백이를 내리쬐던 땡볕의 존재는 완전히 잊혀졌다.


 


나는 순간 그들과 같이 양재천 바닥을 유영하는 한마리의 물고기로 변했다.
청계산의 바람과 흙의 냄새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양재천을 따라서 유영한다는 것은
마치 포근한 자궁속의 안락함과 같을 것인데,



내가 태어난 이 산하에서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억속에 묻어두고 떠날 산하가 또한 이곳이었다.


 


 엄동설한을 만들어 준 하늘도 내 삶의 일부이며
꽃피운 봄날도 내 삶의 일부이며
폭염을 준 하늘도 또한 내 삶의 일부였다.


 




여울을 통과하는 힘든 여정도 내 삶의 한 모습이었고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 유영을 안겨다 준 것도 내 삶의 일부분인데,


 



내 모든 삶에 감사하는 작은 몸짓이 지금 양재천 바닥을 유영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삶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 감사하고
나는
또 나의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시간이
 숨죽인 양재천변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오랜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과 나의 만남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나는 수양버들의 굵지않은 줄기를 붙들고 작은 희열감에 들떠 있었다.
언제 이런 모습을 보았던가?






생각해 보면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고향집 실개천에서 만났던 그 모습들이 다시금 재현되고 있는 이곳이
마치 상상속의 세상인양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들이 다시금 이 개천에 몸을 누이고 하늘을 바라보듯
 내가 몸 뉠 곳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오랜세월 방황한 세월이 꿈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반갑다. 누치야!...잉어야!)
그들이 내 잃어버린 기억을 되돌려 주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나는 스스로 기억 상실증에 깊이 빠져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 상실증을 오게 한 것은 나를 살찌우게 한 문화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때
양재천을 천천히 유영하고 있는 누치와 잉어는 인간들의 '식용' 물고기가 아니라
이 산하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또다른 귀한 생명체의 일부였다.




 간간히 들리던 매미소리도 나의 작은 발자국을 지켜보며 잠시 소리를 멈추었다.
나는 그들을 등뒤로 한 채
 처음 그들을 만나러 가던 발걸음과 같이
 사부작 거리며 그들로 부터 멀어졌다.




양재천변 수양버들 숲을 나서자 땡볕이 짱백이를 짓눌렀다.

이 꿈같은 일은 어제 오후3시경,
양재천변에서 일어났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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