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의 뒷모습을 본 것일까...!"
할머니의 손에 든 건 빵이다. 시장에서 장을 봐 오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리의 개들이 졸졸 따라다닌다.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의 수도 뿌에르또 몬뜨에 머무는동안 여러번 목격된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할머니의 집으로 따라온 녀석들은 '거리의 개' 신분이다. 하지만 녀석들을 챙겨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때문에 신났다.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했지만 여행자의 눈에 비친 칠레인들의 반려동물 사랑은 남달랐다.
자기 집에 키우는 애완동물에 비해 외면 받을 것 같지만, 이들 곁에는 주로 후원자들이 있었다. 시장 근처에서부터 할머니를 졸졸 따라온 녀석들은 할머니의 시혜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 여행자들이 이런 사정을 잘 모르면 할머니가 기르는 것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오래 전 돌아가신 필자의 할머니께선 뒷뜰에 매어둔 누렁이의 밥을 제때 챙겨주지 못한 어머니께 가끔 핀잔을 주시곤 했다.
"어멈아,자(쟤)들이 말 못하는 죄 밖에 뭐가 더 있노. 제때 밥 좀 챙겨맥여라...!"
할머니께선 누렁이와 사람의 끼니 때를 동시에 두셨다. 누렁이는 할머니가 집에서 나갈 때 혹은 귀가할 때마다 꼬리를 흔들어대며 반가워 하는 것. 그런 누렁이를 어루만져 주시며 좋아하셨던 할머니는 늘 손자와 바둑이 걱정이셨다. 뿌에르또 몬뜨 원도심에서 거리의 개들을 챙기는 할머니를 보면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는 듯 정이 철철 넘쳐난다.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기 27편
-반려동물 잘 챙기는 파타고니아 사람들-
반려동물들은 짖어댈 뿐 (인간이 알아차릴 수 있는)말을 못한다는 건 다 안다. 녀석들은 몸짓으로 말하고 눈빛으로 말한다. 어떤 녀석들은 생계를 위한 필살기(?)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 뒤로 발라당 누워 몸을 흔들어대는 건 오래된 버전이다. 산티아고의 산 크리스토발 언덕에 살고 있던 깜둥이(거리의 개)는 낮은 포복은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이나 먹다남은 음식을 땅에 묻어놓고 꺼내먹기도 했다. 아무튼 녀석들도 생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누군가 녀석들의 밥을 알아서 챙겨준다면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는 게 거리의 개 혹은 애완견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집냥이들은 매우 도도했다. 잘난척 하는 건 기본, 거의 귀족이나 다름없는 행세를 하곤했다. 북부 파타고니아에서 만난 집냥이들이 그랬다. 거기에 비하면 길냥이들은 사는 지역에 따라 표정들이나 사는 처지가 조금씩 달랐다. 도시 외곽에서 만난 길냥이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길냥이들의 표정은 밝은 것. 어디를 가나 말 못하는 짐승들이 인간들 곁에서 사랑을 받는다는 건 더 없는 축복이었다.
그래서 빵 한 봉지를 들고 가는 할머니 곁으로 거리의 개들이 무리지어 가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가 성자처럼 여겨지는 것. 오래전에 읽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서 성자를 뒤따라 다니는 후광을 통해 감동하며 책장이 젖도록 펑펑 운 적이 있다. 사람들이 멀리하는 문둥병 환자 및 가난한 자들과 함께 지내며 입을 맞추는 등 세상 사람들이 조롱과 멸시로 대하던 그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 신의 축복은 가장 보잘 것 없고 낮은 자에게 임했던 것이다.
그게 특정 종교라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세상의 권력과 종교는 썀쌍둥이 같이 진화한 존재들. 신의 은총을 받거나 느낀 자만이 신의 존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산티아고에서 봄을 쫓아 부지런히 남하한 후 이곳에 머무는동안, 잠시 망중한을 즐기면서 숙소 주변을 돌아보고 있는 데, 그곳에서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노래 속에서 빛난 '신의 그림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힘 없고 가난한 자들를 챙기는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낡은 목조건물 계단 앞에서 조신하고 다소곳한 모습으로 여행자와 눈을 마주친 길냥이. 녀석은 외모로 보아 한국같으면 당장 입양되어 호강을 누릴 것 같았다. 아무튼 녀석은 길냥이 신분으로 원도심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턱시도 한 벌을 제대로 챙긴 듯한 집냥이...녀석의 외모는 출중했다.
녀석은 주인이 얼마나 잘 챙겨주고 그루밍을 열심히 했으면 티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길냥이들이 너무 부러워할 것 같은 도도한 녀석...!
희한한 날이었다. 성자의 출현(?)으로 바닷물은 점점 더 차 올라 땡글로 섬 마을 턱까지 차 올랐다.
가까이 당겨보니 이런 풍경...얼마전 바닥을 드러내 보인 땡글로 섬의 협수로와 비교해 보면 천양지차이다. 우리는 10년 전에 머물렀던 언덕 위에서 장차 떠나게 될 여행지를 보고 있는 것. 하늘이 맞닿은 그곳에 하얀 눈이 쌓였다.
언덕을 내려가는 길에 울타리 너머로 보였던 풍경 하나. 학생들이 바이얼린 연습을 하는 가운데 아무렇게나 넘어져 있는 책걸상이 이채롭다. 우리나라에서 이러면 (샘께)혼난다. ^^
버스터미널 앞 수퍼마켓 옆에서 만난 가난한 녀석. 녀석들은 어디로 다니는지 바쁘다. 이날은 작정을 하지도 않았지만 유난히도 반려동물들이 눈에 많이 띈 날이었다.
숙소로 귀가하는 길에 만난 모자의 모습이 정겹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뒤돌아 보니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뿌에르또 몬뜨는 10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거리에는 자동차들이 더 많아졌고 원도심은 점점 더 인기척이 줄어갔다. 머지않아 이곳에서 살던 반려동물들도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 녀석들이 주로 기거하던 음지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었던 것. 칠레인들이 녀석들을 미워하진 않지만 도시가 현대화되기 시작하면서 녀석들은 바닷가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시내 한복판의 영역에서 밀려난 녀석들이 몸을 숨길 데가 점점 좁아지고 있었던 것.
버스터미널 앞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풍경 하나. 울타리 너머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들장미를 눈여겨 봐 두시기 바란다. 파타고니아 중심에 위치한 한 곳에서 산등성이를 빼곡 메운 군락지를 만나게 된 것. 차차 소개해 드리도록 한다.
숙소를 나서면서 아름다운 한 장면과 마주친 이날은 숙소가 떠들썩 했다. 민박집 주인 할머니의 사위와 딸 그리고 그녀의 파트너와 우리가 주방 안에서 요리를 만들어 먹은 것. 모처럼 온가족(?)이 한데 모여 음식을 나눈 것이다. 비수기 때 찾아온 우리는 이분들과 가족처럼 지냈다. 창밖에서 주방을 향해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한 분은 중국계 칠레인이었다. 그는 민박집 지배인으로 자기 이름을 '용(龍)'으로 부르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매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장난을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참 고마웠던 사람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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