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표정은 왜 저렇게 굳어있는 것일까...!"
이방인을 잔뜩 경계하고 있는 듯한 표정의 고양이 한 마리는 길냥이 신분이다. 녀석은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로스 라고스 주의 수도 뿌에르또 몬뜨 시내가 굽어 보이는 높은 지대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살고있는 곳. 뿌에르또 몬뜨에 머무는동안 '거리의 개'들은 수도 없이 많이 봐 왔지만 길냥이는 딱 두 번 밖에 만나지 못했다. 한 번은 시내에서 그리고 두 번째 만난 녀석이 심통난 듯한 표정의 녀석이다. 그렇다고 고양이들을 못 만난 건 아니었다.
녀석들은 대체로 주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반려동물로 창가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녀석의 처지는 조금은 딱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비야~"하고 아는체 했지만, 한국말이라 잘 못알아 듣는 지 꿈쩍도 않는 것. ^^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을 통해서 카메라에 담은 여행사진의 주제(자연.사람.길)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 중에 한 녀석이다.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기 25편
-길냥이의 표정에 묻어난 위험한 여행지-
녀석들은 거리의 개 혹은 길냥이처럼 인간들 곁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이었다. 그런데 이방인을 잔뜩 경계하고 있는 듯한 표정의 길냥이를 통해 도시인들의 인심을 넌지시 읽을 수 있는 것. 사람들로부터 애정을 듬뿍받고 자란 반려동물들은 표정이 착해보이는 반면 길냥이들은 경계심 가득한 표정이다. 이같은 모습은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시 외곽에 사는 빈곤층에 대한 도시인들의 경계심이 보통이 넘는 것. 사람들은 빈곤계층이 모여사는 곳은 거의 출입을 삼갔다. 그곳은 사람들로부터 '우범지역'으로 불리고 있었던 것. 길냥이가 살고있는 동네가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 머무는동안 뿌에르또 몬뜨 항구 주변과 바닷가 혹은 시내는 자주 다녔다.
그러나 처음으로 시내를 굽어보는 낮선 도시 언덕 위로 올라서자, 현지인이 카메라를 가리키며 "강도를 당할 지 모르니 조심하라"며 귀뜸을 해 준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고가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강도의 표적'이 되기싶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내는 " 돌아가자"며 잔뜩 쫄아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자동차들이 다니는)큰 길을 따라 걷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그 과정을 돌아본다.
여행자가 해선 안 될 위험한 모험
우리가 뿌에르또 몬뜨에 머물동안 늘 이 길을 오고갔다. 도로 끄트머리에 보이는 2층 목조건물이 우리가 묵었던 민박집이었다. 외장하드를 열어 보니 마치 우리가 떠나온 고향집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이 많이 든 곳이다. 한 때 이곳은 원도심으로 사람들이 붐볐지만 지금은 사람 보다 자동차들이 더 많이 다닐 정도로 인적은 드문 곳으로 변했다.
#1 칠레는 거리의 개들 천국
숙소에서 시내쪽으로 가는 길에 자주 눈에 띈 풍경들. 한 노인 곁으로 따라다니는 세 녀석은 거리의 개들로 노인의 관할구역(?)에서 연명해 가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거리의 개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것을 권유하고 범칙금까지 물게 하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범칙금을 문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누가 범칙금을 물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칠레에서는 거리의 개들 천국이자 사람들이 거리의 개들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녀석들의 삶에 크게 신경도 쓰지않고, 녀석들도 사람들 곁에서 조용히 지내곤 하는 것. 그 덕분에(?) 가끔씩 녀석들의 '응가'가 밟히기도 한다.
#2 두고온 고향같이 정든 마을
시내로 나가는 길에 들렀던 화방(畵房)겸 화실에서 아내는 수채화 한 점을 발견하고 좋아했다. 배 두척 곁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표정들. 그러나 아직은 하늘이 우중충하다. 우기가 끝나가는 북부 파타고니아의 하늘을 닮았다. 가끔씩 빗방울이 흩날리다가 개이고 다시 먹구름이 몰려다니는 날씨.
뿌에르또 몬뜨에 머물 당시 매일같이 뻔질나게 드나들던 낮익은 길이다. 멀리 뿌에르또 몬뜨 앞 바다가 솟아올라 보인다. 저 길을 돌아서면 시내로 가는 곳.
위에서부터 이어진 풍경은 이렇다. 자동차들이 신호대기 중인 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곳이며, 뿌에르또 몬뜨 항구로 이어지는 길이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시내로 진입한 다음 바닷가를 둘러보고 오늘의 목적지로 갈 예정이었다.
#3 내가 만난 칠레인의 모습
뿌에르또 몬뜨는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풀꽃 세상이다. 우기가 끝나가는 북부 파타고니아 곳곳은 풀꽃들의 대합창이 시작되는 곳. 흙부스러기만 있다면 어디든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의 천국이다. 희한한 건 도시로부터 도시인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식물들이 보다 잘 자라고, 사람들의 심성도 풀꽃들을 닮아 아름다운 것. 남미일주와 파타고니아 여행을 통해서 만난 칠레인의 모습이 주로 그랬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국도를 따라 여행을 하다보면, 대도시를 중심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범죄율이 떨어지는 것. 인구 30만 남짓한 로스 라고스 주의 수도 뿌에르또 몬뜨도 그 중 한곳이었다. 칠레의 7번 국도 시발점인 이곳을 떠나는 순간부터 범죄율이 제로에 가깝다고나 할까. 파타고니아 중심에 발을 들여놓으면 전혀 느끼지 못하던 신체적 위협을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끼게 되는 것.
특히 산티아고에선 도시 중심으로부터 벗어날수록, 빈곤층이 살고있는 곳으로 가면 갈수록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자들이 이러한 점을 알아두면 아무데나 함부로 다니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의욕이 지나쳐 방심한 결과 우리는 그런 법칙(?)을 한순간 잊어버리고 위험한 모험을 세 번씩이나 하게 된 것이다. 모험 덕분에 남들이 느끼지 못했던 풍광을 누리긴 했지만, 뒤돌아 보면 무모한 짓이었다. 이번에 찾아가는 곳도 그 중 한 곳이었다.
시내 중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며 빈곤층이 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앙증맞은 풀꽃들이 자지러진다.
시내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진출한 뒤 숙소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대도시 어디든지 자리잡고 있는 맥도날드가 위치한 곳이 뿌에르또 몬뜨 시내 중심가의 모습이다.
원도심의 낡은 목조건물만 보다가 시내 중심에 들어서면 딴나라 풍경같다.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차림만으로 아직도 꽤 차가운 날씨라는 걸 알 수 있다.
#4 짐작되는 뿌에르또 몬뜨 시민들 심성
참 재밌는 일이다. 사람들이 북적이던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장면들. 나지막한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작은 뜰에 무질서 한 듯 조화롭게 피어있는 잡초같은 풀꽃들. 이곳에 사는 시민들의 심성이 절로 느껴지는 모습이다. 칠레의 파타고니아 지역 뿐만 아니라 어느곳으로 가 봐도 사람들은 늘 식물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 서울에서 맨날 콘크리트 건물과 정형화된 화단만 봐 오다가 이런 풍경 앞에서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이다. 도시로부터 멀어지면 사람들이 순박하고 진실한 모습을 보인 데는 식물과 인간의 보이지 않는 교감 내지 소통은 없었을까.
한 업소의 출입문과 계단을 보면서 이곳 사람들의 미적 감각에 놀라게 된다. 하찮아 보이는 식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 우리 같았으면 계단 아래 돋아난 민들레와 잡초를 모두 뽑아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들은 웬만하면 잡초나 풀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다시 부러움증이 되살아난다.
여행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공터에 버려진 빈 술병 조차 샛노란 풀꽃들과 어우러져 눈길을 끄는 곳.
#5 길냥이의 표정 경고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시내를 벗어나 언덕길을 따라 뿌에르또 몬뜨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시내를 벗어나자 낡은 목조건물이 쓸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게 목격된다. 이곳에서 한 분이 필자의 카메라를 가리키며 "강도를 당할 지 모르니 조심하라"며 귀뜸을 해 준 것. 이때부터 충고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강도짓을 할까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것. 점점 더 인적이 드물어지는 곳이었다. 따라서 큰길을 따라 걷기로 하면서 주변의 풍광을 기웃거렸다.
우기가 끝나가고 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북부 파타고니아의 봄은 생기가 철철 넘쳐났다.
꽃의 요정들이 지천에 널렸는 데 이런 곳에서 강도를 조심하라니...!
어디를 보나 그림같은 풍경들...우리는 주변 풍광에 빠져들며 대로를 잠시 벗어나고 있었다.
시내에서 올려다 본 높은 언덕에 서자 시내가 한 눈에 조망되는 곳. 숲에 둘러싸인 시내 너머로 땡글로 섬이 보인다. 눈 아래로 보이는 집들은 대체로 뷰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보이는 곳.
시내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가난한 이웃들이 살고 있었다. 양철 지붕 위의 굴뚝은 연기를 얼마나 피웠는지 까맣게 그을린 모습.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조금 전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가운데 우리는 조금전의 충고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뿌에르또 몬뜨를 기억해 줄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 것. 이곳 사람들은 나무(판자)를 이용해 지붕을 엮고 고깃비늘처럼 벽면을 이어붙여 비와 바람을 피했다. 그렇게 지은 집들이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풍기는 멋이 너무 아름다운 곳. 내부는 난로에 장작불을 지펴 우기를 견디는데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쪽 벽면은 신식 판넬로 리모델링을 했다. 오솔길을 따라 출입문으로 이어진 작은 통로가 장난감처럼 귀엽다.
서울에서 눈만 뜨면 봐야했던 콘크리트 건물 조차 주변 풍광과 너무 잘 어울리는 곳. 그곳에 우기가 끝나가며 봄이 깊숙히 찾아든 것이다.
가끔씩 빗방울이 흩날리는 가운데 우리는 풍광에 쫓겨 자꾸만 '우범지역'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
사방을 둘러봐도 우범(虞犯)이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었다고나 할까.
도시 외곽 높은 곳에 사는 가난한 이웃의 텃밭을 살펴보니 너무 정겨운 곳. 우범 대신 드러난 풍경은 저 멀리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공동묘지였다. 이곳 사람들의 육신은 사후에도 가족들 곁에서 함께 기거하는 듯한 모습. 우리는 저 멀리서부터 이곳까지 걸어왔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 지 인적이 거의 끊긴 곳.
그곳에 길냥이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길냥이 표정처럼 경계해야 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길냥이를 아는 척 하는 순간 오토바이가 소리가 나서 뒤돌아 보니, 오토바이 번호판도 없고 새까만 복면을 쓴 라이더스 차림의 한 사내가 다가오는 것. 직감적으로 이 사내가 우범 용의자 일 가능성이 짙다는 생각이 퍼뜩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카메라를 가슴에 대각선으로 둘러메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했다. 상대는 한 명. 총을 가지지 않았다면 근처에 쓸만한 각목이 있었으므로 호락호락 당하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토바이는 점점 가까이 다가서고 있고 나는 각목의 위치로 슬며시 이동했다. 아내는 녀석을 전혀 의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러자 녀석은 방향을 틀어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우리는 사지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에서 소리를 질러봤자 누구 하나 달려올 사람도 없는 외딴곳이었던 것. 녀석이 저만치 사라지는 것 같더니 다시 돌아와 우리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사라졌다. 눈만 빼꼼히 내 놓은 녀석의 까만 복면이 자꾸만 오버랩된다. 그때부터 정말 무모한 짓을 한 것같다는 생각이 퍼뜩들며 숙소로 걸음을 재촉한 것.
여행지의 경험과 이곳 사람들의 소문에 따르면 우리 곁에 다가온 복면 라이더스는 '오토바이 날치기' 용의자가 유력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 행동은 자칫 여행자가 해선 안 될 위험 천만한 모험이나 다름없었던 것.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신식으로 단장한 재래시장의 풍경. 지난 며칠동안 뿌에르또 몬뜨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외딴 곳이나, 땡글로 섬 꼭대기로 떠난 소풍이나, 이곳에서 만난 위험했던 상황을 돌아보면 섬찟한 것. 여행자들이 피해야 하거나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돌아본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게으른 강도(?)가 가지 못할 곳을 다녀왔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길냥의 표정으로부터 "아저씨, 여기서 얼쩡거리시면 안 돼요!" 하는 것 같은 위험을 알리는 '경고의 표정'이 묻어난다.
여행지에서 객기를 부리면서 모험을 강행한 결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었지만, 여행길을 망칠 뻔한 위험했던 일이었다. 칠레의 제2도시 발파라이소 언덕에 이은 두 번째 '위험의 경고'를 받은 곳이었다. 그게 카메라 때문이었던 것.
숙소로 바쁘게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풍경 하나가 다시 발길을 붙든다. 이곳에 흔한 찔레를 물받이통에 받쳐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가 절로 느껴지는 것. 하찮아 보이는 식물에게 배푸는 씀씀이가 이런데 가난한 이웃들은 괜히 '우범지역'으로 낙인 찍힌 채 살아가는 것일까.
다시 원도심으로 들어서자 가로수에 봄 소식이 잔뜩 묻어났다. 가지치기를 한 미루나무에 새싹들이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낮익은 풍경. 이날 이후부터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우범지역은 두 번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들지않았다. 가장 전망이 좋은 지역을 찾는 여행자가 범죄의 표적으로 변할 수 있는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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