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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수원 서호,축만제 항미정 답사 후기[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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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서호,축만제 항미정 답사 후기
-1편,철새와 반영이 아름다운 가을 호수-




"정조대왕은 훗날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될 줄 예견하셨을까?..."


면경처럼 잔잔한 수면 위로 드리운 가을 풍경,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반영이 살아 움직인다. 수원의 서호에 둥지를 튼 철새들이 어느 군주의 음덕을 입고 쉬어가는 곳. 서호의 작은 인공섬은 철새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으며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녀석들은 주로 나뭇가지에 앉아 볕을 쬐고 있었지만, 무리를 이탈한 몇 녀석들이 고요한 아침을 깨우며 '끼룩끼룩' 거리며 수면 위로 그림자를 남기며 사라지곤 했다. 





서호 뚝방길을 따라 호수 한가운데를 보고 있노라면 섬 빼곡한 철새들과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작은 섬으로부터 아련한 반영이 드러난다. 지난 주말(14~15일) 이틀동안 정조대왕의 얼이 깃든 수원화성의 만추와 수원 서호의 축만제 항미정 등을 답사하고 돌아왔다. 바쁘게 돌아본 일정이었지만, 이곳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묘한 감흥에 빠져들곤 하는 곳이 수원이었다. 그 아름다운 현장을 여러편으로 엮어봤다.





풍경의 반영과 역사의 반영

수원화성으로 발길을 돌리기 전 약간은 아쉬움이 들었다. 이곳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서울은 가을비와 바람으로 나뭇잎 대부분이 낙엽으로 변했으므로 수원이라고 별 수 없었을 것. 수원화성을 화려하게 물들인 단풍이 다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며 수원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수원이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든 생각은 참 좋은 세상이라는 것.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대략 200여년 전에는 말을 타거나 걸어서 가야했던 곳. 





1795년, 화성에서 벌인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따르면. 8일간의 행차기간(축제)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게 이동거리였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의 묘역인 현륭원으로 가는 행차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서부터 말을 타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위해 100리길(39km) 정도 떨어진 화성(오늘날 수원)으로 이동한 것.





정조대왕과 6천 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호위군사가 이틀동안 이동한 거리였다. 그러니까 8일간의 행차기간 중 4일간은 대부분 이동거리였던 것이다. 정조대왕은 이 행차에 대해 "단군이래 천년만의 경사"라고 평가했다고 전한다. 수원화성은 그런 경사가 벌어졌던 곳. 수원화성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시간은 자꾸만 과거로 흐르는 듯, 서호 뚝방길을 걸으면 자연스럽게 정조대왕의 능행차가 떠오르는 것이다. 수면 위로는 철새들과 가을풍경의 반영이, 서호 뚝방길에 서면 역사의 반영이 펼쳐지는 곳.





수원 서호(西湖)의 비하인드 스토리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가마우지들이 떼지어 나무를 점령하고 있는 곳. 내륙의 작은 호수에서는 보기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녀석들의 배설물(구아노,guano)이 백화현상을 만들며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수원 서호는 이 작은 섬을 중심으로 둘레가 약 2km(1.9km)에 달하며 저수량은 14만 8천톤에 이르는 곳으로 알려졌다. 천천히 걸어도 대략 1시간정도면 호수를 둘러볼 수 있는 크기다. 이곳에서 맨 먼저 만나게 된 풍경이 호수에 비친 작은섬의 반영이었다.




참 독특한 풍경이었다. 작은 섬 둘레로 유실을 막기 위한 축대가 쌓인 흔적 가까이 가마우지들의 배설물이 만들어낸 백화현상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색채를 띄게 된 것이다. 그 곁으로 수 많은 철새(청둥오리)가 깩깩거리거나 꽈곽거리며 아침을 깨우고 있는 곳.



 

녀석들의 모습을 가까이 확대해 보니 이런 풍경이다. 마치 열대우림 속 호수를 바라보는 듯한 낮선 풍경들. 잎 떨군 나뭇가지에 가마우지들이 잎 대신 매달린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됐다. 




정조대왕께선 이런 풍경을 예견이나 했을까...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저만치 떨어져있는 가마우지와 청둥오리 떼를 보고 있자니, 정조대왕이 서호를 축조한 목적과 전혀 달라보이는 현상이 서기 2014년 11월 어느날 수원 서호에 발현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수원시(염태영 시장)에서는 우리 곁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망원경을 설치해 두었다. 그런데 망원경에는 동전을 달라는(?) 동전투입구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ㅋ 공짜다. ^^) 




공짜 망원경으로 살펴보면 가마우지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한 눈에 관찰된다. 가마우지(cormorant)가 서호에 서식한다는 건 이 호수가 친환경적이며 생태환경이 좋다는 걸 의미한다. 이곳으로 유입되는 서호천의 물이 수 많은 가마우지들을 불러모으고, 서호에 이들의 먹이인 물고기가 풍부하다는 의미인 것. 





정조대왕께옵서 서호를 축조한 목적은 둔전에 물을 대기 위함이었는 데, 

어느새 철새들의 도래지로 자리잡아 도시인들의 삶의 피로를 덜어주는 공원으로 변하게 된 것.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 서호에 나타난 것이다. 





가마우지들은 수중에서 헤엄도 치기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여러 지역에서는, 이 검은 광택이 나는 가마우지를 '고기잡이용'으로 길들여 이용하기도 했다. 목 부분에 띠를 만들어 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만들고 녀석들이 사냥한 물고기를 인간이 나꿔채는 조금은 잔인한 수법. 녀석들은 그렇게 인간들과 친해진(?) 조류이기도 했다.





또 가마우지류는 사람에게는 거의 이용 가치가 없는 물고기를 잠수하여 잡아먹고 사는 것으로 알려졌는 데 춥고 건조한 내륙 지방과 중앙 태평양제도를 제외한 해안.호수.강 등지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마우지의 둥지는 해초나 구아노를 재료로 하여 벼랑 위에 만들거나, 잔가지로 나무나 수풀 위에 만든다. 또 2~4개의 회백색 알은 갓 낳았을 때는 색깔이 푸르스름하며 3~5주 후에 부화하고 3년쯤 후에 성체가 된다. 





필자가 만나본 가마우지 서식지는 지구의 땅끝(띠에르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 비글 해협에서 만난 적 있는 매우 친근한 녀석들. 녀석들을 보자마자 그때 추억이 되살아 나는 동시에 정조대왕이 남기신 업적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이다.





수원 서호는 정조대왕 당시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곳의 둔전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저수지였다. 둔전(屯田)이란, 고려와 조선 시대, 군졸이나 서리, 평민 등에게 아직 개간하지 않은 땅을 개척하여 경작하게 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확물의 일부를 지방 관청의 경비나 군대의 양식으로 쓰도록 한 밭을 일컫는 것. 




수원화성에는 네 곳에 둔전을 만들고 네 개의 저수지를 만들었는 데 서쪽에 만든 저수지를 서호라 불렀다. 서호(西湖)는 수원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에 축조한 저수지로 원래 '축만제(祝萬堤)'로 불리다가 화성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호라고 칭하고 있다. 위 그림의 제방에 축만제 표석이 서 있고 그 아래로 둔전이 펼쳐진 것이다.




저수지 네 개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 데 서쪽은 축만제,북쪽은 만석거,동쪽(수원시 지동 쪽)은 흔적이 사라졌고,사도세자의 묘역(현륭원)이 있는 남쪽은 만년제로 불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저수지는 정조 19년에 축조된 만석거로 알려졌다. 정조대왕은 능행차 당시 이곳을 경유해 장안문을 통과하고 현륭원으로 이동하는 원행을 했던 것. 





기록에 따르면 축만제는 저수지 가운데 작은섬을 만들고 꽃나무 등 조경수를 조화롭게 심고 호수에는 연(꽃)을 심었으며, 호수 남단의 약간 언덕진 곳에는 영화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만석거 부근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했으나, 현재 영화정이 위치한 자리는 1996년 본래의 자리에서 북동쪽으로 이전하여 복원한 것. 축만제는 만석거 축조 4년 뒤 정조 23년(1799)에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만들었는 데 규모면에서 화성 주변의 저수지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 저수지 위로 철새들이 무시로 날아들며 아름다운 비행을 하는 곳. 축만제 뚝방길에 서면 아름다운 가을 풍경과 함께 효심 깊은 정조대왕의 얼이 동시에 호수면 위에 반영되곤 했다. 우리 곁에서 누군가 이웃을 위해 음덕을 쌓는다면 천년의 세월을 두고 당신을 기억하게 되는 것인 지, 한 때 병졸이나 백성들을 위해 축조한 작은 호수가 사람들과 철새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정중동의 참 편안한 호수 정경이 펼쳐진 곳...!



내가 꿈꾸는 그곳의Photo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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