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이
애늙은이 호박이 되다니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애호박은 호박의 일종으로 호박 중에서도 성장과정에서 덜 자라게 되어 푸른빛을 띄고있는 풋호박의 일종이다. 애호박은 보통 누런빛을 띄고 커보이는 늙은 호박과 달리 푸른빛이 남아있기 때문에 '어린호박' 또는 '젊은호박'으로 부르거나 '청호박'이라고도 불리운다. 늙은 호박이 주로 죽, 찜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애호박은 전, 청국장 및 된장찌개 고명, 국수의 고명, 무침요리 등으로 사용한다는 거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맨 처음 등장한 호박 사진 한 장은 애호박인 듯 애늙은이로 변한 애호박이다. 녀석이 왜 이렇게 애늙은이호박으로 변했는 지 호박계의 다큐(documentary)로 담아봤다. 기록 시간은 지난 6월 8일부터 7월 19일까지 한 달이 더 됐다. 호박도 유년기와 노년기가 있으며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운명 등이 존재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보면, 애호박의 일생이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필자주>
작은다큐,애호박이 애늙은이 호박 될 때까지
지난 6월 8일, 생활사진 촬영 재미에 푹 빠진 필자('나'라고 함)의 눈에 도시의 한 낡은 아파트단지의 풍경이 재밌게 다가왔다. 대략 30년도 더 된 이 아파트의 창가에는 화분들이 올망졸망 놓여있는 것. 처음보는 풍경은 아니지만 뺀질뺀질 어디 때 하나 묻지않은 신식 아파트 보다 정감이 넘쳐흘렀다. 창가에 놓여진 물건만 보면 주인의 성품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사람사는 모습이 정겨운 곳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집(아파트)을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고 있기도 했지만, 이 동네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것과 담을 쌓았다고나 할까. 이 동네에서 18년을 살아온 김 아무개 씨가 그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동네투어를 하고 난 뒤 음료수를 마시며 수퍼에서 얘기를 나누는동안 김 아무개 씨(67,수퍼 운영)는 이렇게 말했다.
"...잘 모르시구먼요.
이 동네 사는 사람들 92%가 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8% 정도가 (집)주인인 데 주로 노인네들이고요.
집 주인들은 다 딴 데서 살지요."
김 아무개 씨의 말에 따르면 이 동네 사람 대부분은 전세를 사는 사람들이었다. 지은 지 30년도 더 된 아파트단지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주로 세입자란 말. 1982년도에 분양된 이 동네는 연탄보일러를 때던(사용하던) 곳이어서 아파트 대부분은 다시 도시가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그러나 아파트 외관은 어쩔 수 없었는 지 어디를 가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낡은 아파트였다. 하지만 내가 본 이 아파트들은 낡긴 했지만 쓰러질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2014년 6월 20일
이 동네의 역사적 배경을 참조하면 '애호박'이 보일까...이 동네의 매력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손이 덜 간 화초들과 아파트 풍경이었다. 주로 세 들어 사는 (상대적으로 젊은)사람들은 화초를 기르는 일에 게으른 반면, 아파트단지 곳곳에 호박이나 고추 등을 심어먹고 소일하는 사람들 다수는 노인들이었다. 김 아무개 씨가 일러준 말이 옳았던 것. 그동안 동네투어를 통해 발길이 머문 곳은 주로 그런 곳이었다.
그곳은 아파트입구나 화단에 텃밭을 일구어 콘크리트와 직선이 주는 스트레스를 피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 애호박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 6월 20일 그곳에서 한 애호박의 기구한 삶이 시작된 것이다. 노끈을 길게 매단 곳. 애호박 줄기는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7월 6일
신기했다. 대략 보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찾아가 본 그 자리엔 기적처럼 작은 애호박 하나가 덩그러니 노끈에 매달려있었다. 그동안 이곳엔 국지성 호우가 세차게 내렸고 보름달이 절반은 더 변했다. 한낮의 찌는 더위는 말할 것도 없고...
녀석을 올려다 보니 얼마나 대견했는 지 모른다. 도시여행의 참맛은 이런 것일까. 괜히 둘레길 다닌답시고 땀을 뻘뻘 흘리지 않아도, 슬리퍼 하나 직직 끌고 다니며 짬 날 때마다 녀석을 관찰하는 재미...(ㅋ 누가 알겠는가. ^^) 마음 같아서는 녀석을 싹둑 잘라 된장찌게에 쏭쏭 썰어넣으면 싶을 정도로 애호박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남의 것...
7월 9일
사흘 후...다시 그 자리로 찾아갔을 때 큰 변화는 없었다. 그 대신 애호박 곁에 있던 호박들의 성장을 눈여겨 봤다. 녀석들은 언제쯤 열매(애호박)를 맺을까. 궁금했다. 인간들도 그렇지만 식물들도 (생활)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살아가는 데 불편함도 없어야 겠지만 무엇보다 자양분이 풍부해야 될 것. 사람들은 그걸 위해 인생 전부를 건다. 널리 알려진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그 정도가 얼마만큼인지 이렇게 설파했다.
"사람이 제일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돈을 벌기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기꺼이 희생하기 때문이죠.
또한 나중에는 그 돈으로 자신의 건강을 다시 회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너무 걱정하며 살아서 현재를 즐기지 못합니다.
그 결과 현재도 미래도 살지 못하는 셈이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고
결국에는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7월 10일
달라이 라마의 이같은 깨달음은 호박계(식물)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뿌리에서 열심히 자양분을 날라 줄기를 키우고, 줄기는 다시 잎과 꽃을 피우는 한편, 꽃을 통해 열매를 맺으며 애호박의 일생을 사는 것. 그런데 같은 시각 아파트 창가 화분에 심겨진 호박은 맨땅에 심어진 호박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이런 걸 모르시는 분은 없을 듯) 금강초롱 자생지가 된 아파트 한켠에 심어진 호박은 날로 푸르름을 더하고 튼실한 꽃을 피우는 데 비해 화분에 심겨진 호박은 연두빛에서 누런빛으로 점점 더 퇴색해 가는 것.
7월 12일
사흘째 되던 날 다시 찾아가 보니 애호박은 몰라보게 커져 있었다.
아직 배꼽(?)도 떨어지지 않은 녀석은
애호박 티를 벗고 굵직하게 자라고 있었다.
애호박이 아니라 '청년호박'이라 불러야 옳았을까.
녀석의 겉모습으로부터 몸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애호박 주인이 '첫 수확'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녀석은 된장찌게 혹은 애호박 본연의 임무(?)로 사라졌을까...
7월 13일
녀석은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고있었다.
몸무게가 불어나자 외줄 아래로 축 처진 애호박.
저녁 햇살에 비친 실루엣이 예술이었다.
(우리는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그런데...
녀석과 함께 심어진 호박들의 생육상태가 매우 부실했다.
마치 늦가을 풍경을 보는 듯...
7월 15일
같은 시각 애호박이 자라고 있던 화분 밖...
아파트단지 한켠 맨땅에서 자라고 있던 호박은 생김새부터 달랐다.
7월의 녹음이 빼곡히 결집된 호박닢과
건강미가 철철 넘치는 호박꽃!...
이곳에선 호박꽃의 축제가 한창이었다.
마음껏 열어젓힌 호박꽃에 나비가 날아들고
아침 햇살의 호박꽃은 꿈을 꾸는 듯 하다.
자연이 만든 풍경과 사람들이 가꾼 (인위적인)풍경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화분 하나에 의지한 애호박의 통장(?)이 거덜날 즈음
맨땅에 뿌리박은 호박은 생애 최고의 환희에 들떠 있는 것.
한줄기 노끈에 매달려 아슬아슬한 삶을 살던 애호박은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녀석들은 꽃잎을 떨굴 때 조차도 생기가 넘쳐보였다.
또 얼마나 당당한 지...
호박꽃도 꽃이다!...
그렇다면 호박의 발육상태 혹은 운명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호박씨 하나 조차 운명(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는 모습을
옛사람들은 운칠기삼(運七技三)에 견주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운칠기삼은
청나라의 포송령(蒲松齡)이란 작가의 작품 <요재지이,僥齋志異>에 실린 이야기로
각색을 하면 이러하다.
"한 고시생이 신림동에서 열공을 했지만
번번히 낙방해 어느날 가출했다.
그는 광장시장에서 술을 잔뜩 퍼마신 후
한강으로 뛰어내릴 작정을 하고 마포대교로 갔다.
그런데 막상 난간 앞에 다다르자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물주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자 조물주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러
술시합을 시켜놓고 고시생에게 말했다.
정의의 신이 더 많이 마시면 니가 분개한 것이며
운명의 신이 더 많이 마시면 니가 체념하는 게 옳다는 것.
이 술 시합에서 운명의 신은 일곱 잔을
정의의 신은 석 잔 밖에 못 마셨다.
그리고 조물주가 고시생에게 말했다.
세상은 정의대로 행해지는 게 아님.
불합리한 운명의 장난이 꼭 따라다니는 것.
세상은 7할의 불합리가 지배하긴 하나
3할의 이치가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하게나."
애호박은 애석하게도 운칠기삼의 불합리한 운명 속에 빠져든 것일까.
애호박은 이 동네에서 9할이 넘게 사는 세입자를 피해(?)
(1할도 안 되는)8푼에 불과한 한 원주민의 화분 속에서 싹을 튀우고 꽃을 피운 것.
그리고 7월이 다해가는 어느날, 단 한 알의 애호박을 맺은 것이다.
참 얄궂은 애호박의 운명이었다.
같은 시각의 다른 모습...
맨땅에 뿌리내린 호박이 짙은 초록색과 건강한 황색을 내놓을 즈음
애호박은 외줄타기를 하며 운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애호박의 덩치는 더 커지지 않았다.
그대신 점점 더 누렇게 변해가며
애늙은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흘 후 다시 찾아가 본 애호박...
애호박 본래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7월 19일
그리고 그 다음날...
녀석은 완전히 애늙이호박으로 변해있었다.
뿐만 아니라 줄기와 잎과 꽃 모두 늦가을을 닮아
세상으로부터 작별을 준비하는 모습들...
한 원주민이 애지중지 키운 애호박은
끝내 한 알 밖에 열리지않았다.
애늙은이 호박 한 알...
녀석은
하필이면 화분 속에 뿌리를 내려
운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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