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앞에
청포도가
익어간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진귀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도시의 아파트단지에서 포도덩굴을 보는 것도 쉽지않지만, 포도 송이마다 돈봉투를 씌워두었으니 포도가 다 익으면 한 알 한 알 '돈을 꺼내 먹는 기분'이 들까. 돈봉투의 또다른 용도를 통해 도시가 환해지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청포도를 보고 이렇게 노래했지.
청포도(靑葡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청포도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님의 서정시 속에 내포된 칠월의 청포도는 도시의 아파트단지 속 청포도와 전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청포도를 통해 고향과 조국을 그리워 하고 기다리는 모습이 오롯이 배어든 노래. 그렇지만 도시의 아파트단지 속에 올망졸망 매달린 포도송이와 돈봉투를 보니 그리움의 대상이 전혀 뜻밖이니 이를 어쩔꼬.
서울 사람
사는 아파트단지에
올망졸망 매달린
돈봉투를 보니
돈 말고
눈에 뵈는 게 없네
카메라를 들고 도시 한켠을 살피다 보면 재밌는 풍경이 한 둘이 아니다. 쓰윽 지나치다가 눈에 띄는 풍경 하나에 숨겨진 이야기를 마음껏 상상해 보는 것이다.
돈 때문에 돌아버린 사람들.
돈 때문에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들.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인류에 관해서 가장 놀라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집 앞에 매달린
돈 봉투를 보니
괜히 흐뭇해진다.
저
봉투 속에 든 게
포도가 아니라
돈이라면,
돈다발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다면...
'개포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홍날개꽃매미의 화려한 외출 (0) | 2014.07.12 |
---|---|
누가 긁어 놓았을까요 (14) | 2014.07.11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차장 (1) | 2014.07.08 |
고슴도치를 사랑한 열혈 청년 (4) | 2014.07.08 |
도라지,도시에서 태어난 도라지꽃 (0) | 2014.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