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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Hornopiren

[파타고니아]봄에 다시 가 보고 싶은 곳


Daum 블로거뉴스
 

봄에 다시 가 보고 싶은 곳
-죽음 앞 둔 개들의 눈빛이 준 교훈-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자연은 어느날 운명같은 풍경을 우리에게 나누어 준다. 운명을 내린 '신의 한 수'는 그렇게 공평하게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적지않은 사람들은 운명으로부터 피해가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한다. 그 운명에 눈을 마주친다고 해서 행복하고 피해간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닐 것. 각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세상의 행복과 불행이 나뉜다고나 할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불행한 일에 속할 것. 이른바 아름다움에 대한 불감증이다.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결과물이 이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감성 등으로 도출될 텐데, 최소한 두 가지를 다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이웃을 둘러보면 그러하지 못한 것 같다. 세상을 머리로 계수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물이 정치.경제적 가치로 보일 수도 있고, 가슴으로 느끼게 된 사람은 문화와 예술 등으로 행복의 잣대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 물론 오차는 무궁무진 하다. 세상사람들은 닮은 듯 무엇 하나 같은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블로거 한 분이 제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도무지 필자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 이유가 뭔가 하고 물었더니 포스트의 성격이 너무 다르다는 것. 시사와 취미 카테고리를 비교해 보니 표정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까칠한 글들이 또 한 쪽에서는 전혀 반대편의 다른 글들이 블로그를 도배하고 있다나 뭐라나...ㅋ 그래서 이 기회에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위해 몇 마디 답변을 해 놓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 <여행기>에 일면을 끼적거려 놓는다.

필자가 시사 카테고리 '정치'에 관심을 가진 건 '개인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평범한 블로거 1인이 정치인도 아니고 더군다나 정치적인 포스트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도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자의 블로그를 열어보신 분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광고가 전무하다. 인터넷 언론을 열어보면 낮 뜨겁고 민망한 황색 광고가 판을 치고, 보통의 블로그에도 구글 에드센스 정도는 기본적으로 장착돼 있다. 




블로그를 통해 작은 이익이라도 건져보고 싶은 마음일 게다. 기왕에 포스팅 하는 거 푼돈이라도 생기면 좋을 것. 더 나아가 어떤 블로거들은 억대 연봉도 챙긴다는 소문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다. 그것을 시샘한 방송도 봤다. 1인 미디어로 출발한 블로거가 사업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말릴 수 없다. 능력만 된다면 권장하고 싶기도 하다. 필자도 초기에는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기도 했고, 뷰에서 실시하는 에드센스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마음에도 없는 '돈 되는 포스팅'에 매달리면서 블로거 세상은 난장판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초심을 잃고 상업적 포스팅에 연연한 결과 이익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모두 사라진 것. 인터넷에 로그인 해 내 생각을 끼적거리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블로깅이 어느날 불행으로 다가온 것이다. 지금도 전업 블로그 외 몇몇 블로그에서는 그런 걸 보게 된다. 정말 말리고 싶다. 행복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다수의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는 정치글은 왜 끼적거리게 된 것일까. 
 




애완견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 

결론을 미리 말하면 나와 이웃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작은 고발이다. 누군가가 이 일을 하지않으면 여러분들이 설 수 있는 입지는 점점 더 좁혀져 올 것이다. 누가 해 줄 것이라는 방관자적 입장을 가장 좋아하는 게 정치인들의 질 나쁜 생리라는 생각. 그래서 블로깅 초심으로 돌아가 나와 이웃을 향해 마수를 뻗치는 이들을 향해 짱돌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일화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꽤 오래전이었다. 요즘은 덜하지만 예전에는 애완견이 식품으로 취급받을 때가 있었다. 고백컨데 필자도 가끔은 먹은 적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용서해 주시기 바란다.ㅜ) 어느 복날 친목계에서 '보신탕'으로 불린 애완견 사냥에 나섰다. 친목계원이 꽤 많아 적당한 크기의 개 두마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잘 알려진 도살장으로 두 사람이 가게됐다. 

그곳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데 그 장면에 앞서 철장 속에 갇혀있는 개들의 눈과 마주치게 됐다. 주문에 따라 도살장 주인이 필요한 크기의 개들을 선별하기 위해 철장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이다. 개들은 돌아설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리며 붙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로 세로 2m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철장 속에서 탈출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잡혀나와 처형될 수순만 남겨놓게 된 것이다. 





죽음 앞 둔 개들의 눈빛이 준 교훈
 

그리고 정해진 운명에 따라 두 마리의 개가 끔찍한 과정을 거쳐 식품으로 변했다. 그 이후로 여태껏 입에 댄 적도 없었다. 우리가 가난했던 한 때 그들이 식품으로 여겨졌을 지 모르겠지만, 먹을 게 넘치는 세상에서 애완동물을 식품으로 여기는 게 점점 더 야만스럽게 느껴졌던 것. 나는 그때 죽음을 앞 둔 개들의 눈빛을 통해 터득한 작은 교훈이 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역지사지 입장을 한 번 바꾸어 놓고 생각하니, 그들의 처지가 생명들이 겪는 약육강식의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 

나는 그 순간 개들의 입장으로 변해, 무방비 상태로 맨 손을 철장에 집어넣은 개장사의 손을 물어뜯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생긴 것. 개주인의 손에 이끌리는 순간 5분 뒤에 처형될 게 뻔 한데,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냥 끌려간다는 게 참을 수 없는 두려움과 안타까움으로 돌변한 것이다. 개들의 눈빛을 보면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 





인간의 형편을 개들에 비교해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치열하다. 언제 누구로부터 붙잡혀 생명을 잃을 지도 모를 일이고, 자기의 의사와 의지에 관계없이 불이익을 당할 지 모를 일이기도 하다. 특히 소시민들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일은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공익 앞에서 보다 용맹스러워져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철장 속의 개들처럼 한순간 몸을 움츠리고 도피해 봤자 당신을 노리는 마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 만약 당신을 향해 누군가 마수를 뻗치면 '끝까지 저항하거나 공격하라'는 게 필자의 주장이자, 부끄러운 고백이 담긴 이야기다. 
필자의 블로그에 끼적거리고 있는 정치글 내지 시사 포스트의 작성 배경은 주로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의 사진 이야기 등에 담긴 포스트는 어떻게 이해할까. 간단하다. 학문의 이유가 밥만을 위한 취직에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대자연을 통해 부단히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게 된다. 최소한 필자에게 필요 이상의 '세상의 지식은 다 소용없는 것'으로 정리한 마당에, 따로 지식을 추구하거나 자랑을 일삼는 건 무모한 일이다. 세상에서 유명한 경(經典)을 다 읽어본들, 세상에 널린 지식을 머리 속에 다 집어넣어본들, 하는 짓이 아이들처럼 자랑이나 일삼고 이웃을 탐하며 핍박과 착취를 일삼는 도구로 전락한다면, 그게 철장 속에 손을 넣은 개장사의 형편과 뭐가 다르겠나.



봄에 다시 가 보고 싶은 곳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누구 한테 말은 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말 못하는 말 못하는 고충이 있게 마련이다. 이때 운명의 법칙은 불행만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동면의 양면처럼 두 개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것. 동전 한 쪽에는 치열함을 상징하는 숫자가 새겨진 반면 다른 한 쪽에는 치열함을 잊게 해 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북부 빠따고니아의 작은 마을 오르노삐렌에 찾아온 봄은 주로 그런 모습이었다.

그곳은 어느날 훌쩍 떠날 수 있는 공간에 위치한 건 아니지만, 치열함을 내려놓는 순간 맨 먼저 가 보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다. 또 봄이 되면 다시 가 보고 싶은 여행지가 오르노삐렌의 네그로 강가의 안개낀 아침 풍경속이다. 그곳에 서면 절로 행복해지며 세상에서 잃게된 모든 것을 보상해 줄 것만 같은 곳이기도 하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해 질 수 있는 노력도 동시에 해야 하지 않을까.
 





















땀방울에 젖은 듯한 풀숲에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앙증맞은 요정이 얼굴을 내밀었다.































네그로 강 옆 오솔길을 천천히 걸으면 세상만사가 대자연 속에 묻히며 나(我)의 존재가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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