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사태 무엇이 문제였나
-쌍용차,해고무효가 남긴 교훈-
마침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조원들의 복직 길이 열린 것일까.
어제(7일) 서울고법 민사2부(부장 조해현) 재판부가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한 소식을 접하면서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른바 '쌍용차 사태' 당시 필자도 블로거로 현장취재를 나섰는 데 그게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동안 해고노동자들의 고생을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않았던 것이다.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이토록 힘들까 싶은 생각이 든 취재현장이었다.
관련 기사를 살펴보니 법정에 참가한 30여 명은 재판부가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판결문을 읽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감동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장면이 전해졌다. 재판부는 이 판결에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향하여 "마지막 인내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해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의 절차가 정리해고 노조원들의 복직 길이 순탄할 것으로 예고하고 있었다. 잠시 쌍용차 사태 당시를 돌아보기로 한다.
관련 기사를 살펴보니 법정에 참가한 30여 명은 재판부가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판결문을 읽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감동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장면이 전해졌다. 재판부는 이 판결에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향하여 "마지막 인내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해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의 절차가 정리해고 노조원들의 복직 길이 순탄할 것으로 예고하고 있었다. 잠시 쌍용차 사태 당시를 돌아보기로 한다.
경찰특공대가 집단 폭행을 가한 파업 현장
5년 전, 경찰의 공권력 투입이 임박할 당시 쌍용차 사태 현장에서 필자의 눈에 비친 현장은 무법천지였다. 경찰이 사측과 한 패거리를 이루며 파업현장을 장악하며, 공장을 장악하고 있는 조합원들과 대치중이었다. 그리고 얼마후 그 조합원들은 경찰특공대에 의해 죽지않을 만큼 집단폭행을 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후유증으로 수 십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장면을 당시 현장취재중이었던 <한겨레> 허재현 기자가 동영상을 남겼다. 꼭 한 번만 열어봐 주시기 바란다.
영상을 열어보신 분들은 경악하게 될 것이다. 이게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경찰특공대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가한 집단폭행 장면이다. 이 당시 현장취재에 나선 기자들은 물론 필자 또한 매우 조심스러웠다.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에 살던 노동자들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들은 다시 정리해고자 등으로 나뉘어져 반목과 갈등이 매우 심해 주민들이 말을 아끼고 있었다.
누가 적(?)인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은 쌍용차 직원 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두 편으로 나뉜 노동자들은 한쪽에서는 각목을 든 구사대로 또 한쪽에서는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조합원들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투입된 경찰특공대는 공장 옥상에 있던 노동자들을 집단폭행에 나섰던 것이다. 당시 허 기자는 이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 해(2009년) 8월 5일 새벽. 저는 쌍용자동차 노조원의 옥쇄파업을 보름 간 동행취재하다 보았던 그 장면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특공대원들이 컨테이너를 타고 조립공장 옥상으로 올라오자 노동자들을 닥치는 대로 폭행하던 그 장면을요.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물리적 충돌이 아니었습니다. 특공대원들은 경찰에 제압당해 땅에 쓰러져 있는 노동자들을 무차별 폭행했습니다. 방패로 머리를 찍고, 곤봉으로 때리고, 고무총을 발사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기자들의 카메라에 잡힌 경찰의 '노동자 폭행사건'이었습니다."
<출처: http://blog.hani.co.kr/catalunia/34234>
경찰특공대 집단폭행을 자랑스러워 한 조현호 전 경찰청장
허 기자가 개인 블로그에 올려둔 이 기사는 2010년 8월 24일에 작성된 것으로, 당시 "쌍용차 진압을 자랑스럽다"고 말한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청문회를 보면서 사과의 입장을 취할 것으로 여겼지만 반대의 입장을 취하자 취재현장을 고발한 것이다. 청문회 당시 조현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경찰을 '선진 일류경찰'로 만들어 가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청문회에 출석해 쌍용자동차 노조의 과잉 진압을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꼽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 또한 조현호의 발언을 듣자마자 분노가 치밀어 포스팅을 통해 '미친넘' 정도로 표현해 둘 정도였다. 그렇다면 경찰특공대로 하여금 집단폭행을 통해 노조원을 진압한 쌍용자동차는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었을까.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복직 판결에 결정적 이유가 된 건 '조작된 회계보고서'였다. 경영상 긴박하게 해고를 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고 사측이 노동자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복직 판결의 결정적 이유
첫째, 부실 과장된 회계감사보고서가 문제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쌍용차가 기업회계기준을 위반해 유형자산의 손실을 과다계상했고, 이를 근거로 삼아 정리해고를 단행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쌍용차가 2009년 회계 조작으로 부실을 부풀려 대규모 정리해고를 합리화했다는 정치권과 노동계의 의혹 제기에 대해 최종학 서울대 회계학과 교수를 특별감정인으로 선임해 감정까지 시행한 재판부는 보고서가 사실과 다르게 작성됐다는 결론을 내린 것.
둘째, 경영정상화 보고서도 문제였다. 재판부는 문제의 회계보고서를 토대로 작성된 삼정KPMG의 경영정상화 보고서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삼정 KPMG는 2천646명의 정리해고가 필요하다는 근거로 1인당 매출액이 동종업체 중 가장 낮고,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14.2%)이 동종 업체 중 가장 높아 인력 효율성이 취약하며 동종업체보다 '자동차 1대당 생산시간(HPV)'이 높은 점을 들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2008년 유가급등과 국내외 금융위기로 판매량이 급감한 상태에서 계산된 매출액 비교는 일반화될 수 없고, 인건비 비중은 차종에 따라 달라지는 데 단지 HPV가 높다는 사실만으로 생산효율성이 낮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회계보고서 조작과 엉터리 경영정상화 보고서 등을 토대로 항소심 재판부는 해고를 단행해야 할 긴급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판단을 한 것.
<출처 참조: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40207180007136>
쌍용차 사태 무엇이 문제였나
5년 전 쌍용차 사태의 포스트와 자료를 열어보니 당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특히 쌍용차 노동자들이 아무런 까닭없이 경찰특공대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는 장면 등은 필자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 친정부 언론이나 경찰이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적용한 건 '폭력시위'를 이유로 들었을 것. 그러나 누군가 그만한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공장을 점거한 시위 따위는 애시당초 일어날 이유도 없었다. 노동자 개인은 물론 가족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였다.
이틀 전 그 이유가 법원으로부터 판결문으로 읽혀진 것. 결국 사측이 노동자들을 이간질 하고 공권력을 끌어들여 폭력사태를 만들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그 어느 누가 제 밥그릇을 나꿔채 가는 상대를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바둑이 조차 제 밥그릇을 건드리면 으르렁 거리거나 당장 물어뜯으려 덤비는 데, 멀쩡하게 잘 근무하던 회사를 엉터리 회계감사보고서를 근거로 엉터리 경영정상화를 꾀하며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 했다면, 그 당사자가 이 포스트를 보고 있는 당신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도무지 억울하고 분통이 터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아니겠는가. 그것도 '상하이 자동차'가 공장을 인수하고 고급기술은 다 빼가며 약속한 투자를 안해서 부실이 발생한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는 데 경영부실 책임 등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일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만행이나 다름없는 것. 그런 일에 공권력을 끌어들였다면 사측이나 공권력이 입이 열개라도 말 못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개 패듯 집단폭행을 가한 당사자들 전부를 처벌해도 시원찮을 일 아닌가.
쌍용차,해고무효가 남긴 교훈
얼마전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주최한 시사팸투어에 참가하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궤도는 하나다'라는 인상깊은 구호가 있었다. 궤도라는 속성은 함께 갈 뿐 만나지 못할 운명이 포함돼 있다. 철도 선로가 그럴 것이며 노사관계가 그럴 것. 쌍용차 노동자 해고 사건을 복기해 보면 우리 노동자들이 쉽게 잊는 게 있었다.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겨 노동자를 이간질 하거나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일. 조직을 무너뜨리는 작업이다. 혹시라도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사용자와 노동자와 관계를 정확히 정리해 두시기를 권장해 드린다.
초보적인 내용이지만 자기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큰 무기가 '단결권'이자 '연대의 힘'이라는 것. 쌍용차 사태에서 보듯이 사용자가 제 아무리 노동자를 잘 대해주는 듯 싶어도 결국은 정치와 연대(정경유착) 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지닌게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집단이라는 것. 이런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노노갈등의 선봉에 서서 쌍용차 사태와 같은 불편부당한 불행을 겪게 되는 것.
정리해고는 쌍용차 사태에서처럼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 내지 악화시키고자 하는 한 방법이었을 뿐, 더도 덜도 아니란 게 금번 복직판결이 갖는 의의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노동자를 노동자답게 만들어 주는 건 노동자들 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해 준 사건이 해고무효가 남긴 교훈이 아닌가 싶은 것.
* 자료사진들은 '쌍용차 사태' 취재 당시 모습들로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연대의 궤도를 이탈하는 즉시 비극은 시작되는 것일까...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은 멀고도 험난했다. 2009년 4월 8일 사측이 2,646명 구조조정 계획을 통보한 후, 5월 22일 노조는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의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은 음식물 반입을 막고 가스를 끊었으며 경찰은 강제진압에 나섰다. 결국 980명의 정리해고 대상자를 무급휴직 462명, 희망퇴직 353명, 정리해고 165명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8월 6일 노사협상이 타결됐다.
하지만 쌍용차 노동자의 비극은 그게 시작이었다. 2009년 4월 비정규직인 오 모 씨의 자살을 시작으로 지난해 1월까지 24명이 자살하거나 스트레스 등으로 병을 얻어 사망했다. 2012년 3월 자신이 살던 임대아파트 23층 옥상에서 몸을 던진 고 이윤형씨처럼 '폭력 파업'의 꼬리표는 운명처럼 따라다녔다. 재취업이 안 된 해고자와 퇴직자 등 마음의 상처는 가족 전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또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성격이 폭력적으로 바뀌고 자살충동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혼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 이들은 가족 밖에 모르는 선량한 우리 이웃들이었다. 누가 이들을 불행의 늪으로 내 몰았는가.
5년 전 쌍용차 사태의 포스트와 자료를 열어보니 당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특히 쌍용차 노동자들이 아무런 까닭없이 경찰특공대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는 장면 등은 필자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 친정부 언론이나 경찰이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적용한 건 '폭력시위'를 이유로 들었을 것. 그러나 누군가 그만한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공장을 점거한 시위 따위는 애시당초 일어날 이유도 없었다. 노동자 개인은 물론 가족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였다.
이틀 전 그 이유가 법원으로부터 판결문으로 읽혀진 것. 결국 사측이 노동자들을 이간질 하고 공권력을 끌어들여 폭력사태를 만들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그 어느 누가 제 밥그릇을 나꿔채 가는 상대를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바둑이 조차 제 밥그릇을 건드리면 으르렁 거리거나 당장 물어뜯으려 덤비는 데, 멀쩡하게 잘 근무하던 회사를 엉터리 회계감사보고서를 근거로 엉터리 경영정상화를 꾀하며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 했다면, 그 당사자가 이 포스트를 보고 있는 당신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도무지 억울하고 분통이 터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아니겠는가. 그것도 '상하이 자동차'가 공장을 인수하고 고급기술은 다 빼가며 약속한 투자를 안해서 부실이 발생한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는 데 경영부실 책임 등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일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만행이나 다름없는 것. 그런 일에 공권력을 끌어들였다면 사측이나 공권력이 입이 열개라도 말 못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개 패듯 집단폭행을 가한 당사자들 전부를 처벌해도 시원찮을 일 아닌가.
쌍용차,해고무효가 남긴 교훈
얼마전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주최한 시사팸투어에 참가하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궤도는 하나다'라는 인상깊은 구호가 있었다. 궤도라는 속성은 함께 갈 뿐 만나지 못할 운명이 포함돼 있다. 철도 선로가 그럴 것이며 노사관계가 그럴 것. 쌍용차 노동자 해고 사건을 복기해 보면 우리 노동자들이 쉽게 잊는 게 있었다.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겨 노동자를 이간질 하거나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일. 조직을 무너뜨리는 작업이다. 혹시라도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사용자와 노동자와 관계를 정확히 정리해 두시기를 권장해 드린다.
초보적인 내용이지만 자기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큰 무기가 '단결권'이자 '연대의 힘'이라는 것. 쌍용차 사태에서 보듯이 사용자가 제 아무리 노동자를 잘 대해주는 듯 싶어도 결국은 정치와 연대(정경유착) 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지닌게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집단이라는 것. 이런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노노갈등의 선봉에 서서 쌍용차 사태와 같은 불편부당한 불행을 겪게 되는 것.
정리해고는 쌍용차 사태에서처럼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 내지 악화시키고자 하는 한 방법이었을 뿐, 더도 덜도 아니란 게 금번 복직판결이 갖는 의의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노동자를 노동자답게 만들어 주는 건 노동자들 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해 준 사건이 해고무효가 남긴 교훈이 아닌가 싶은 것.
* 자료사진들은 '쌍용차 사태' 취재 당시 모습들로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연대의 궤도를 이탈하는 즉시 비극은 시작되는 것일까...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은 멀고도 험난했다. 2009년 4월 8일 사측이 2,646명 구조조정 계획을 통보한 후, 5월 22일 노조는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의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은 음식물 반입을 막고 가스를 끊었으며 경찰은 강제진압에 나섰다. 결국 980명의 정리해고 대상자를 무급휴직 462명, 희망퇴직 353명, 정리해고 165명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8월 6일 노사협상이 타결됐다.
하지만 쌍용차 노동자의 비극은 그게 시작이었다. 2009년 4월 비정규직인 오 모 씨의 자살을 시작으로 지난해 1월까지 24명이 자살하거나 스트레스 등으로 병을 얻어 사망했다. 2012년 3월 자신이 살던 임대아파트 23층 옥상에서 몸을 던진 고 이윤형씨처럼 '폭력 파업'의 꼬리표는 운명처럼 따라다녔다. 재취업이 안 된 해고자와 퇴직자 등 마음의 상처는 가족 전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또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성격이 폭력적으로 바뀌고 자살충동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혼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 이들은 가족 밖에 모르는 선량한 우리 이웃들이었다. 누가 이들을 불행의 늪으로 내 몰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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