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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길,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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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길로 떠나는 힐링여행
-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풍경들-



세상에 의미없는 게 있을까...


그곳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서울에서 여수로 갈 때만 해도 산기슭 곳곳에는 희끗희끗 잔설이 눈에 띌 정도였다. 서울은 겨울 속으로 마냥 빠져들고 있었지만, 여수 앞 바다는 만추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 했다. 가늘게 불어오는 갯바람이 갈대와 억새를 부드럽게 흔들고 있었다. 서울을 떠나올 때 여수의 갯가길에 이런 풍경이 존재할 것이라 꿈도 꾸지 못했다. 
 



여수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필자를 픽업할 후배를 기다리다가, 근처 언덕을 서성이며 봤던 야생 갓은 그저 양지바른 곳에 핀 운 좋은 식물 정도로 생각했다. 바람은 여전히 찻고 장갑을 낀 상태였다. 그곳에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황주찬 아우님을 만나 안굴전으로 이동하는동안 나눈 대화 속에서 "여수에 살면서 눈을 본 적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않을 정도였다.





오래전 60년대만 해도 내 고향 부산에는 요즘 강원도 날씨처럼 겨울에는 눈도 많았고 계곡은 꽁꽁 얼어붙을 정도였다. 위도가 같거나 비슷한 데 여수는 부산의 날씨와 전혀 달랐던 것이다. 그런 풍경은 나중에 여수를 떠나기 직전에 본, 학동의 선소(거북선을 만들고 관리하던 장소) 뒷동산에 피어난 겨울초와 풀꽃들이 이곳 날씨를 말해주고 있었다. 
 




여수의 날씨는 겨울과 봄 사이에 끼어든 '쉼표' 같은 풍경이랄까. 두툼한 옷으로 갈아입은 차림은 때론 방해되기도 했고, 때론 요긴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갯가를 부지런히 걸으면 등줄기에 땀이 배고 잠시 멈추어 서는 순간 금방 땀이 식곤 했다. 갯바람은 여전히 찻지만 볕은 따사로웠던 것이다. 자칫 감기라도 들 수 있는 묘한 기후. 




갯가길의 이름모를 식물은 그런 곳에서 여전히 꽃봉오리를 내 놓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자 갯가길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식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쩌면 갯가길을 오갔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자 한낱 잡초에 불과해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날 이방인의 눈에 띈 한 무리의 야생 풀꽃들은 집에서 곱게 자라는 식물들과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운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 
 



녀석들을 보호해 준 건 달님이 부어준 뽀얀 은빛가루와 오전 한 때 잠시 비춰준 볕이 전부였을 지도 모르는 것. 그동안 찬기운을 품고 살랑거린 갯바람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저런 형편을 헤아리다 보니 새까맣게 잊고 살던 신의 존재가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것. 녀석들에게서 '신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문학가 중에는 칠레 태생의 시인이자 작가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Gabriela Mistral,1889년 4월 7일~1957년 1월 10일)이 있다. 포스팅 중에 가끔씩 그녀의 작품을 인용하는 데, 그 중 <예술가의 십계명>을 좋아한다. 어떤 분야가 됐건 예술가들 한테는 큰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는 게 아닌가 싶은 작품이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신의 그림자란 '아름다움'이다. 그녀가 표현한 신의 형상이 어떤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당신 마음 속에 세상의 어떤 피조물이 우연히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또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그래서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신의 그림자'라고 노래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을 길러준 것이다.   
 




그 그림자가 여수 갯가길의 한쪽에서 이방인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 짧은 순간이지만 그 모습과 마주친 이방인의 가슴은 어떠했겠는가. 아름다운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신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것이다.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신의 그림자!...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예술가의 십계명을 잠시 펼쳐볼까.
 

예술가의 십계명 

가브리엘라 미스뜨랄 

첫째, 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둘째,무신론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
셋째,아름다움을 감각의 미끼로 주지말고 정신의 자연식으로 주어라.
넷째,방종이나 허영을 위한 구실로 삼지말고 신성한 연습으로 삼아라.
다섯째,잔치에서 너의 작품을 찾지도 말것이며 가져가지도 말라.아름다움은 동정성이며 잔치에 있는 작품은 동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너의 가슴 속에서 너의 노래로 끌어올려라. 그러면 너의 가슴이 너를 정화할 것이다.
일곱째,너의 아름다움은 자비라고 불리울 것이며 인간의 가슴을 기쁘게 해줄 것이다.
여떫째,한 어린아이가 잉태되듯이 네 가슴 속 피로 작품을 남겨라.
아홉째,아름다움은 너에게 졸리움을 주는 아편이 아니고 너를 활동하게 하는 명포도주다.
열째,모든 창조물 중에서 너는 수줍어 할 것이다.너의 창조물은 너의 꿈 보다 열등했으며 동시에 경이로운 신의 꿈인 자연보다도 열등하기 때문이다.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십계명에 견주어 보면, 필자가 알고 지내는 적지않은 예술가들 중에 안타깝게도 십계명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어쩌면 그들은 이런 십계명의 존재 가치도 알려고 하지않을 지도 모른다. 이유는 딱 하나. 예술가들이 예술의 십계명을 실천하는 순간 허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예술행위를 통해서 자기의 명예와 부를 동시에 챙겨보겠다는 욕심으로 인해, 작품들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것. 
 



그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위해 별의 별 지식을 다 공부했겠지만, 정작 가슴 속에는 신의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것. 그대신 그들의 작품 밑에 따라다니는 건 근사한 프로필과 함께 세상에서 만들어낸 훈장들이 수두룩 하다. 그 훈장과 자랑들이 세상을 보는 아름다운 시선을 가리고 있다면, 혹평이거나 뭘 모르고 하는 허튼 소리로 치부해 버릴까. 



배움을 통해서(학이지지,學而知之) 자기 속에 내재된 신의 그림자를 깨울 수도 있다. 또 누구인가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아름다움 등)을 깨닫는 생이지지(生而知之)의 경지를 타고나는가 하면, 곤이지지(困而知之)라고 하는 겸손함도 있다. 죽을 고생을 해 가며 터득한 경지가 곤이지지라 하지만 실상은 생이지지 이상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일 것.




여수 갯가길 팸투어를 통해서 예술가의 십계명을 잠시 돌아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니다. 잠시 혼탁한 세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신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는 행운을 끼적거리고 있는 것. 어떤 사람들 한테는 하찮아 보이는 사물들도 자기의 삶에 비추어 보면 무엇 하나 의미가 없는 게 없고 존귀하지 않은 게 없는 것이다. 누구나 다 가진 감수성이 서서히 퇴화되고 있는 어느 순간 힐링여행을 통해서 불감증이 저절로 치유 되거나 깨닫게 된다면 그 여행은 얼마나 값진 것일까.





필자는 가끔 아내의 수채화 그림을 언급하는 데  아내는 그야말로 곤이지지하여 예술혼을 깨우치고 있다고 판단된다. 어느날 자기의 가슴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못한 예술혼들이 기어코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동안 곁에서 답답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수 없는 잔소리를 늘어놨지만, 그야말로 그건 쓸데없는 잔소리에 불과했다. 당신을 가르치는 선생의 손가락만 봐 왔으니, 또 그들은 손가락만 보라고 가르쳤으니 정작 봐야 할 '달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 





그런데 어느 순간 아내에게 행운이 찾아들었다. 당신의 예술혼을 깨우는 한 예술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화실에서 또는 소풍을 떠나 사생을 하는 장소에서 한 일을 곁에서 지켜보니 매우 심오했다. 그는 수채화의 궁극적인 모습을 이해 시키려 애를 썼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 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관객)들은 무엇을 생각(판단)할까 하는 것.

 



이를 테면 주체와 객체의 인식차이 혹은 사유체계의 차이를 보여주고자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표현들은 또 얼마나 까칠한가. 왜 그렇게 해야 할까...아내의 고심은 깊어갔다. (내가 보기에)얼마 전까지 잘 그리던 그림이 어느 순간부터 엉망진창으로 변하며 혼돈의 늪 속으로 침몰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마침내 깨우친 화두 하나가 아내를 살려낸 것이다. 




아내의 수채화를 지도하고 있던 'P 선생'과 아내의 교감이 마침내 빛을 발한 것인데 그 방법은 매우 심플했다. 켄버스 위를 하얗게 만드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아내의 켄버스 위에는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듯한 신문지나 잡지같은 잡다한 것들이 널부러져 있어서, 수채화 본연의 맑고 고운 모습은 물론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대상을 잘 그려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 깨달음을 '백지'라고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의 화실에 초보자 한 사람이 수채화에 입문했다. 그런데 초보자인 그녀의 그림 솜씨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자 아내는 내심 놀라게 됐다. 다년간 열정적으로 활동해 온 아내에겐 부러운 모습이었던지 아내는 '또 백지'라며 표현했다. 우린 함께 웃고 말았다. 그 흔한 '비움의 미학'을 이제사 터득해 놓고 보니 지난 세월은 또 얼마나 야속한고...





참 길게도 끼적거렸다. 그냥 갯가길을 걸으면 이런 저런 풍경을 만나게 되는 데 그때 자기도 모르게 힐링을 느끼게 되더라고 끼적거리면 다 알아들을 것 아닌가. 가끔씩 필자와 동행하는 분들이 '사진을 잘 찍는 법'을 물어온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딴청을 피우기 일쑤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 십년동안 사진을 찍어왔지만 여태껏 사진을 잘 찍는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주변에서는 '사진을 잘 찍는다'고 말한다. 내 생각에 카메라의 메카니즘만 어느정도 터득하면 누구나 잘 찍을 수 있는 게 사진이라 생각하지만, 그분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갯가길을 소개해 드리는 이 기회에 사진을 잘 찍는 법 말고 '사진과 친해지는 나만의 방법' 하나만 대략 소개해 드리고 글을 맺을까 한다. 
 




(고수들은 눈을 감고 계시라.)무슨 일이든 '그 일을 즐기는 사람들 한테는 못 당한다'는 말이있다. 정말 사진을 즐기고 싶으면 일단 카메라를 구입하되 가능하면 좋은 카메라를 구입하시라. 카메라의 메카니즘 상 가격대가 비싼 카메라가 그만한 값을 한다. 똑같은 구도의 사진을 연출 시켜도 결과물은 다르게 나타난다. 아무튼 어떤 카메라가 될지라도 많이 찍어봐야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무조건 아무 데나 대고 함부로 셔터질(?)하면 곤란하다. 수영을 배울 때처럼 차근차근히 해 나가라. 인터넷에 널린 게 사진강좌다. 수영을 배울 때 처음부터 영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맨 먼저 물과 친하는 법을 가르친다. 뭍에서 발만 담금채 물장구질만 해 댄다. 박태환처럼 물개가 되고 싶은 사람은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만, 차분히 차근히 해도 절대 늦지않다.





그래도 물장구부터 치시라. 카메라의 물장구(?)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나면 카메라를 늘 지참하는 일이다. 필자의 경우는 도가 지나쳐 꿈 속까지 찍으려 드는 사람이다. ㅋ 왜 그렇게 망가졌을까. 행복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는 순간 행복해져야 한다. 행복하지 않은 일이나 즐겁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로부터 멀어지거나 적당히 행복해 지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행복해지는 장면을 많이 담아라. 세상에 널린 수 많은 피사체들 중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장면만 담는 연습을 하라. 바다 전체나 산 전체를 담는 수고도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장면만 담아라. 세상은 신의 그림자 투성이다.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장면이 숱하게 널려있다. 그 장면들을 하나 둘씩 담다보면 어느날 피사체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주체인 당신이 객체의 사정을 헤아리는 순간, 그 모습들이 세상에 하나 뿐인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림은 사진과 달라 작가가 불필요한 장면을 생략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진은 어떤가. 보지않아도 될 장면들이 한꺼번에 모두 담긴다. 그걸 다 담아 기계로 재포장 할 텐가. 필자는 사실을 왜곡 시키는 도구(포토샾 등)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한 번 그 맛에 빠져들면 헤어나기가 쉽지않다. 또 그런 사진을 처음 보는 사람을 미혹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종국에는 사실이 왜곡된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다. 그대신 자기 주변에서 늘 찾던 소재 대신 남들이 찾지못한 귀한 장면을 기회가 날 때 마다 찾아 나서라. 세상의 유명 작가나 채널이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노력을 하되 아내가 찾아낸 평범한 깨달음 처럼 백지가 될 때까지 가슴을 모두 비워야 한다. 그 빈가슴에 신의 그림자를 채워 넣어라. 그 결과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노래가 생각나게 될 것.




여섯째,너의 가슴 속에서 너의 노래로 끌어올려라. 그러면 너의 가슴이 너를 정화할 것이다.
일곱째,너의 아름다움은 자비라고 불리울 것이며 인간의 가슴을 기쁘게 해줄 것이다.
여떫째,한 어린아이가 잉태되듯이 네 가슴 속 피로 작품을 남겨라.
 



최선을 다한 당신께 내리는 신의 선물은 아름다움이자 행복이다. 우리가 말하는 힐링은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언제 어디를 가서 어떤 사물과 형편에 처하든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건 당신 몫이다. 그게 신의 그림자라고 하므로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힐링을 경험하는 건 신의 땅에 발을 디딘 것이나 다름없는 것. 그 행운을 갯가길에서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 


사단법인 여수갯가
전남 여수시 중앙동 686번지 2층
Tel. 061-920-5888
Web. www.getga.org
Facebook. https://www.facebook.com/getga.org


신의 그림자는 늘 당신 곁에 있었다. <계속>


Feliz Año Nuevo, Feliz Navidad~^^*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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