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갯가길,청미래덩굴의 행복한 추억들


Daum 블로거뉴스
 

갯가길로 떠나는 힐링여행
-청미래덩굴의 행복한 추억들-



추억을 먹고 산다는 사람들...


지금 당장은 모를 것. 나이가 100세에 이르러도 여전히 고마운 건 당신이 살아왔던 흔적이다. 사람들은 그걸 일러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한다. 평생이 하나의 기나긴 꿈같은 것.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보면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다. 너무 어려서 잘 모를 땐 까마득해 보이던 미래가 현실로부터 멀어져 과거로 변해 있을 때, 그 기억을 더듬어 보면 희노애락이 뒤범벅 되어있을 것. 그 속에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망각'이란 참 좋은 메카니즘이 있다. 불행하거나 아픈 기억들은 모두 지워버리고 행복한 기억만 남기게 만드는 장치. 그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추억'이란 선물이다. 




여수갯가길을 다녀온 지 어느덧 두 주가 흘러 성탄절 전야가 됐다. 그동안 필자의 블로그에는 갯가길의 흔적을 담은 여러 포스트가 기록됐다. 갯가길을 걸으며 느낀 소회 등을 담아둔 것이다. 지내놓고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의외로 소중해 보이는 추억들이 담긴 포스트다. 당시를 기억해 내며 몇자 끼적거리고 있으면 여전히 갯가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또 서울로 돌아와서 본 일상들이 갯가길에서 느꼈던 느낌을 웃돌지 않을 수도 있었다. 누군가 억지로 시켜서 또는 의무적으로 포스팅을 하는 건 참 재미없는 일이다.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능률도 오르지만 또 다른 행복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갯가길을 돌아보면서 느낀 행복한 추억들을 현재와 과거의 모습으로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언제인가 이런 추억들은 일장춘몽 속에서 나를 기분좋게 만들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고정관념 속에서 갯가길은 바다 곁 갯가에만 존재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누구인가 갯가길로 가기 위해 바닷가 언덕을 지나간 작은 오솔길도 갯가길의 일부였다. 여수 갯가길을 디자인한 [사단법인 여수갯가]의 김경호 이사장(제주대학 언론홍보학과 교수)와 회원들은, 이런 오솔길 포함 낚시꾼들이 갯바위로 드나들었던 오솔길과, 얼마전까지 사용했던 해안초소로 가는 길을 한데 묶고 연결해, 갯가길로 만들어 현재 [제1코스]로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관련 포스트를 참고 하시기 바란다.)




안굴전 포구에서 시작된 갯가길 투어는 막바지에 다다라 갯가길이 작은 언덕 위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갯가길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느라 일행과 거리가 꽤 멀어져 걸음을 바쁘게 움직였다. 일행과 거리를 두면 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쁘게 걷다 보니 신발에 문제가 생겼다. 





갯가길의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인데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 곳곳에 모래와 갯벌이 혼합된 갯벌의 함정이 있었다. 편안한 조깅화가 어울릴 것 같아서 조깅화를 신은 게 탈이었다. 혹 이 포스트를 보시는 분들을 위해 조깅화 대신 등산화를 신고 갯가길로 걸으시기를 권장한다. 갯벌 곁에서 자유롭고 언덕과 작은 산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등산화가 제격이란 판단이다. 




오래된 풍경 하나 

바닷가로부터 벗어나 작은 언덕을 오르면서 나는 청미래덩굴의 열매에 서린 행복한 추억을 상기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보기힘든 이 열매는 먼 산으로 등산을 가도 쉽게 눈에 띄지않는 식물이다. 예전 같으면 집 주변의 작은 언덕이나 동네 뒷산에 가면 흔해 빠졌던 게 청미래덩굴이며, 내고향 부산에서는 망개나무라 불렀다. 





한겨울이 되면 찹쌀떡 장수가 망개잎에 싼 찹쌀떡을 어깨에 매고 다니며 '찹~살~떠억!!' 하고 외치고 다녔던 그 나무가 새빨간 열매를 달고 초겨울 바닷가 바람을 쏘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청미래덩굴이 백가지 독을 제거하는 '약이 된다'며 다 케 가는 살벌한 세상이다. 그러나 망개나무는 필자 한테는 약용 보다 추억용(?)으로 더 각광을 받고 있던 식물이다. 





망개나무는 봄이 되면 파란 잎과 순을 내 놓고 여름이 다가오면 새파란 열매를 내 놓는다. 친구들과 멱감으로 산골짜기로 떠났다가 출출할 때 호기심으로 따 먹은 그 열매는 새콤 떫떠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한웅큼씩 따 입에 털어넣으며 오만상을 찌그렸던 열매다. 봄이 오시면 망개나무 외에도 소나무에 물이 올라 껍질을 벗겨 속을 핥을 때도 있었다. 그게 '송기'라고 하는 먹거리였다. 




송기를 핥고 망개나무 가시에 찔려 오솔길을 걷다보면 솔향기가 그윽하게 풍기는 길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쩌다 멱감기 삼매경에 빠져 해가 뉘엿거릴 때 쯤이면 발 밑을 기어가던 배암을 잘못 밟아 기절초풍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 길을 한여름 밤 아부지와 엄니와 함께 되돌아가 더위를 식히던 때는 물론, 당시 흔해빠졌던 산토끼를 잡느라 형들 틈에 끼어 하루에도 두 번씩 산 꼭대기 위에서 산 아래 저 멀리 자리잡은 집을 바라보며 행복해 하던 때도 있었다. 




가을이면 그 길가에 서리()를  인 무우가 솜사탕 보다 더 달콤했고, 여름날이면 풋복숭아 한 쪽이 발그레 익어가고 있었다. 무가 달콤했고 풋복숭아가 달콤했던 건 무와 복숭아 서리(竊盜)가 남긴 달콤한 맛이다. 말이 좋아 서리지 남의 물건을 훔친 '절도행위'가 아닌가. 친구와 함께 공범이 되어 행한 절도는 완벽(?)했다. 




청미래덩굴의 가시에 찔려가며 남의 밭과 과수원 울타리를 넘을 때는 수색을 나간 특공대 이상이었다. 다시 울타리를 돌아올 때까지 숨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않았다. 어쩌다 복숭아가 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날때면 간이 콩알 만큼 쫄아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복숭아들은 '난닝구(런닝셔츠)'에 돌돌 말아 멱감는 골짜기로 냅다 뛴 것. 




우리는 너럭바위 위에서 그 복숭아를 먹는 동안 복숭아 가시가 뱃가죽을 괴롭히는 것도 참으며 씹어댓다. 집으로 돌아와 모기장 속으로 들어가서도 가렵다고 말 할 수 없는 사정을 나중에 엄니로부터 듣게 됐다. 우리의 완벽한 도둑질을 원두막에서 다 지켜보고 있던 주인이 집으로 찾아와 아부지께 다 고발하신 것. 아부지께선 그 때 마다 아들놈들이 도둑질한 물건값 전부를 아들 모르게 대물배상해 주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과수원 주인이 아버지와 탁배기를 나누시며 웃던 모습이 그냥 된 게 아니었던 것. 그날 밤 군용 담요 밑에서 숨죽이며 아부지의 그림자를 살폈다. 아부지는 아무런 말씀도 안 하셨다. 살그머니 손으로 담요를 들추어 본 그곳에는 엄니께서 쉿 하고 손가락을 입에 대고 계셨다. 가혹한 처벌 대신 너그러운 죄사함이 이루어진 것이다. 작은 언덕위로 이어진 갯가길 곁의 망개나무 열매 알알이 추억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것이다.





2013년 현재 대도시 풍경

갯가길 곳곳을 수 놓고 있는 청미래덩굴은 오래 전 추억을 떠올릴 만큼 귀한 정경이었다. 처음 한 그루가 발견된 이후 청미래 덩굴은 구간이 끝날 때까지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곳으로 힐링여행을 떠나시는 분들께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 갯가길을 수 놓고 있는 청미래덩굴을 절대로 함부로 채취 하거나 훼손하지 말았으면 하는 부탁을 드린다.




누군가에게 하찮은 식용식물로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또다른 누구 한테는 삶 전체를 통털어 가장 행복한 추억을 간직한 나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않는가. 필자의 유년기 시절을 잠시 돌아봤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 장면을 잠시 돌아보고 글을 맺고자 한다. 





#1 

서울은 바쁘다. 그냥 바쁜 게 아니라 무진장 바쁘다. 얼마나 바쁜지 그 풍경을 살펴볼까. 배경은 필자의 새끼들이 살았던 동네와 현재 살고 있는 동네 근처의 풍경들. 오전 7시가 되면 아파트 한쪽에서 요란한 구둣발 소리가 난다. 그 아가씨의 습관은 거의 매일 똑같이 이어진다.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지 연장근무가 이어지고 있었는지 거의 매일같이 뛰는 소리가 반복된다. 후따닥 딱딱딱딱...




#2

아직 머리도 채 마르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듯한 축축한 머리결 앞으로 한 아이가 쫒겨가듯 따라간다. 아버지 손에는 가방 두 개가 들려있고 아직 잠에서 덜 깬 아이의 등에는 노란 가방이 매미처럼 달라붙어 있다. 뒤따라 가 본다. 아이가 도착한 곳은 어린이 집. 녀석은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그곳에서 다른 친구들과 하루종일 지낸다.




#3

어린이 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그때부터 보모의 손에 길러진다. 간식을 챙겨먹고 배꼽인사를 배운 아이들은 동네 산책을 나서며 어른들이 귀여워 할 때 마다 배꼽인사를 건넨다. 안넝하떼요...세상 그 어떤 것 보다 더 귀여운 녀석들은 아파트단지 곳곳을 둘러보며 세상을 학습한다. 요건 머예요?...꽃이요!...조기 조건 머예요?...나비요!...그날 저녁 무렵 아침에 본 그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러 온다. 아빠의 한 쪽 어께 위엔 아이가 쌀가마처럼 둘러매진 채 잠들어 있다.

 



#4

아이가 꽤 자랐다. 크리스마스 몇 번 지나는가 싶더니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엄마 아빠는 여전히 바쁘다. 아이는 더 바빠졌다. 유치원을 졸업하면 이제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 식탁 위에는 엄마 아빠의 메모가 기다리고 있고 아이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엄마 아빠와 소통과 통신은 주로 그렇게 이루어진다. 학교에 다녀오자 마자 프로그램에 따라 아이는 국영수에 쫏기고 태권도 발차기에 쫏겨 초죽음이 된다. 그때 마다 엄마 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아이쿠 우리새끼 다 끝냈어? 냉장고 안에 뭐 들어있는 거 알지?...정말 썰렁한 확인 전화다.
 



#5

중학교에 가면 사정이 달라질까. 우리 말에 '갈수록 태산이다'라는 말이 이럴 때 사용된다. 그나마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은 인생(?)의 참 맛을 알 정도였지만, 이때부터는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인생의 쓴 맛을 너무 빨리 보게 되는 것. 남들 보다 좀 더 알아야 하고 남들 보다 좀 더 좋은 학교에 가야하는 걸 배우게 된다. 여태껏 친구인줄로만 알았던 학생들이 경쟁자가 되고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죽는 줄로만 안다. 




친구와 함께 길을 걸으며 웃고 있어도 그건 겉모습일 뿐이다. 속 모습은 엄마의 자랑거리에 부합해야 한다. 어느날 겸손한 채 하며 '아이가 반에서 일등한다'며 넌지시 자랑했던 엄마가 기 죽은 것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엄마 친구가 '우리 아들은 전교에서 일등인데...'하며 고개를 떨구드라나 뭐라나. 그날부터 열공에 돌입한 엄마와 아들내미의 사투는 고3까지 이어진다.



#6

그렇게 해서 무난히 무사히 4대문 안의 대학교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러면 사정이 달라질까. 그동안 들로 산으로 몇 번 소풍을 간 기억은 있지만 그 흔한 청미래덩굴 한 번 눈여겨 못 본 건 당연한 게 아닐까. 그 아들내미 또는 그 딸내미가 대학을 졸업해 용케도 대기업에 들어가고 또 취직을 하면 어떤 시츄에이션이 기다릴까.




후따닥 딱딱딱딱...그냥 바쁜 게 아니라 무진장 바쁘게 산다. 
 




그 아들 딸들이 장성해 결혼하면  엄마 아빠가 해 왔던 그 방식과 그 모습 그대로를 쏙 빼놓는 것.
 



어린이 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그때부터 보모의 손에 길러진다. 간식을 챙겨먹고 배꼽인사를 배운 아이들은 동네 산책을 나서며 어른들이 귀여워 할 때 마다 배꼽인사를 건넨다. 안넝하떼요...세상 그 어떤 것 보다 더 귀여운 녀석들은 아파트단지 곳곳을 둘러보며 세상을 학습한다. 요건 머예요?...꽃이요!...조기 조건 머예요?...나비요!...그날 저녁 무렵 아침에 본 그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러 온다. 아빠의 한 쪽 어께 위엔 아이가 쌀가마처럼 둘러매진 채 잠들어 있다.




차마 웃지못할 일들이 매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도시의 부모들은, 희노애락 보다 피곤에 더 익숙하고 스트레스를 밥 먹듯 한다. 사정이 이러하면 자기들을 괴롭히는 굴레를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겪은 세상의 쓴 맛 전부 내지 책임을 아이들 한테 전가시키는 일이 반복되는 것.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야 이 놈아, 너는 엄마 아빠와 같은 불행한 삶을 닮아서는 안 된다. 어딜 그렇게 싸돌아 댕기느냐...) 싸돌아 다닐 시간도 없는 아이만 족쳐대는 것. 자기는 그맘 때쯤 맨날 무 서리와 복숭아 서리하면서 부모님 걱정시켜드린 죄목이 수두룩 한 데 얼라만 족쳐요. 





자기 생활기록부 보면 '맨날 노는 아이'라고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는 데, 낡은 통지표 속에는 왜 그렇게도 '美的 감각'이 풍부했는 지, 전부 다 미미미미미미미....어쩌다 수(秀) 하나 눈에 띄긴 했지만, 아들 딸 성적표에 비하면 조족지혈. 아들 딸 성적표를 보니 만추를 쏙 빼 닮아 우수수수수수수...




그런데 어느날 자기가 시키는대로 안 한다고...
자기 맘에 안 든다고...
그 착하고 여린 녀석이 무릎을 꿇고 싹싹 빌도록 혼내키다니...

이유는 단 하나.
녀석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그게 과연 누구때문이었겠는가...
 




청미래덩굴의 빠알간 열매 속에는 가슴을 후벼파는 부끄러운 추억 한 토막도 끼어있었다. 


사단법인 여수갯가
전남 여수시 중앙동 686번지 2층
Tel. 061-920-5888
Web. www.getga.org
Facebook. https://www.facebook.com/getga.org


아들 딸들아 미안하다꾸나. 
차라리 너희를 혼내키던 그 시간에
청미래덩굴 우거진 숲 속을 찾아 애비의 추억을 들려주며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암튼 
사랑한다 내 새끼들아!...<계속>

*
여수 갯가길 관련 포스트 
☞ 갯가길,여수 토박이가 안내한 힐링로드 / 갯가길,과식한 생굴 직화구이 어땟길래 / 갯가길,느리게 걸으면 기쁨 두배 / 갯가길,나만의 힐링 포인트 / 갯가길,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풍경들 / 
갯가길,달님이 만든 오래된 풍경들 갯가길,청미래덩굴의 행복한 추억들 /      



Feliz Año Nuevo, Feliz Navidad~^^*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Flash] http://tsori.net/attachment/fk050000000005.swf


내가 꿈꾸는 그곳의 PhotОтправить сообщение для Марта с помощью ICQ 이야기 
2013 view 블로거대상 엠블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