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에 묻어둔 그리움
-세상은 발 아래 그리움은 저 먼 곳-
그리움은 과거형이란 말인가...
이틀 전, 어느 블친께서 '과거를 그리워 하면 늙었다는 증거'라고 했다. 옳은 표현이다. 어떤 이들의 표현처럼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 보다 적은 사람들'은 노인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육체도 마음도 미래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뜻도 되는...그러나 그리움의 실상을 알고나면 슬퍼할 일도 아니다. 허상을 기대하는 게 그리움 일 수 없는 것.
그래서 그리움이란 아이들의 몫이 아니라 어른들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겪진 못해도 산전수전 다 겪고 나면 해질녘 어둠처럼 오롯이 깃드는 게 그리움이자, 세상사가 누룩이 되어 발효과정을 넉넉하게 겪은 게 또한 그리움의 실상. 그땐 몰랐어도 가슴 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발효과정을 겪으면 어느날 그리움으로 환원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 그 시간이 하필이면 가을이라니...
그래서 그리움이란 아이들의 몫이 아니라 어른들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겪진 못해도 산전수전 다 겪고 나면 해질녘 어둠처럼 오롯이 깃드는 게 그리움이자, 세상사가 누룩이 되어 발효과정을 넉넉하게 겪은 게 또한 그리움의 실상. 그땐 몰랐어도 가슴 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발효과정을 겪으면 어느날 그리움으로 환원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 그 시간이 하필이면 가을이라니...
그곳이 하필이면 안데스의 어느 골짜기라니...먼저 포스트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쎄로 뽀초꼬(Cerro Pochoco,해발1.805 m,5.918 ft)'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동쪽으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위치한 안데스산군(山群)의 한 봉우리다. 산티아고의 산 끄리스또발 언덕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병풍처럼 안데스산맥이 길게 펼쳐져 있는 데 실로 장엄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어느날 '산 끄리스토발' 공원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안데스를 바라보며 '꼭 한 번 다녀와야 겠다' 싶은 생각이 들자마자, 다음날 지인에게 교통편을 물어본 후 산기슭까지 사전 답사를 마친 후 등산에 나선 것이다. 이곳의 산들은 한국의 크고 작은 산처럼 등산객을 위한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 산기슭까지 도착해도 그저 알아서 찾아가야 할 정도. 상대적으로 이곳에는 등산객들이 적어서 주말이나 휴일을 제외하면 정적이 흐를 정도로 조용하다. 금방이라도 산적(?)들이 출몰할 것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더군다나 산이라는 게 우리가 늘 보던 동네 뒷산이나 우리나라 산과 달리 칠레의 중부지역에 위치한 안데스산군은 남부와 전혀 다르다. 남부(빠따고니아)지역은 원시림에 뒤덮인 곳이라면 이곳은 황량한 사막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흔히 봐왔던 아름다운 숲 대신 수목한계선까지 용설란이나 기둥 선인장들이 즐비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것.
또 산이 너무 가팔라 골짜기에서 물 한 모금 구할 데도 없고, 깍아지른 절벽에는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로프 따위는 기대하는 게 잘못(?)된 생각일 정도. 그저 알아서 기든지 뛰든지 눈치껏 산행을 해야 하는 곳이다. 또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서민들이 아니란 것. 주로 공원에서 조깅을 한다던지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생활이 괜찮은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왠만한 산기슭에 가 보면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를 입고 동네 뒷산을 공략(?)하지만, 이곳 칠레노(칠레사람)들에게 아웃도어는 부(富)의 상징이기도 하다. 등산을 하기 위해 (치장에)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는 것. 그런 한편 사람들은 이른바 유명 아웃도어의 상표를 보면 부러워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산행에 나선 복장은 이들에게 흔치않은 차림으로 보여지기도 하는 것.
그러나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선 우리 차림은 정상적인 등산복장이 아니었다. 운동화에 스틱 하나씩 그리고 서브배낭에 렌즈와 물 두 통과 간이도시락과 비상 외투가 전부. 등산화를 신었다면 등산에 도움이 됐겠지만, 운동화는 매마른 등산로의 굵은 모래알 때문에 미끄러지기 일수였다. 그때마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것.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쎄로 뽀쵸코에서 고도를 높여가자 마침내 세상이 발아래에 펼쳐지며 고생의 보람이 느껴지는 것이다. 희한한 일이다. 이때부터는 정상으로 가는 길이 처음과 너무도 다르다. 힘도 덜 들고 봉우리를 돌아설 때마다 안데스의 실루엣이 황홀하게 다가오는 것. 글쎄...그 풍경들이 가슴 속에서 곰삭아 그리움으로 다가올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안데스 속에 묻어둔 그리움
뒤돌아 보면 아내와 함께 걸어왔던 길...
고도를 높여 내려다 보면 그 길은 '행복한 길'이었다.(숲 속에서 한 커플이 데이트에 열중... ^^)
엘범을 펼쳐두고 다시 갈 이유나 필요가 있을까 싶을 때마다...아니다. 아니라 했지만...
안데스의 실루엣은 자꾸만 우리를 부른다. 그게 그리움의 실상인가...
굽이굽이 작은 산등성이를 넘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너무 작아 비좁은 공간에 곧추서서 세상을 내려보다.
세상은 발 아래...그리움은 저 먼 곳에...
어쩌란 말인가...
잊고 싶고 잊을라치면 자꾸만 가슴을 후벼파는 데...
행복해야 한다...
아내가 저만치 앞서간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촌음으로 쪼개 쓴 한 여인...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우리가 넘나들었던 봉우리가 발 아래 있다.
안데스 속으로...아니 그리움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한 여인...
시방...나는 뷰파인더 속에서 흔적을 남겼던 그때를 그리워 하고 있다. 그게 하필이면 안데스 속에 묻어둔 그리움이라니...하필이면 왜 그 먼 나라의 낮설었던 산골짜기를 그리워 해야 하는 지...그때 당신이 저만치서 앞서 걷고 있지만 않았어도 안데스를 그리워 할 이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내게 세상의 아픔 전부를 품어준 안데스 같이 넉넉한 품이었나...<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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