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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창원 동판저수지에서 만난 오래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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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동판 저수지의 가을
-동판저수지에서 만난 오래된 추억-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다 지워진 줄 알았던 기억 저편의 풍경이 스물스물 기어나오게 만든 건 눈 앞에 펼쳐진 풍경 하나. 그곳은 유년기부터 중.고등학교까지 이어진 추억을 고스란히 박재해 둔 한 풍경이었다. 정중동의 저수지 저 너머로 철새들이 날개짓 하는 곳. 창원 동판저수지의 뚝방길을 따라 갈 빛이 완연한 왕버들과 수생식물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코 끝으로 비릿한 내음이 전해져 온다. 그건 저수지에 고인 물 냄새가 아니라 잊고 살던 오래된 추억의 향기다. 바람이 불지않아도 눈으로 맛 보는 오래된 향수.




필자의 고향은 부산이다. 요즘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가슴에서 발견할 수 없는 풍경이 있다. 부산은 바다와 산과 강과 습지 등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곳이거나 천혜의 자연을 지근거리에 업고 산 도시나 다름없었다. 금정산과 백양산과 황련산 등이 부산 앞 바다를 굽어보고 있고 그곳에는 유명 해수욕장들이 지천에 널려있는 곳.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그 바닷가의 물은 너무 맑아서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요즘 남태평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최소한 70년대 초까지 이어지곤 했던 곳이 부산 앞 바다. 그 푸른바다는 여전히 가슴에서 요동치곤 한다.



그러나 그건 적지않은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 부산 서면에서 가까운 백양산 정상에 올라서면 저 멀리 남쪽으로 부산 앞 바다가 우뚝 솟아보이고 서쪽과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가 꿈같이 펼쳐져 있는 곳.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성지곡수원지와 백두대간의 끝자락이 길게 늘어선 곳. 그곳에서 바다 건너 세상을 늘 꿈꾸고 살았다. 지금은 구글어스 등을 통해 세상을 손금 보다 더 뚜렷이 관찰 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가 됐지만, 그땐 작고하신 김찬삼 선생의 세계여행기를 가슴에 품고 짬만 나면 바다 건너 세상(세계일주)을 꿈꾸어 왔던 곳이다.




또 짬만나면 버스에 몸을 싣고 을숙도나 김해 명지 등 삼각주로 떠났고 가깝게는 주례나 사상 지역 등을 무시로 다녔다. 공단이 들어서고 개발되기 전까지 그곳은 천혜의 습지가 끝도 없이 펼쳐졌던 곳이며, 습지를 지나 강변에 도착하면 갈대가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가 무서울 정도였다. 가을이 되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철새들이 강하구의 갯벌에 앉아 쉼을 얻던 곳.




그곳은 조릿대 하나만으로도 팔뚝만한 붕어와 잉어는 물론 가물치를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곳이었다. 물 반 고기 반의 낙동강 하구...돌아가신 엄니께선 '먹지도 못(안)하는 그런 거(붕어) 왜 잡아오냐'며 뭐라 하셨다. 맛이나 영양가에 비해 아들이 흘린 땀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엄니 아부지 나이가 돼도 붕어 보다 붕어가 산 습지와 강이 더 오래토록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낚시대와 대로 짠 통바구니를 매고 집을 나서면 그때부터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행복했다. 평소 눈여겨 봐 두었던 강하구의 수로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갈대가 벗이 되고, 수초 사이로 난 작은 공간에서 찌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 바로 곁에서 보라빛 꽃을 피워 낸 수초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어느덧 해가 뉘엿거렸다. 어떤 때는 해가 다 지고 나서야 그제서야 수로 곁을 나섰다. 그 행복한 투어가 머지않아 끝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어느날 낙동강 하구는 하구언 댐에 막혀 새까맣게 혼절하고 있었다. 사상과 주례의 습지는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장이 들어섰다. 습지의 수로엔 시꺼먼 오염수가 가득하고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다는 점점 매립 면적을 넓혀갔다. 을숙도의 철새는 모두 떠나고 그때부터 낙동강을 찾을 일이 더는 없어졌다. 내 가슴에 품었던 행복한 추억 전부를 어른들이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개발 이익으로 경제가 나아졌으면 모를까. 그건 전부 몇 안되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천혜의 환경을 마구잡이로 개발하여 이익을 챙기고 국토는 신음을 하고 있었던 것. 그 실체가 드러난 건 최근의 일이다. 이제 겨우 밥술이나 뜨게 된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사라진 '마음의 고향'은 언제부터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것이다. 세상은 대명천지가 됐고 너도 나도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해외로 떠나게 된 세상.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국토는 사람들로부터 버림 받게된 세상으로 변했다.




그런데...그 와중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습지와 저수지 하나. 참 고마운 존재였다. 아무도 봐 주지않을 것만 같았던 저수지 하나가 까마득히 잊고살던 시간 저편의 추억을 하나 둘씩 꺼내 보이며 내 앞에서 즈윽이 눈을 맞추고 있는 것. 창원 동판저수지는 그렇게 내 앞에서 태고적부터 이어진 아름다운 습관을 잇고 있었다. 누구나 하나씩 가슴 속에 감추어 두었을 걱정 근심을 진공청소기처럼 조용히 흡입하는 곳. 그 곁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창원 동판저수지는 크게 주남저수지의 일부이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주남저수지 하나만 생각하지 주남저수지군(群)을 형성하고 있는 동판저수지와 산남저수지의 존재에 대해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지도를 펴 놓고 보면, 한 때 홍수조절을 감당했을 습지(저수지)의 북쪽 낙동강에 가까운 곳은  산남저수지며 가운데 위치한 곳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주남 저수지며 동판저수지는 맨 아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습지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곳이 동판저수지인 것.


 


그러나 지금은 낙동강으로부터 물길이 끊겨 저수지로 남아있고 가뭄이 되면 물이 말라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판저수지의 가을은 여전히 태고적 숨결을 이어가며 여행자의 발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볼 만큼 살아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공감하는 단어 하나가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을 '반추'하며 사는 것. 그 지독한 그리움이 동판 저수지에서 발견될 줄 누가 알았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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