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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화성문화제,행복했던 1박2일의 기록


Daum 블로거뉴스
 

화성문화제와 생태교통
-행복했던 1박2일의 작은 기록-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지난 주말(27~28일) 제50회 수원화성문화제와 생태교통 축제가 열리고 있는 수원화성을 1박 2일의 여정으로 다녀왔다. 서울에서 수원화성까지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꽤 긴 시간 생각에 잠겼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수원으로 발길을 돌리는동안 도대체 수원은 어떤 매력이 있어서 사람을 이토록 설레게 만드는지 이유 몇가지를 생각해 본 것이다. 서울시민으로 살아오는동안 서울은 크게 정이 가지않는 도시였는데 필자가 그 이유를 알게 되면 수원이 그립게 된 까닭을 찾게 될 것이다.




맨 먼저 서울이란 도시는 너무 각박하고 치열하다.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면 여유가 없고 뭔가에 좇기는 표정들이다. 도시는 생기를 잃고 푸석푸석해진지 꽤 오래 됐고 서로 눈치보느라 얼굴 마주치기 조차 무섭다. 도시는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을 해 두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슬픔이 가득하다. 도시에서 생기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 서울시민 1인이 느끼는 불행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명소라고 이름붙인 곳은 일부러 찾아다닌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두 번 다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싶은 생각이 머리 속을 아예 떠나버린 것이다. 그런데 지하철로 수원역까지 도착한 다음부터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상쾌해져 왔다. 이유가 뭘까.
 


사람이 반갑습니다.휴먼시티 수원 
 



수원시(시장 염태영)의 슬로건은 '사람이 반갑습니다'라며 '휴먼시티'임을 강조하고 있다. 수원역전에서 버스에 몸을 싣고 10분도 채 안되어 도착한 곳은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이 보이는 곳. 아직 약속장소까지 도착하려면 1시간 여의 시간이 남아 화서문 앞에서 내려 행궁동을 거쳐 황성행궁 앞 집결지로 걷기로 했다. 그동안 수원시의 상징 이미지로 사용한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곁에는 서북각루가 초가을 볕을 쬐고 있었는데 어느덧 하얀 억새가 반짝이고 있었다.


 

수원의 인구는 120만 명 정도로 알려졌고 울산광역시 보다 5만 명이 적으나 면적 때문에 광역시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참 다행한 일이다. 비록 광역시가 되면 시 공무원들의 수가 배로 늘어나 공무원들이 다소 여유가 있겠지만, 5만의 인구가 더 유입되고 마창진(마산.창원.진해)처럼 통합시가 되면 수원은 지금같이 정감있는 도시가 되지못할지도 모른다.




오산과 수원과 화성을 통털어 하나로 합치면 덩치는 커질 망정 그에따른 후유증은 불보듯 뻔할 것. 수원의 상징은 누가 뭐래도 정조대왕의 효심과 개혁정신이 깃든 수원화성이 주축이라야 옳다. 수원을 떠올리면 맨 먼저 머리 속으로 상기되는 게 정조대왕의 수원화성 등의 순이다. 백성들을 아끼고 사람사는 세상에서 '사람의 가치'를 중시한 한 어진 임금이 200여 년 전부터 계획한 도시. 그곳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곳에서 제50회 수원화성문화제가 시작됐고 생태교통 축제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화서문을 지나 행궁동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람개비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행사를 위해 만들어 둔 바람개비들이지만 이순간 만큼은 동심으로 돌려놓은 타임머신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도시의 꽉 막힌 공간에서 느낄 수 없는 정감어린 풍경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세계최초로 생태교통 축제가 열리고 있는 행궁동 일원이 코 앞에 있는 곳.


생태교통 축제 어떻게 됐을까




정말 궁금했다. 생태교통 축제가 시작되기 전 수원화성을 방문한 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먼저 성곽위에서 행궁동을 바라보며 자동차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봤다. 생태교통 축제 기간인 한 달동안 행궁동 일원의 주민들은 불편함을 무릅쓰고 자동차 없이 생활해야 하는 데 과연 그 힘든 일이 한 달동안 실천될 수 있는지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 행궁동 곳곳에는 주최측의 바람과 달리 자동차 몇 대가 골목에 주차되어있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매일같이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간 동네 바깥에 주차해 두고 이동한다는 게 쉽지않았을 것.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행궁동 외곽에서 주민센터로 발길을 옮기는동안 달라진 생태교통 현장이 너무 행복한 모습. 사람들은 카메라를 향해 기꺼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생태교통 축제 현장에서 만난 한 어린이에게 '차 없는 거리'가 어떤지 물어봤다.

"너무 좋아요. 있잖아요. 엄마하고 우리는 너무 좋아하는 데요. 아빠가 안 좋아해요."
"아빠가 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있잖아요. 아빠는 요. 오후에 (00일터로)출근하거든요. 그래서 귀찮은가 봐요. 너무 더웠거든요."




가까운 미래의 우리들 모습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는 생태교통 축제의 성공여부는 '아빠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엄마와 아이들은 드넓어진 차 없는 공간에서 안전하게 자유롭게 놀 수 있어서 좋지만 생계를 꾸려야 할 아빠 한테는 정말 귀찮은 행사였던 것. 더군다나 생태교통 축제가 열리고 있었던 9월 한 달 중에는 폭염이 기세를 부리던 날이 적지않았다.




그런데 한 여자 어린이의 생태교통 체험담을 듣고 보니 이틀 후면 막을 내릴 생태교통 축제가 마냥 아쉬운 것이다. 그래서 이 행사를 한 달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해 온 e-수원 시민기자 하주성(문화재 전문답사 블로거) 씨께 취재기간 중 체험담에 대해 알아봤다.

"사람들이 차 없는 거리를 너무 좋아합니다. 기간을 더 늘렸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할 숙제가 남은 거 같습니다. 동네 분위기 완전히 달라졌어요."




폐막을 앞 둔 생태교통 마을은 수원화성문화제에 참석할 손님맞이에 바빳다.생태교통 축제의 주 도로인 화서문로는 잔치준비에 한창이었다. 차 없는 거리가 잔치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 거리도 이틀 후면 자동차가 빠르게 달릴 것이라 생각하니 괜히 억울해지는 것. 다시 자동차가 거리를 메운다면 한 달 간의 축제는 그저 추억 속에서만 기억될 것인가.




달라진 화성행궁 앞 무예24기 공연

정조대왕께서 화성으로 행차하여 여독을 풀던 화성행궁 앞은 '무예24기' 공연이 펼쳐지는 곳으로 수원화성의 명물이었다. 
무예24기는 무예이십사반(武藝二十四般)으로 불리기도 하는 데 조선 정조 때 편찬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普通志)>에 수록된 총24가지의 군사훈련기술을 말한다. 여기에 권법과 같은 맨손 무술과 창, 검, 도, 편곤등의 병기를 사용하는 기법, 그리고 말을 타고 병기들을 사용하는 기법, 마상재, 격구 등이 체계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한.중.일 동양삼국의 병기술과 기마술이 체계적으로 그림과 설명으로 기록되어 있고, 동양삼국의 무술 중 주로 장점만을 택한 게 또한 무예24기인데 정조대왕의 호위부대 장용영이 숙지한 무서운 무술이다. 신풍루 앞에서 재연되는 무예24기 공연은 진검을 사용해 젖은 볏단을 순식간에 베어내는 놀라운 무술 등으로, 이곳을 찾은 분들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날은 지금껏 봐 왔던 공연과 전혀다른 연출이 시도되고 있었다.


 

그동안 신풍루 앞에서 재연되고 있던 무예24기 공연은 주로 장용영 군사 복장을 입은 건장한 무사들이었다. 그러나 이날 공연에는 여성들의 칼춤 등 안무가 곁들여진 매우 드라마틱한 연출을 시도한 것이다. 장용영의 칼바람이 이는 세기를 여성들의 군무가 부드럽게 감싸는 모습이랄까. 또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배경음악(효과음악)은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재밌었다.


 

이런 공연을 서울에서 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꿈도 꾸지못할 일이다. 서울에서 이렇게 맛난(?) 풍경을 연출하려면 경복궁 등 고궁같은 장소가 필요해야 겠지만 서울시와 문화재청 등에서 쉽게 재가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경복궁 주변은 '사람이 반갑지 않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있다. 대문은 굳게 잠겨있고 걸음을 옮기는 곳 마다 입장료를 요구한다.




그러나 수원화성은 다르다. 이 황홀한 공연을 모두 공짜로 볼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공연이 펼쳐지는 신풍루 앞은 이곳을 압도하는 빌딩이 보이지 않는다. 관중들은 마치 안락한 연못 속에서 여유롭게 유영하듯 무예24기 삼매경에 빠지기만 하면 그만인 것. 
 



봉수당에서 열린 과거시험

무예24기 관람이 끝나자 걸음을 화성행궁의 봉수당으로 옮겼다. 화성행궁의 봉수당은 정조대왕이 능행차 당시 머물던 정전이다. 또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만수무강을 위해 잔(혜경궁홍씨 진찬연)을 올리기도 한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당시 정조대왕의 '치사문'을 잠시 살펴보면 이러하다.

"국왕 모(某)는 삼가 건융(乾隆) 60년(1795) 윤 2월 13일을 맞이했습니다. 효강자희정선휘목혜빈(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 저하(低下)께서는 왕실의 아름다운 덕을 계승하사 바다 같은 마음으로 오랜 수(壽)를 누리시어 복(福)이 자손에게 흐르고 경사가 어머니에게 미쳤습니다. 공손히 축하의 잔치에 모시고자 삼가 술잔을 올립니다. 어머님의 연세를 아는, 심히 기쁜 날이오니 칭송하는 소리가 산처럼 울립니다. 아! 즐거운 이 잔치에 만물이 모두 은혜를 입어서 봄의 화창한 기운을 맞이하여 하늘의 도우심에 보답합니다. 어머님께서는 더욱 오래 사시어 복을 크게 받으시고 오래오래 태평하시고 변함없이 영원하소서. 경사롭고 즐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천천세(千千歲)를 기원하는 축수잔을 올립니다."


 

정조대왕께서 친히 어머니께 잔을 올렸던 봉수당에서 이날 과거시험이 치루어졌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카메라를 안 든 사람이 안 보일 정도로 셔터가 곳곳에서 작렬하며 행사를 방해할 정도였다. 정조대왕이 어진 임금이 아니라 '불통의 폭군'이었다면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들 정도로 행사장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그저 이곳에 함께 있는 것 만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자 정조대왕을 눈 앞에서 알현한 듯 하기도. 그리고 이번에는 봉돈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쉬웠던 봉돈 점화식
 




주지하다시피 봉돈은 봉화를 올리는 통신(신호) 시설이다. 수원화성의 봉돈 위치는 동남각루와 동포루 중간에 위치해 있다. 자료에 따르면 수원화성 안에는 독립적인 구역이 몇 개소있는 데 그곳은 봉화를 올리는 봉돈과 공심돈이라 한다. 성 안의 또다른 성으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던 곳이란다.




화성을 투어하면서 몇 번 봉돈 곁을 지나쳤지만 봉돈은 굳게 잠겨있었다. 봉돈은 외부와 차단됐을 뿐만 아니라 출입구도 성 안쪽에 나 있는 문 하나가 전부다. 그동안 봉돈은 굳게 잡겨있었으나 화성문화제 개막식에 맞추어 봉돈에 불을 지피는 의식이 있어 마침내 문을 열었다. 그 속을 들여다 보니 위의 그림과 같은 구조였는데 봉화가 어떻게 피어오르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행사에 참여한 카메라맨들은 곳 실망하기도 했다. 봉돈에서 모락모락 무럭무럭 하늘을 행해 피어올라야 할 봉화가 가난한 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비실거리며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옥에 티가 연출되고 있었던 것. 실수로 보였다. 오색 연막탄이라도 피워올리면 모처럼 문을 연 봉돈이 빛을 발할 뻔 했는데...그래서 봉화대신 구름을 봉돈 위로 걸쳐보며 위안을 삼았다. 그 다음 발길을 옮긴 곳은 화성문화제 개막행사장.




최고의 맛 수원양념갈비

팔달산 아래 주차장은 음식축제로 한창이었다. 연무대에서 화성열차를 타고 팔달산까지 이동해 개막 행사가 벌어지는 행궁광장 옆 주차장 전부가 음식축제 열기로 가득했다. 갈비굽는 냄새는 어찌나 황홀하던지. 만약에 수원화성을 투어하던 중 이런 먹거리를 그냥 지나친다면 울어버릴 지도 모를 일. ㅋ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풍경 만으로 부족했다. 거대한 천막 속은 양념갈비 굽는 냄새로 진동하고 있었던 것. 잠시 한 두 장면만 살펴볼까.




큼지막한 갈비가 양념을 덧 입기 전 손질되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곧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양념갈비 준비하는 손길만 봐도 잔치집(?)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



 
배가 부르니 세상 모든 풍경들이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메머드급 음식축제장 한쪽에선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곧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화성문화제 개막식이 시작된 것이다. 셔터를 참 많이 누른 개막식 현장에서 한 두장의 사진만 우선 소개해 드리면 이러하다.


 

수원화성문화제 50주년을 알리는 무대 모습...




무대 위에서 내려다보니 개막행사가 벌어지는 행궁광장 주변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날 개막식이 시작된 후로 폭죽이 수원화성 하늘을 수놓기도 했다. 사람들의 함성이 절정에 이르렀는 데 그 한가운데 정조대왕이 자리잡고 있었다. 200여 년 만에 귀환(?)한 정조대왕이 사람들을 행복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던 것.




수원화성문화제의 주인공은 손님들이었다. 정조대왕은 손님 맞이에 분주했고 이른 아침부터 밤 늦도록 시민들 곁에서 손을 흔들며 격려하고 있었다. 수원화성에 머무는 동안 정조대왕이 자꾸만 자꾸만 그리워진다. 우리시대가 잊고 살거나 잃어버린 넉넉한 카리스마의 소유자가 정조대왕이었다. 그 분이 이튼날 다시 장안문 앞에 나타나셨다.




수원화성문화제 이튼날 표정
 



이튼날, 필자는 주최측의 배려로 장안문 앞의 귀빈석을 용케도 차지할 수 있었다. 그곳은 임시로 만든 관람석이었는데 수원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외국의 도시에서 온 손님들이 주로 앉을 자리였다. 대략 서른 명 정도가 엉덩이를 맞대고 앉아야 할 비좁은 자리였는데 그곳에서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와 시민 퍼레이드를 구경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정조대왕이 능행차 중에 장안문에 다다르면 수원 유수(시장 염태영)의 영접을 받게 되는 데 그 장면을 귀빈석에서 지켜보며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게 된 행운을 누린 것이다.




그곳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니 가로등에 '자연과 역사를 품은 이야기 길'이라고 써 둔 표지가 보였다. 사람 사는 세상에 '자연과 역사'를 품지않은 길이 또 있을까. 그러나 주제를 보면 세상 어느곳에도 없는 '효행길'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와 시민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팔달로는 효행길이었다. 


 

세상에는 수 많은 행사가 존재하지만 '효(孝)'를 주제로 한 행사가 몇이나 될까. 국내에서는 유일하고 세계를 통털어도 있을까 말까 한 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팔달로에 줄지어선 인산인해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정조대왕(역) 오른쪽에 수원 유수(염태영 시장)이 한 두 걸음 뒤에서 행차에 합류한 모습이다. 정조대왕은 이런 모습으로 (내 곁을)스치듯 지나 장안문 안 화성행궁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와 시민 퍼레이드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와 시민 퍼레이드는 2시간 이상 이어졌다. 귀빈석에서 까치발로 서서 능행차 장면을 촬영하고 있으려니 피곤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 보다 카메라의 시선이 천편일률적이어서 좋은 장면을 다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대왕능행차도는 그림이었지만 이를 연시하는 행사에서는 사진과 영상으로 남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나름의 수고는 그 때문이었다. 당신의 업적을 기리는 수 많은 시민들의 바람이 사진 한 장 속 또는 영상으로 남겨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수고를 감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수원행 지하철에 몸을 실은 것이다. 정조대왕능행차 연시 퍼레이드가 장안문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즉시 이번에는 장안문 위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이미 수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뷰포인트에 자리잡고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와 시민 퍼레이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누렸던 행복 이상의 엑스터시를 누리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 중 몇 장면만 보여드리고 글을 맺고자 한다.


 

장안문에 시설된 총안(
銃眼,적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도록, 성벽이나 보루, 장갑차 따위에 뚫어 놓은 구멍)을 통해 시민 퍼레이드를 지켜보니 귀빈석에서 지켜보던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와 사뭇 달랐다. 보다 열린 공간에서 맛보던 느낌보다 더욱더 절실해져 오는 것.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한 명당에 자리잡고 황홀한 퍼레이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황홀했다.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인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더불어 행복해 하는 모습들...그곳에서 이 행사를 주최하고 주관한 한 분을 우연히 퍼레이드 현장에서 만나게 됐다.



시민 퍼레이드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화성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 그는 세그웨이('왕발통'이라고도 함)를 직접 운전해 가며 손님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손님을 배웅하고 다시 돌아서는 장면을 용케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는 염태영 수원시장이었다. 수원화성문화제는 물론 생태교통 축제를 위해 한 달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호스텔에 머물면서 내외 귀빈은 물론 시민들과 함께 축제현장을 누비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반갑습니다!!...당신 곁으로 시민기자 하주성님이 취재차 바삐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하주성님 또한 한 달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생태교통 축제 현장은 물론, 화성문화제를 카메라에 담으며 취재에 올인하고 있었던 시민 저널리스트였다.




장안문에서 내려와 정조로를 따라 종로사거리로 이동하는 동안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미 퍼레이드의 마지막 행렬이 사라지고 있을 때쯤이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기다리게 만들었을까.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성에 차지도 않는 굶주림. 그것은 풍요로운 물질로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후드득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와 시민 퍼레이드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서울에서 수원화성으로 내려와 1박 2일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시금 되새겨 본 게 정조대왕의 효심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효심만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정조대왕을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게 당신의 불행했던 과거의 모습 아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불행을 감수하고 백성들과 소통에 나선 모습은 이 시대가 본받지 않으면 안 될 최고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역설적으로 정조대왕이 그리워지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같거나 비슷한 이유 등으로 필자 또한 수원화성을 그리워하고 있었던지, 귀가 후에도 여전히 수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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