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4.19 기념일' 뒤에 숨겨진 짧은 이야기
오늘이 4.19혁명 48돐을 맞이하는 날이다.
4.19혁명 기념일은 이승만대통령의 3.15부정선거로 촉발된 '학생운동'으로 알려져 있고
나는 이 기념일에 대해서 형들로 부터 수도 없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지금은 잊혀진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 운동이 결국 '민주화'를 이루어 내는데 성공했지만
주지하다시피 '민주화'는 박제된 채 '경제'에 떠밀리고 말았다.
이른바 학생운동의 상징이었던 '저항'과 '민주'는 '미팅'과 '토익'에 점령당하여
반세기만에 '4.19정신'은 실종되고 말았던 것인데
민주화의 정신적지주였던 4.19가 사라진 배경에는 소위 '민주인사'들의 그릇된 행태가 다수 포함되었다.
이를테면 문민정부 이후 노무현정부까지 민주인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실망감이었을 것이다.
오늘 뉴스를 살펴보니 4.19에 대한 기사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반세기만에 다시 이승만정부와 같은 망령이 되살아 난 것일까?
"4.19혁명의 배경에는 당시 이승만정부가 미국의 원조에 의지해 경제정책을 펼쳤는데,
1957년부터 원조가 줄어들고 세계 경제가 불황에 닥치자 한국 경제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또 이승만의 장기집권과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높아갔다.
그런 상황에서 1960년의 제 4대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이승만정부는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감행했다.(3.15부정선거)
그러고는 3월 17일에 이승만이 88.7%, 이기붕이 79% 득표하여 대통령과 부통령에 각각 당선되었다는 발표를 한다.
그러자 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규탄시위가 마산을 비롯, 전국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4.19혁명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은 무차별 발포하며 강경 진압을 했다.
그런데 4월 11일에 마산 시위 중 실종되었던
김주열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이 때문에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격렬해지고, 시위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4월 18일에는 고려대학교 학생 3천여 명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 시위를 벌이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정치깡패의 습격을 받아 1명이 죽고 수십명이 부상한다.
이를 계기로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독재타도 시위로 바뀌게 된다.
마침내, 4월 19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비롯하여 서울시민 10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한다.
일부는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향한다. 이에 당황한 정부는 서울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경찰은 시위 군중에게 발표하며 무력 진압에 나서
이날 하루 동안 전국에서 186명이 사망하고 6천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이승만은 이기붕을 사임시키고 자유당 총재직을 버리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4월 25일에는 대학교수 300여 명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 는 피켓을 들고
서울 시내를 행진하며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고, 시위는 재개되었다.
미국도 사태를 수습하려면 이승만의 하야가 절대적이라고 권고한다.
결국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29일 하와이로 망명했으며,
이기붕 일가는 자살했다."고 전한다.
박정희군사독재정권으로 부터 전두환.노태우군사정권까지 이어진 군사정부를 타도한 것은
전적으로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이었고 학생운동이 혁혁한 공를 세운것이 틀림없었다.
학생운동은 '운동권'이란 이름으로 우리들에게 익숙하여
누구든지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서라면 학생운동을 하면서 '감방'에 갔다오는 이력(?)이 없이는 불가능했고
그런 이력을 가진 학생출신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몰렸다.
그리하여 그들이 '민주화세력'이란 이름으로 '민주정부' 속에서 군림했던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학생들을 이용(?)한 정치를 계속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운동권학생(총학생회) 뒤에는 거의 특정정당이 배후에 있었다.
4.19혁명에 참여했던 순수한 '학생운동'을 '정치적운동'으로 전락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4.19의 배후에 숨어있는 짧은 이야기 속에는 이승만이 미국의 조정을 받고 있는 인물임이 드러나 있다.
장면내각이 요즘말로 '좌빨'이었을까?...
당시의 '좌빨'들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좌빨(?)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배경에는
'미팅'과 '토익'이 또다른 한몫을 하고 있다.
해방후 우리의 현대사는 미국의 패권앞에서 쪽도 쓰지 못하는 이라크정부처럼
'민족적 자존심'과 같았던 '저항정신'이 사라지고
'샌드위치'에 길들여지고 토익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세력들이 정신차리지 않으면 머지않은 장래에 샌드위치만 입에 물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민족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대학가에서 학생운동이 사라진 배경에는 '민주정치인'들의 자가당착적인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정치인도 아닌데 4.19영령들에게 그저 죄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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