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號의 슬픈 퇴역
-8년 전 추억 간직한 빅토리아호 잠들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찾아간 그곳...
두번의 감동은 없었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기회는 단 한 번. 같은 느낌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행운이었다. 8년 전 우리는 모데스타 빅토리아호 갑판에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나우엘우아피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빅토리아호 선상에서 호수 속으로 행복한 추억을 묻었을까.
수정처럼 맑고 푸른 호수와 하얀 눈을 머리에 인 안데스 산맥. 코 끝은 신선한 바람의 향기가 가득했다. 그날은 바람도 잦아들어 수면은 면경같이 변했던 곳. 세상에 태어나서 호수가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그런 느낌을 증폭시켜준 건 '모데스타 빅토리아호('그녀'라 부른다)' 때문이었다. 나우엘우아피 호수와 너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산 까를로스 데 바릴로체에 위치한 이 호수를 찾아 먼곳으로부터 여행을 떠났다. 75년 전의 일이다.
수정처럼 맑고 푸른 호수와 하얀 눈을 머리에 인 안데스 산맥. 코 끝은 신선한 바람의 향기가 가득했다. 그날은 바람도 잦아들어 수면은 면경같이 변했던 곳. 세상에 태어나서 호수가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그런 느낌을 증폭시켜준 건 '모데스타 빅토리아호('그녀'라 부른다)' 때문이었다. 나우엘우아피 호수와 너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산 까를로스 데 바릴로체에 위치한 이 호수를 찾아 먼곳으로부터 여행을 떠났다. 75년 전의 일이다.
그녀의 나이는 75세...우리가 빠따고니아 투어를 마치고 북상하며 뿌에르또 몬뜨를 향할 때,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곳은 아르헨티나의 산 까를로스 데 바릴로체에 위치한 나우엘우아피 호수와 모데스타 빅토리아(Modesta Victoria)란 이름의 근사한 크루즈여객선이었다. 그녀는 8년 전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감흥을 선물해 준 터라,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투어 여정에 포함시켜 두었다.
또레스 델 빠이네 투어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그토록 갈망하던 '루따 꾸아렌따(아르헨티나 40번 국도)'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루따 꾸아렌따는 생각 보다 힘든 시련을 겪게 만들었다. 팜파스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과 비포장 도로는 오랜 여행에 지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똑같은 풍경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던 것.
나우엘우아피와 그녀를 만나는 여정은 험난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바릴로체에 도착하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퇴역한 줄 꿈에도 몰랐다. 우리는 8년 전의 추억을 되찾아 나우엘우아피 호수의 산 까를로스 항구에 정박해 있는 그녀를 만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면 할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을 것 같았다. 정말 보고싶었다.
그녀의 나이는 75세, 193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Verchure 조선소'에서 태어(건조)났다. 300명의 여객을 태울 수 있고 3층 높이의 전장 33m의 아리따운 체구를 가진 그녀는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후, 다시 아르헨티나 평원을 거쳐 나우엘우아피 호수가 위치한 안데스 자락까지 긴 여행을 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다시 탄생하게 된다. 재조립 후 나우엘우아피 호수에서 취항하게 된 때문이었다. 그녀의 취항식에는 바릴로체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하해 주었다.
그녀가 나우엘우아피 호수의 명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와 함께 나우엘우아피 호수을 크루즈한 여객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보통의 밋밋한 여객선과 달리 귀족적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거만하지도 않았다. 그녀를 감싼 청동제 피팅과 하얀 전등갓과 티크로 만든 갑판은 그녀를 우아하고 고풍스럽게 만들었다. 누구나 그녀와 함께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는 건 물론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는 두 개의 350마력 짜리 디젤엔진을 장착하고 산 까를로스 포구를 떠나 나우엘우아피 호수의 빅토리아 섬으로 우리를 데려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땐 산 까를로스 포구 한쪽에서 우두커니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과 행복을 나눠주었던 그녀는 치매를 앓고 있는 여인처럼 우리를 봐도 아는체 하지않았다. 겉모습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우리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 그녀...그녀는 7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모습으로 기억 저편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신식 크루즈여객선에 몸을 싣고 다시 투어에 나섰으나 나우엘우아피 호수 조차 그녀와 함께 침묵하고 있었다.
또레스 델 빠이네 투어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그토록 갈망하던 '루따 꾸아렌따(아르헨티나 40번 국도)'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루따 꾸아렌따는 생각 보다 힘든 시련을 겪게 만들었다. 팜파스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과 비포장 도로는 오랜 여행에 지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똑같은 풍경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던 것.
나우엘우아피와 그녀를 만나는 여정은 험난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바릴로체에 도착하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퇴역한 줄 꿈에도 몰랐다. 우리는 8년 전의 추억을 되찾아 나우엘우아피 호수의 산 까를로스 항구에 정박해 있는 그녀를 만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면 할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을 것 같았다. 정말 보고싶었다.
그녀의 나이는 75세, 193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Verchure 조선소'에서 태어(건조)났다. 300명의 여객을 태울 수 있고 3층 높이의 전장 33m의 아리따운 체구를 가진 그녀는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후, 다시 아르헨티나 평원을 거쳐 나우엘우아피 호수가 위치한 안데스 자락까지 긴 여행을 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다시 탄생하게 된다. 재조립 후 나우엘우아피 호수에서 취항하게 된 때문이었다. 그녀의 취항식에는 바릴로체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하해 주었다.
그녀가 나우엘우아피 호수의 명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와 함께 나우엘우아피 호수을 크루즈한 여객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보통의 밋밋한 여객선과 달리 귀족적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거만하지도 않았다. 그녀를 감싼 청동제 피팅과 하얀 전등갓과 티크로 만든 갑판은 그녀를 우아하고 고풍스럽게 만들었다. 누구나 그녀와 함께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는 건 물론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는 두 개의 350마력 짜리 디젤엔진을 장착하고 산 까를로스 포구를 떠나 나우엘우아피 호수의 빅토리아 섬으로 우리를 데려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땐 산 까를로스 포구 한쪽에서 우두커니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과 행복을 나눠주었던 그녀는 치매를 앓고 있는 여인처럼 우리를 봐도 아는체 하지않았다. 겉모습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우리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 그녀...그녀는 7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모습으로 기억 저편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신식 크루즈여객선에 몸을 싣고 다시 투어에 나섰으나 나우엘우아피 호수 조차 그녀와 함께 침묵하고 있었다.
8년 전 추억 간직한 빅토리아호 잠들다
-8년 전,빅토리아호와 함께 한 크루즈 장면들-
8년 전, 당시엔 빅토리아호에 몸을 싣고 나우엘우아피 호수 투어를 끝낸 후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섰다. 금번 투어땐 반대 여정...
Boramirang
내가 꿈꾸는 그곳의 Photo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