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할미꽃이 핀다
-뒷동산에서 만난 할미꽃 반갑다-
서울에도 할미꽃이 핀다!...
뒷동산에서 만난 할미꽃 반갑다
할미꽃은 그런 꽃이자, 우리 정서 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던 우리 야생화였다. 그나마 흔하디 흔한 진달래의 개화시기에 열광한 것도 그런 이유가 발동한 것이나 다름없다. 곳곳에서 이름도 모를 외래종들이 판을 치는 동안 우리 것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 그래서 할미꽃의 꽃말이 '슬픈추억'이라고 했던가.
한 세대가 더 지나고 나면, 우리나라 전역 산과 들에서 피고지던 할미꽃은 그나마 낮선 꽃이 될지도 모르겠다. 외래종에 밀린 당신을 찾는 사람도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도 귀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할미꽃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든 것도 그런 연유였다. 흔할 땐 귀한 줄 모르다가 막상 우리 곁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지자 금쪽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는 것. 가녀린 솜털 하나 건드리지 않고 고이 담아온 할미꽃. 구체적인 장소를 공개하면 다칠까 염려되어 조용히 공개해 드린다. ^^
서울에도 할미꽃이 핀다
Boramirang
서울에도 할미꽃이 핀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할미꽃 구경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할 거 같아서 강조해 본 말이다. 서울에도 할미꽃이 핀다!...며칠 전 4월 1일 오후,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린 대모산 기슭을 이틀 째 연달아 방문했다. 이맘때 가장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카메라에 담아두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됐다.
양지바른 곳. 금잔디가 자라는 곳과 마주치자 불현듯 할미꽃이 생각났던 것. 할미꽃이 서식하기 좋은 장소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할미꽃 서식지로 적당하다 할지라도, 난개발로 인해 할미꽃이 뿌리를 내릴 땅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느 문중의 선산 곁을 둘러봤다. 눈에 띄지 않았다.
후손들이 너무 잘 가꾸어 놓은 선산은 잡초 하나 보이지 않게 말끔하게 잘 단장해 두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양력 4월 초 하룻날이었지만 금잔디가 여전히 누렇게 빛을 발한 곳에, 낮 익은 할미꽃 한 송이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세상에!...너무 반가웠다. 맨 처음에 등장한 할미꽃 사진이 그 주인공. 동네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할미꽃이 피고 있었다. 서울에도 할미꽃(야생화)이 피고 있었던 것.
양지바른 곳. 금잔디가 자라는 곳과 마주치자 불현듯 할미꽃이 생각났던 것. 할미꽃이 서식하기 좋은 장소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할미꽃 서식지로 적당하다 할지라도, 난개발로 인해 할미꽃이 뿌리를 내릴 땅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느 문중의 선산 곁을 둘러봤다. 눈에 띄지 않았다.
후손들이 너무 잘 가꾸어 놓은 선산은 잡초 하나 보이지 않게 말끔하게 잘 단장해 두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양력 4월 초 하룻날이었지만 금잔디가 여전히 누렇게 빛을 발한 곳에, 낮 익은 할미꽃 한 송이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세상에!...너무 반가웠다. 맨 처음에 등장한 할미꽃 사진이 그 주인공. 동네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할미꽃이 피고 있었다. 서울에도 할미꽃(야생화)이 피고 있었던 것.
뒷동산에서 만난 할미꽃 반갑다
할미꽃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절을 하듯 들여다 봤다. 솜털이 뽀송뽀송. 붉은 꽃잎은 키작은 줄기가 지탱하기 힘들었는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또 방금 고개를 내민 것인지. 막 피어나기 시작한 할미꽃은 하늘을 향해 뾰죽한 꽃봉오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은 언덕 위에 할미꽃이 무리지어 피고있었다. 할미꽃 군락지로 손색이 없는 귀한 땅. 서울에서 이런 곳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었다.
서울은 성곽처럼 빙둘러 산을 가진 세계유일의 도시일 것. 그 산들은 시민들에게 휴식을 가져다주는 최적의 장소임에 틀림없다. 그 바쁜 일상 중에서도 사람들은 주말만 되면 가까운 산을 찾을 정도이므로 산이 주는 힐링효과는 대단할 것.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가까운 산이나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야생화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며 우리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갔다. 예전에 흔히 볼 수 있던 꽃들이 도시의 난개발과 달라진 문화 등의 이유로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었던 것.
할미꽃은 그런 꽃이자, 우리 정서 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던 우리 야생화였다. 그나마 흔하디 흔한 진달래의 개화시기에 열광한 것도 그런 이유가 발동한 것이나 다름없다. 곳곳에서 이름도 모를 외래종들이 판을 치는 동안 우리 것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 그래서 할미꽃의 꽃말이 '슬픈추억'이라고 했던가.
한 세대가 더 지나고 나면, 우리나라 전역 산과 들에서 피고지던 할미꽃은 그나마 낮선 꽃이 될지도 모르겠다. 외래종에 밀린 당신을 찾는 사람도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도 귀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할미꽃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든 것도 그런 연유였다. 흔할 땐 귀한 줄 모르다가 막상 우리 곁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지자 금쪽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는 것. 가녀린 솜털 하나 건드리지 않고 고이 담아온 할미꽃. 구체적인 장소를 공개하면 다칠까 염려되어 조용히 공개해 드린다. ^^
서울에도 할미꽃이 핀다
할미꽃이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작은 언덕을 내려오는 동안 생전 처음으로 할미꽃의 생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할미꽃이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양지바르고 금잔디가 있는 곳. 맨 땅이나 나무 그늘 습한 곳은 할미꽃 서식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비록 동강 할미꽃이 벼랑끝 돌틈바구니에서 꽃을 피운다고 할지라도, 대부분 할미꽃들의 처지(?)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 뒷동산 양지바른 곳이 적합해 보인 것. 그래서 우리와 더욱더 친해진 꽃이자, 우리 정서 속에 오래토록 기억된 이유 같다. 우리 할매 할배 선조님이 돌아가시면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모셨고, 할미꽃은 그곳에서 봄을 맨 먼저 알렸다. 서울에서 할미꽃을 만난 장소는 그런 곳이었다.
비록 동강 할미꽃이 벼랑끝 돌틈바구니에서 꽃을 피운다고 할지라도, 대부분 할미꽃들의 처지(?)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 뒷동산 양지바른 곳이 적합해 보인 것. 그래서 우리와 더욱더 친해진 꽃이자, 우리 정서 속에 오래토록 기억된 이유 같다. 우리 할매 할배 선조님이 돌아가시면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모셨고, 할미꽃은 그곳에서 봄을 맨 먼저 알렸다. 서울에서 할미꽃을 만난 장소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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