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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서장대의 색다른 야경 환상적


Daum 블로거뉴스
 


서장대의 色다른 夜景 환상적
-수원 화성 서장대의 낮과 밤-




똑같은 장소. 밤에 보면 다르다.


Daum view


이곳은 수원 화성의 서장대. 비운의 사도세자의 죽음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가슴에 슬프디 슬픈 한을 간직한 조선의 정조대왕은, 아버지(사도세자)의 융능(현륭원)을 참배한 직후 이곳을 다섯 번이나 올랐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1795년 윤 2월 12일, 정조대왕은 이곳 서장대에 올라 당신의 친위부대인 장용외영의 군사들의 주.야간 훈련을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그곳을 지난 가을에 이어 얼마전(3월 16일)에 다시 올라가 봤다. 지난 가을에는 주간에, 금년 봄에는 야간에 올라가 본 것.

똑같은 장소지만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런 느낌은 정조대왕이 현륭원을 다녀온 직후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에 올라 화성행궁을 바라보며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할 때와 별로 다를바 없었겠지만, 그 때와 사뭇 다를 것. 당시 정조대왕이 서장대에서 화성행궁을 내려다 봤을 땐 칠흑같은 어둠이 깔렸다면, 지금은 화성행궁 일대가 불야성을 이룬 전혀 다른 세상이 됐다. 똑같은 장소에서 본 화성행궁의 모습이 불과 200여년 만에 전혀 딴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서장대에서 바라본 화성행궁과 수원의 야경은 KBS-2TV '1박2일' 프로그램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수원 화성의 또다른 볼거리가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진 것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서장대. 멀리 하현달이 그믐밤을 재촉하고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수원 화성이 일반에 공개되어 공원같은 느낌을 주겠지만, 예전 같으면 정조대왕이 서장대로 향하는 이 길 양 옆으로  횃불이 줄지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가로등이 훤히 켜진 길을 따라 서장대(화성장대)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 것. 서장대는 조도높은 조명에 의해 환하게 정체를 드러냈다.




밤에 보는 서장대의 모습은 낮에 본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 낮에 본 서장대와 화성행궁의 모습을 밤에 본 풍경과 비교해 보면 이러하다.


낮에 본 서장대(화성장대)와 수원 화성, 2012년 11월 3일
 


 

















수원 화성에 들러 서장대에 올라갈 기회가 생긴다면(아니 꼭 한 번 들러 보시기 권유한다), 서장대에 올라 화성행궁과 수원의 야경을 살피며 불과 200여년 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서울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위치한 수원은 말 그대로 불야성을 이룬 곳으로 정조대왕이 환생해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 눈이 휘둥그래질 것.

이 때 화성행궁을 비롯한 수원의 야경을 눈여겨 보면서 챙겨야 할 '팁' 하나가 있다. 정조대왕 당시 야간에 장용외영 군사를 지휘할 때 쓰였을 봉돈의 모습을 염두에 두면 재밌다. 봉돈은 '
연기나 불빛으로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통신)시설'이며 수원 화성에 설치돼 있다.


 

지난해 가을에 촬영된 수원화성의 봉돈. 
봉돈은 일자문성(一字文星)의 위에, 동2포(東二鋪)와 동2치(東二稚)의 사이에 있는데 행궁을 안조(案照)한다. 4성을 쌓고 나서 파수(把守)를 설치하여 정찰할 임무를 맡긴 것은 척후(斥候)의 의미를 가진 것이니, 멀리 육지나 바다에 대한 경보를 알리는 것을 더욱이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드디어 철성(凸城)의 제도에 의거하여 비로소 봉돈을 설치하였다.

벽돌로 쌓아올려 성의 몸체 위에다가 벽돌로 다시 높게 쌓았으며, 성 밖으로 18척이나 튀어 나오게 하여 마치 치(雉)처럼 생겼으면서도 그 보다 크다. 외면의 돌로 쌓은 것이 5층, 벽돌로 쌓은 것이 62층으로 전체 높이 25척, 너비 54척, 현안 2구멍을 뚫었다.  내면은 굴곡이 지게 하여 3층으로 만들었는데, 제1층의 높이 4척, 두께 8척으로 5개의 화두(火竇)를 설치하였다. 화두의 밑둘레 각 17척 2촌, 위의 줄어든 둘레 11척 5촌, 높이 11척으로서, 성가퀴 위로 6척이나 올라갔다.  

거구(炬口)는 허리 쯤 높이에 있는데, 길이 각각 3척 1촌, 너비 1척 5촌, 위로는 꼭대기까지 뚫어지게 하였는데, 꼭대기 부분 지름이 1척이다. 5화두의 사이에는 성가퀴를 붙였고, 양쪽 끝은 구부려 안으로 향하게 하였는데, 3면에 포혈 18개를 갖추었다. 아래 두 층의 벽돌 층계는 너비 각 1척 4촌이고 높이 3척 3촌인데, 이것도 또한 휘어 구부려 3면 벽성을 만들고, 총안 18개와 누혈 1개[사방 1척]를 내었다. 좌우의 구부러진 돌층계를 거쳐 위로 올라가서 거로(炬路)로 통하게 되었는데, 층계가 각 10층이다.
 
양쪽 가장자리의 층계 끝에는 벽돌로 지은 집이 이어졌고, 용마루 없이 기와로 덮었다. 남북에 각각 한 간씩 있는데, 남쪽에 있는 것은 온돌로서 지키는 군졸이 거처하는 곳이고, 북쪽 것은 판자를 깔았는데 기계 따위를 넣어둔다.  봉돈에서 성내로 들어가려면 이 2곳의 모퉁이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좌우 것이 모두 길이가 16척이다. 돌층계의 등에 기대어 하나의 네모진 성을 만들고, 층계 위에는 짧은 담을 3 층으로 만들었는데, 아래는 2집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면의 2간은 벽돌로 쌓은 담인데, 길이가 18척 6촌이고, 한 가운데에 작은 문을 홍예로 틀었다. 담의 높이 13척으로 높이가 집과 같다. 담의 안쪽 등()의 아래에 해당하는 곳은 남북이 32척이고 동서가 21척이다.  

저녁마다 남쪽의 첫째 횃불 구멍에서 횃불 하나를 들면 동쪽으로 용인 석성산(石城山)의 육봉(陸烽)에서 봉화로 응하고, 서쪽이 없으면 횃불을 들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다만 흥천대의 바다 봉화는 너무 멀어서 곧 바로 전하기가 어려우며 또 다시 화성부의 서쪽 30리 서봉산(棲鳳山) 위에 새로이 간이 봉화를 두어 여기에서 오는 봉화를 이 곳에서 전담하도록 하였다. 서봉산 사이 봉화는 또한 다섯 개의 화두(火竇)를 잡석대(雜石臺)위에 설치 하였는데, 화두의 높이 11척이고, 아랫 둘레 13척인데, 돌로 쌓고 회를 발랐다.  

그 꼭대기는 허리 쯤의 높이로 하였고, 모두 횃불 아가리가 있는데, 동쪽으로 화성부 봉돈의 봉화에 준하고 있다. 대 아래 산 허리에 4간의 곳간을 지어 군대 물품을 저장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수직청(守直廳)을 지었다.(자료 출처 e-수원)
 

밤에 본 서장대(화성장대)와 수원 화성, 2013년 3월 16일




수원 화성의 봉돈을 참고로 서장대에서 야간 훈련을 진두지휘 했을 정조대왕 당시를 떠올려 보면 당시의 통신수단은 매우 원시적인(?) 형태 였을 것. 비록 수원 화성이 실학자 정양용이 고안한 거중기 등으로 엔틱하고 모던하면서 매우 세련되고 과학적인 축조방법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통신 시설은 여전히 낙후되었을 것.

전령이 헐떡 거리며 긴급한 사항을 전했거나, 멀리 봉돈으로부터 이어진 다급한 상황을 서장대의 지휘부로 전달했을 것이다. 위성을 이용한 최첨단 통신시설을 갖춘 요즘 모습과 사뭇 다른 것. 예전에 봉화불이나 봉돈에 불을 피우기 위해 난리를 쳤을 통신병들을 생각하면 괜히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요즘은 최소한 워키토키 하나 만으로 상황이 단박에 전달된다.


"
(치익~)여기 봉돈...서장대 응답하라.긴급이다.(치익~)..."
"(치익~)여기 서장대...무슨 일인가 봉돈.(치익~)" 
"
(치익~)여기 봉돈. 조금 전 긴급보고가 들어왔다. 카메라를 든 21세기형 사람 열댓명이 서장대로 향했다고 한다.(치익~)"
"(치익~)알았다. 봉돈. 그들은 21세기에서 팸투어에 나선 사람들이다. 오버(치익~)"

그러나 이것마저도 조금은 구식이다. 비록 통신보안에 취약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같으면 스마트폰으로 즉시 이런 상황을 사진과 함께 실어 보고했을지도 모른다. 정조대왕이 눈이 휘둥그래질 또 다른 낮선 풍경이자, 당신이 그토록 꿈꾸시던 사람사는 세상의 모습이 과학으로 발현된 모습. 서장대의 색다른 모습은 그렇게 시작된다. 




서장대에서 바라 본 수원 화성의 야경. 일행의 모습을 야경을 배경으로 촬영해 봤다.




전혀 색다른 서장대의 야경...







서장대의 배경이 된, 별 하나 달 한 조각...




서장대에서 내려단 본 화성행궁과 수원의 야경.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수원 화성과 수원의 야경을 보면서 뭔가 서운한 느낌 하나. 그믐밤을 향해 치닫고 있는 밤하늘이 뭔가 요구를 하는 것 같았다. 2% 부족한 느낌이랄까. 이런 빈 하늘을 가르는 화끈한 이벤트 하나쯤 있어도 될 법 했다. 수원 화성을 찾는 사람과 서장대를 찾는 사람들의 가슴에 두고두고 잊지못할 추억 하나 선물해 주면 어떨까 싶은.

그 이벤트를 봉돈에서 폭죽을 쏘아올여 대미를 장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주말 내지 계절 등 일정한 날을 택해 수원 화성의 하늘에 불꽃놀이를 연출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불야성을 이룬 어두운 하늘에 불꽃을 그려넣어 봤다. (짜잔...^^)




서장대에서서 혹은 수원화성에서 가족과 연인들과 함께 이런 장면을 보게된다면 두고두고 이곳을 잊지못하게 될 게 아닌가.












욕심 같았으면 주말마다 폭죽이 펑펑 터지면 금상첨화일 것. 정조대왕이 야간에 서장대에 올라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할 땐 생각지도 못했을 깜짝놀랄 이벤트. 또 폭죽놀이가 아니면 어떠랴. 봉돈에서 레이저빔을 쏘아올리면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은 어느덧 '환타스틱한 꿈의 장소'로 바뀌며 세계인들을 불러모을지도 모른다. 야간에 방문한 서장대에서 생각해낸 발칙한 생각. <계속>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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