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카메라' 보신적 있나요?
앨범을 정리하다가 재미있는 그림 한장을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그림속에는 오래된 카메라 한대가 있는데 이 카메라가 있었던 곳은 잉카의 나라 페루의 수도 꾸스꼬였습니다.
제가 저 카메라를 만날 당시만해도 고산증세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였지만
그때도 저는 저런 카메라를 보며 너무도 신기해 했습니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가 판을 치고 있고 사진기술은 눈부실 정도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카메라 한대만 있으면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좀처럼 작품다운 사진은 만들 수 없는 게 또한 사진기술입니다.
페루의 수도 꾸스꼬에서 만난 사진사와 요즘 보기힘든 카메라
그림속의 이 카메라는 오늘날과 같은 사진기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초기 '카메라 모델'과 닮아 있어서
이 카메로로 찍은 그림을 컴에 올린다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카메라와 사진의 역사도 알겸 우리나라의 '카메라박물관http://www.kcpm.or.kr/'에 있는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카메라박물관에 있는 자료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사진사가 있는 곳에서 지척에 있는 페루의 공립학교
'사진의 태동'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사진술(Photography)이전에 '카메라'는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15세기 끝나는 무렵,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라고 하는것은
작은 구멍을 통해서 들어온 빛이 한쪽 벽면에 영상을 맺어주는 현상을 말하며
11세기 무렵 아랍의 과학자, 철학자들이 텐트속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바깥의 영상을 비춰주는 현상을 알고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카메라 옵스튜라'를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사진의 태동'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 초기 자료>
이태리 사람으로 다니엘로 바바로(Danielo Barbaro)는
컴컴한 방에서 렌즈를 통하여 들어온 빛을 흰종이에 받아보면 바깥 경치가 그림같이 보인다고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컴컴한 방)에 대해서 발표하였고
그것을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큰 카메라 속에 사람이 들어앉아 영상을 보는 모양입니다.
<카메라 옵스큐라(Obscura)의 개념(좌)과 카메라 루시다(Lucida)의 개념(우) 자료>
이후 카메라 초점면을 우유빛 유리관이 있어
밖에서 그림을 보게 된 것을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투명한 방)이며 화가들이 많이 이용하였다고 전해져 옵니다.
1568년 '사진의 발상'은 옵스큐라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리마에서 꾸스꼬로 날아가는 비행기속에서 내려다 본 안데스산맥
16세기 말경, 이태리 나폴리의 과학자이며 작가 레오나르도의 고향사람이기도한
지오바니 바티스타 텔라포르타(Giovanni Battista Della Porta)는
선명한 렌즈가 장착된 카메라 옵스큐라(컴컴한 방)을 만들어
사람들을 그 속에서 보게하고 밖에서 배우가 연기하도록 하여 영화같은 영상을 공개행사로 시도하였으나
배우들이 거꾸로 서서 움직이므로 도깨비가 춤추는 모양이되어 실패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지구의 표면은 이런 곳도 있다. 거대한 산으로 둘러쳐진...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거쳐 카메라 옵스큐라와 카메라 루시다는
화가들이 투시도 조감도, 초상화등을 그리며 원근감을 나타내는 도구로 많이 사용하였고
그러는 기간동안 카메라 옵스큐라는 화가들이 그림 그리는 방에서 크게 벗어났고
마차에 싣고 다니며 그 속에서 작업하다가 더욱 작게 만들어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1807년에 닥터 윌리암 웰라스톤(Dr.Willian Wellaston)은 카메라루시다의 특허를 획득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안데스의 산맥이 마치 다른 별을 보는 것 같다. 이소연씨가 보는 지구도 가끔은 이런 모습일 테지...참으로 황홀한...ㅠ
독일의 수도승인 요한 찬(Johann Zahn)은
23Cm X 60Cm 크기의 상자에 전후로 움직일 수 있는 렌즈 튜브를 달아서
초점 조절이 되고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조리개' 기능이 있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거울에 반사되는 영상이 상자 바깥 위쪽에 있는 화면에서 보이도록 했다고 하므로,
그 면에 필름만 놓았다면 오늘날의 1안리플랙스 카메라의 원조쯤 되지 않았을까? 하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감광제(Light-Sensitive Material/Photographic Chemicals)가 발견되기까지 한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잉카인들은 저 산맥속에서 터를 잡고 살았다. 건기의 우르밤바계곡이 보인다.
마침내, 1826년 불란서의 석판인쇄 기술자 조셉-리쎄프로 니엡스(Joseph-Nicephore Niepce)는
감광물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백납(Pewter)판에 아스팔트 화합물을 발라서
그것을 화가들이 쓰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넣고 창턱에 8시간이나 놓아 두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백납 판에는 창밖 농장의 영상이 맺혀있었습니다.
<니엡스(1765-1833년)와 최초의 사진(Helio graphy) 1826년 자료>
비록 흐리고 어두컴컴한 화상이었으나
니엡스는 이 사진을 헬리오 그래피(Helio graphy:태양에 의한 그림)라고 명명하였고
그것을 오늘날 니엡스의 '최초의 사진'이라고 부릅니다.<더 자세한 내용은 카메라박물관자료 참조바람>
잉카의 수도 페루 외곽의 '꾸스꼬공항'에 착륙직전에 본 그림...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과 같은 사진과 사진기술이 정립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하늘 높은 곳 비행기속에서 땅을 내려다 보며 그림과 같은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고
이런 기술이 진보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씨가 우주에서 바라보는 장면까지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항청사를 막 나서면 '태양의 신'이 여행객을 반긴다.
잉카의 나라 페루의 수도 꾸스꼬에 있는 저 카메라맨들은
아직도 잉카를 무너뜨린 피사로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벌써 500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는데 말입니다.
페루의 꾸스꼬공항 모습이다. 카메라가 기억하고 있는 그림이 새삼스럽게 신기하다.
피사로가 잉카를 정복할 당시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오늘날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것 처럼 생생한 '침략상황'을 증거로 삼을 수 있는데
증거만으로 침략을 어떻게 할 수도 없는게 또한 오늘날 현실이니 역사는 참으로 묘합니다.
덕분에 오래된 카메라를 보면서 역사속에 묻힌 카메라와 사진의 원조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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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그곳-Boramirang
제작지원:그린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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