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새벽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다. 말복이 지나고 입추에 들어서면서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곧 가을이 우리곁에 다가올 것이며 겨울이 머지않았다. 자연계의 순환은 이렇듯 연속성을 간직한 채 우리들로 하여금 각각의 계절에 대비하도록 만든다. 봄에는 봄에 걸맞는 옷을 입어야 하며, 여름에는 여름에 걸맞는 음식을 먹고, 가을에는 가을에 걸맞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며, 겨울에는 다시 봄을 맞이할 차비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1년의 세월은 늘 그러했다. 그 세월이 67번 동안 바뀌고 또 바뀌는 동안 강산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므로, 광복 이후 최소한 예닐곱 번 정도로 강산은 변한 것 같다.
그런데 강산은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친일.숭미세력들이다. 이렇게 끄적여 놓고 보니까 친일.숭미세력들이 누구인지 막연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계의 순환을 돌아보듯 광복 이후 67년 동안 친일.숭미세력들이 활개친 결실을 참조해 보면, 이들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은 최근 <친일.숭미에 살어리랐다>를 펴낸 정운현(진실의 길 편집인) 선생으로 부터 적나라 하게 표현돼 있었다. 잠시 그들의 면면을 살펴볼까.
"...이명박 정권 출범 후 뉴라이트 주도의 역사왜곡이 극을 달리더니 ‘박근혜 권력’ 주변에도 그런 자들이 또다시 득실대고 있습니다. ‘5.16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고 우기는 자들이니 유유상종은 당연지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8월 남산에 동상이 건립된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가 무덤 속에서 서서히 부활하고 있습니다. 만약 박근혜가 집권할 경우 광화문 네거리에 박정희 동상이 세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친일파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무겁고 착잡한 심경으로 서문을 대신해 몇 자 적습니다." <출처 http://blog.ohmynews.com/jeongwh59/295559>
정 선생은 <친일.숭미에 살어리랐다> 서문 말미에 이렇게 써 놓았다. 짧은 문장 속에 등장한 몇 사람의 인물들이 지난 67년 동안 대한민국(남한)에서 활개친 친일.숭미세력들의 우두머리격이라고나 할까. 이들 사람과 단체를 구체화 해 보면 이승만.박정희.이명박.박근혜.뉴라이트 등이 친일.숭미세력들을 대표해 나라와 민족을 힘들게 한 사람과 단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친일.숭미를 통해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이들은 주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해 온 사람들로써 차마 '민족' 내지 '동족'이라고 부를 수 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조국 광복 이후 최소한 67년 동안 이 땅에서 역사왜곡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희석 시키거나 감추며 오늘에 이르렀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아예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 놓고 활개치는 대담함을 보였다. 그들 스스로 "뼈 속 까지 친일.친미"라고 말하며 거리를 활보하게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정 선생의 우려 처럼 박근혜는 5.16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 정도로 둔갑 시키는 뻔뻔스러움을 보일 정도이므로 광복 67회를 맞이한 오늘날의 친일.숭미세력들의 모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될 정도이다. 이를 테면 범죄자들이 오히려 활개치는 세상이 된 것이라고나 할까.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거리지 않고 그들의 범행을 세탁해 보고자 안간힘을 다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정 선생이 <친일.숭미에 살어리랐다>를 집필하게 된 이유이자 친일파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비슷한 이유 등으로 글쓴이는 블로그(내가 꿈꾸는 그곳)를 통해 이들이 저지른 만행 얼마간을 고발해 오고 있다. 글쓴이 블로그를 방문하여 성원을 아끼지 않으신 분들은 다 아시는 일이지만, 고발 보다 '관심'을 촉구하고 있었던 <천안함 사건>을 통해 친일.숭미세력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천안함 사건의 본질은 천안함이 (어떤)작전 중에 불가피 하게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침수된 한편, (잠수함 등)수중의 괴물체에 추돌되어 침몰한 매우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똑같은 물이라 할지라도 양이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핥으면 독이 되듯이, 천안함 사건은 친일.숭미세력들에 의해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천안함 사건을 동족인 북한(잠수함이 발사한 1번 어뢰)에 의해 '폭침된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사람들은 새빨간 거짓말을 통해 치를 떨며 분해하며 억울해 했다. 글쓴이도 그 중 1인이었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이 대략 3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발효(?)기간을 거치고 있는 동안, 너무도 억울했던 누명이 오히려 보약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들 친일.숭미세력들이 포장한 거짓말이 '천안함의 진실'로 만천하에 드러날 경우, 해방 직후에 하지못한 친일.숭미의 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천안함 사건의 배경에는 스스로 뼛 속 까지 친일.숭미주의자라고 말한 이명박 일가 외 이들을 도운 우리 군의 지휘관 다수가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지은 중죄의 대가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아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숨기고 싶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거짓말을 통해 나라와 민족을 절단내고 있었다. 이들 어둠의 세력들을 떠 올릴 때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정치검찰 또는 4대강 사업이나 저축은행 사태 등을 통한 친인척.측근 비리는, 천안함 사건과 더불어 이들의 잔재를 청산하고 묶어둘 족쇄로 작용될 게 틀림없어 보인다. 광복 이후 67년의 세월을 통해 이들 모습이 이렇듯 백일하에 드러난 건 드문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작은 문제 하나를 숙명 처럼 껴안고 살고 있다. 그게 뭔가. 6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기억 저편에 있었던 역사의 한 줄기다. 조국 광복 당시 우리 민족은 광복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다. 언론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낮익은 '지식채널e'의 <그날의 기록> 등에 따르면, 조국 광복이 되던 날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1945년 8월 15일'이라고 기록해 두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일본의 패망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민족지가 패간 당한 상태에서 유일한 한글신문인 '매일신보'와 자매지 '경성일보'와 조선총독부 기관지는 '그날의 1면'에 이렇게 실었다.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국,영국,중국,소비에트 4국에 대해 그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
▲ 포스트에 사용된 자료 출처는 'Frikr' 이웃 등의 이미지
어느곳을 따져봐도 일본의 패망사실을 알 수 없는 히로히토 일왕의 한마디다. 67년 전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 (1945.7.26)'을 통해 우리 민족의 광복은 찾아왔지만, 히로히토는 무조건 항복이 아니라 오로지 전쟁만 끝난 것으로 (패망)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같은 날 <아사히 신문>에서도 '전쟁 종결에 대해 왕이 내리는 명령 4국의 선언 수락'이라는 말만 실었다. 같은 날 <뉴욕타임즈>가 전한 '일본 항복,전쟁끝'이라는 타이틀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뉴욕타임즈는 "1943년 12월 카이로 선언에서...위험과 욕심으로 부터 지배당했던 영토들도 해방될 것이다. 한국의 독립 또한 약속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날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여전히 "경거를 엄계하며 냉정 침착하라"고 쓰고 있었다. 또 조선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는 일본 패망 사실을 부정하며 천황제 존속을 지지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그 속에 히로히토의 망언이 실려있었다. 한국 등에 대해 (일본이)식민지배를 한 사실 등에 대해 "제국의 자존과 안정을 바란데서 나왔지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등은 물론 짐의 뜻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잠시 뒤돌아 본 67년 전 광복의 날 모습은 주로 이러했다. 67년 전 우리는 이런 사실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매체가 거의 전무했던 것이다. 오늘날 친일.숭미세력들이 찌라시 뒤에 몸을 숨긴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우리가 조국 광복 사실을 안 것도 일본 패망선언이 이루어진 이틀 뒤(8월 16일)였다. 우리를 까막눈으로 만든 건 언론이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인터넷 등 첨단 미디어들이 존재하지만 병탄의 역사를 숨기거나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친일.숭미세력들은 사과와 반성은 커녕 찌라시 등을 통해'과거를 잊어라'로 말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미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죄를 지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끔찍한 일 아닌가. 강산은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무리들.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용서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광복 이후 67년이라는 세월이 증명해 준 역사적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