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강금원 회장 '문상'한 매우 평범한 이유
당신의 절친은 누구인가.
오늘(3일) 오전 11시 경, 글쓴이는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아산병원의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강금원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문상 때문이었다. 강 회장의 빈소를 찾아 문상을 하긴 했지만 괜히 어색한 느낌이 들지않은 것도 아니었다. 글쓴이와 강 회장의 엮어볼 만한 인연의 고리가 거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관계 정도였다. 다만 강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에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였으므로'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 1인의 의무(?) 같은 문상이었다.
적지않은 분들이 글쓴이와 같은 심정을 가졌던 지 빈소는 생각보다 매우 한산했다. 빈소에는 조화만 가득했을 뿐 강 회장이 돌아가신 지 이틀 째를 맞이했는 데 장례식장은 웬지 모를 정적이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잠시 빈소 앞에서 서성거리며 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고 괜히 왔다갔다 하며 빈소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오전 11시 경 故강금원 회장의 빈소 앞 모습이다. 빈소에는 조화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지만 문상객들은 거의 눈에 띄지않았다.
빈소 앞에는 수 많은 조화들이 줄지어 서 있었지만 우리에게 낮익은 이름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애도의 글이 넘치건만 정작 장례식장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한산한 모습 이하의 정적이 감도는 너무도 조용한 모습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강 회장 내지 일가 분들과 일면식도 없는 글쓴이가 어색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마음먹고 문상을 간 이상 그냥 발걸음을 돌릴 이유가 없어, 고인의 영정이 모셔진 빈소를 찾아 작은 향불 하나를 피워 올렸다.
참 이상한 느낌이 든 건 그때였다. 일면식도 없었던 고인의 영정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고인의 얼굴이 크게 다가오며 미소를 짓고있었던 것이다. 희한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상주들 앞에 머리를 조아린 후 뒤돌아 나서면서 어색한 자세로 빈소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딱 1장의 사진이었다. 하지만 빈소를 돌아서면서 故강금원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절친한 관계를 다시한번 정리해 준 명언이, 썰렁해 보이는 빈소 풍경을 꽉 채워주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이 두 사람의 관계를 명확히 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플라톤과 함께 그리스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친구는 제 2의 자신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몸에 하나의 영혼이 깃든 게 친구란 뜻이다. 강 회장의 빈소를 찾아 문상을 하는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문상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글쓴이가 강 회장의 빈소를 찾아 문상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故강금원 회장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글 한편를 살펴보며 글을 맺을까 한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故강금원 회장을 회고하시며 직접 작성하신 글이다.
강금원이라는 사람
강회장이 구속되기 전의 일이다. 내가 물어보았다. "강 회장은 리스트 없어요?" "내가 돈 준 사람은 다 백수들입니다. 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돈을 왜 주었어요?" "사고치지 말라고 준 거지요. 그 사람들 대통령 주변에서 일하다가 놀고 있는데 먹고 살 것 없으면 사고치기 쉽잖아요. 사고치지 말고 뭐라도 해보라고 도와 준 거지요." 할 말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나의 수족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나와서 백수가 되었는데, 나는 아무 대책도 세워 줄 수가 없었다. 옆에서 보기가 딱했든 모양이다. 강회장이 나서서 그 사람들을 도왔다.
그 동안 고맙다는 인사도 변변히 한 일도 없는데 다시 조사를 받고 있으니 참으로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데 강회장이 계속한다. "지난 5년 동안 저는 사업을 한 치도 늘리지 않았어요. 이것저것 해보자는 사람이야 오죽 많았겠어요? 그래도 그렇게 하면 내가 대통령님 주변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일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강 회장이 입버릇처럼 해오던 이야기다. "회사일은 괜찮겠어요?" "아무 일도 없어요. 지난번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서 직원들에게 모든 일을 법대로 하라고 지시했어요. 수시로 지시했어요. 그리고 모든 일을 변호사와 회계사의 자문을 받아서 처리했어요. 그리고 세무조사도 다 받았어요." 그래서 안심했는데 다시 덜컥 구속이 되어버렸다.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게 사업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어떻든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강 회장이 나를 찾아 온 것은 내가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였다. 모르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후원금은 얼마까지 낼 수 있지요?" 전화로 물었다. "1년에 5천만원까지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온 사람이 강 회장이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한테 눈꼽만큼도 신세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첫마디를 이렇게 사람 기죽이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눈치 안보고 생각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장수천 사업에 발이 빠져서 돈을 둘러대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다. 자연 강 회장에게 자주 손을 벌렸다. 당시 안희정씨가 그 심부름을 하면서 타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정치인이 정치나 하지 왜 사업을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구박의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직접 타박하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는 2000년 부산 선거에서 떨어졌고, 2002년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에는 장수천 빚 때문에 파산 직전에 가 있었다. 강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다. 강 회장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다. 아예 그럴만한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퇴임이 다가오자 강 회장은 퇴임 후 사업을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강회장의 생각에는 노무현이 중심에 있었고, 나의 생각에는 생태 마을이 중심에 있었다. 결국 생태마을 쪽을 먼저 하고 재단은 퇴임 후에 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그렇게 해서 주식회사 봉화가 생겼다.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가 생각한 것은 공익적인 사업이었다. 70억이라고 하니 참 크게 보인다. 그런데 강 회장의 구상은 그보다 더 크다. "미국의 클린턴 재단은 몇 억 달러나 모았잖아요. 우리는 그 10분의 1이라도 해야지요." 이것이 강 회장의 배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모으기가 어렵다. 꼭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강 회장 혼자서 부담을 해야 할 형편이다.
강 회장은 퇴임 후에 바로 재단을 설립하자고 주장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좀 천천히 하자고 했다. 강 회장 한사람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미안하고 모양도 좋지 않으니 출연할 사람들을 좀 더 모아서 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퇴임 후 바로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각종 조사와 수사가 시작되고,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도 시작되니 아무 일도 시작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모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재단은 표류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사업하는 사람들은 오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사업을 안 하는 사람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디 취직이라도 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봉하에 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봉하에 강 회장은 매주 하루씩 다녀갔다. 그런 강회장이 구속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제발 제 때에 늦지 않게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2009년 4월 17일, 면목 없는 사람 노무현-
故강금원 회장의 빈소를 돌아나서면서 생전 처음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부러워 했다. 내게도 그런 절친이 있었지만(우연찮게도 그 친구의 집은 창신섬유 옆이었다) 꽤 오래전 그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으므로, 웬지 모를 허전함이 늘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져 있었던 것인 지. 두 사람의 우정을 다시금 확인해 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 처럼 정말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진정한 친구가 없다는 말과 다름없다는 게 그냥 느껴졌다.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 故강금원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두 사람은 그런 관계였으므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던 날 강 회장은 그토록 흐느꼈나 보다.
이제 당신이 떠나시는 차례를 맞이했는 데 텅비어있는 빈소를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노 전대통령 서거 당시와 비교해 보면 너무도 달라진 인심이었다. 인간 노무현을 사랑했다면 인간 강금원을 동시에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고인은 우리에게 화두 하나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당신의 절친은 누구인가...고인의 발인은 내일(4일) 오전 7시이며 장지는 충주 시그너스 컨트리클럽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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