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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녹이 쓸어야 빛나는 최고의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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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이 쓸어야 빛나는 최고의 인테리어


안데스에 나직하게 기댄 빠블로 네루다의 생가 곁을 지날때면,
산티아고의 머리위로 쏟아지는 달빛과 별빛이 늘 그립게 된다.
한 낮 머리 위로 작렬하던 뙤약볕을 피해
시원한 바람이 달빛과 별빛을 실어나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남미 땅 칠레를 열병 속으로 몰아넣었던 '빠블로 네루다'의 생가 곁에는 작은 우물이 하나 놓여져 그의 곁에서 쉼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갈증을 채우는 듯 했다. 그 우물 곁에는 늘 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쉽게 목격됐다. 네루다가 그들 곁을 떠난지 40년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네루다가 이 땅에 남겨둔 향기에 목말랐던지, 그의 생가 곁에 즐비한 고택들은 네루다가 못다 이룬 민중들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듯 하다. 네루다가 떠난 이후 여전히 그의 생애가 재조명 되는 것도, 그가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안  향기가 오랜동안 그의 생가 곁에서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상하게도 그의 자취가 남아있는 생가 곁을 지나칠 때면 누구인가 그를 적당히 말려주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경주용 자동차 처럼 질주하며 그를 가두어둔 세상으로 부터 탈출하고자 애를 썼다. 네루다의 청색시대는 그렇게 시작됐고 피노체트의 군화발에 짓눌린 민중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인이자 정치인이었던 네루다의 파란만장한 생애 속에서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을까.

위 그림 2장은 저녁나절의 빠블로 네루다 생가 모습

네루다의 어머니가 네루다를 낳았을 때 그녀의 나이는 38살이었고, 노산을 한 네루다의 어머니는 그를 낳은 후 두달 후에 죽고 말았다. 학생들에게 시와 작문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던 것이므로, 어린 네루다가 성장하는 동안 그는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내지 여성들에 대한 그리움이, 뽀오얀 달빛 가루 만큼이나 그의 전부를 은빛으로 물들이며 안데스 태양에 데워진 그의 가슴을 식혀주었을 것 같다. 그의 생가 곁에는 그 달빛의 요정들이 만들어낸 편안한 고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그 고택들을 수 놓고 있는 소품들은 네루다가 그리워 했을 어머니나 격정적으로 사랑했던 여인들의 손길 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들이었다.
   

빠블로 네루다 생가 주변에 위치한 고택의 모습에 정열이 녹아 들었다.
 

이틀전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잠시 끄적여대던 블로깅을 접고 네루다가 너무도 사랑한 발파라이소를 다녀오게 됐다. 그곳은 사람들이 '천국의 계곡'으로 부르는 곳이었는데, 네루다가 사랑한 그 바닷가 도시는 한 때 이 땅에서 생산되던 물품 대부분을 유럽으로 나르던 곳이었다. 그곳은 파나마 운하가 뚫리기 전 까지 이곳 부두 노동자들의 삶을 이어주던 좁고 긴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길과 함께, 엘레베이트와 닮은 아센소르(Acensor)가 년 중 천국의 계곡으로 부두 노동자들을 실어나르던 곳이었다. 

  
지난 봄에 이어 다시금 발파라이소를 다녀오는 동안 나의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게 있었다면, 이 땅에서 살아간 민중들의 삶이었다. 네루다는 그들 민중들과 함께 새로운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 발파라이소를 뜻하는 '천국의 계곡' 또는 '천국과 같은 계곡'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이 아이러니 하게도 칠레 현대사의 상징적인 두 인물인 아옌데와 피노체트의 고향이기도 했다. 
 


 1970년 9월 4일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다시금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에 의해 아옌데가 피살되고 네루다가 전립선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까지, 그들은 발파라이소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천국의 계곡 또는 계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 우리가 봄에 방문한 발파라이소는 그야말로 천국의 계곡이었다. 발파라이소를 이루고 있는 계곡 전부가 풀꽃으로 뒤범벅이된 채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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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이 쓸어야 빛나는 최고의 인테리어-  
 

그러나 이틀전 방문한 발파라이소는 네루다를 떠나 보낸 지난 40년의 세월 처럼, 우리가 만났던 봄을 저만치 보낸 후였다. 발파라이소 계곡과 계단 곳곳에는 누렇게 드러난 언덕의 황토와 양철 지붕의 붉은 녹과 건물의 낡은 벽에 칠해진 퇴색된 페인트칠 뿐이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 안데스를 넘어온 뜨겁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 그 태양은 네루다를 포함한 남반구 사람들을 지겹게 만든 우기의 폭포수 같은 비 보다 더 나았을 것이며, 뼈 속 까지 사무치게 만드는 추위를 잊게 만드는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네루다를 포함하여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싫어하는 우기의 눅눅함이 만들어내는 음산함과 함께, 양철지붕을 붉게 산화 시키는 녹이 없었다면, 오늘날 천국의 계곡이나 천국의 계단과 같은 하늘나라의 이름(?)이 존재하기나 했을까.


네루다 사후 40년만에 한 이방인이 그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의 찬란한 업적이 빛나고 있음을 아는 것 처럼, 산티아고 산끄리스토발 산기슭 아래에 위치한 네루다 생가 곁에는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만든 인테리어 소품이 녹이 쓴 채 이방인을 반기고 있는 것이다. 천국의 계곡 속에 살던 부두의 노동자들이 힘겨운 일과를 마치고 가족이 기다리는 언덕 위로 걸어가는 모습을 쏙 빼 닮은 소품이라고나 할까. 


노동의 참 맛을 아는자 만이 천국을 소유하는 것인지, 내 발 앞에 펼쳐진 인테리어 소품 하나 만으로도 네루다가 생애를 바쳐 사랑한 땅이 성 야고보의 이름을 빌린 '산티아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머니를 모른채 자란 네루다 곁에는 이렇듯 세심한 손길로 배려된 예술품이 부지기수로 널려있고, 그 작품들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의 발길을 붙들고 심한 문화적 열등감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새 것을 좋아하고 돈을 좋아하며 명예를 사랑하고 날이면 날마다 충족 시켜야 하는 욕심 때문에 녹슬어 가는데, 정작 녹이 슬어야 빛이나는 인테리어 소품 앞에서 네루다의 생애가 새삼 스럽게 빛이 나는 걸 느끼고 있는 것이다. 파타고니아 투어 중에 꽤 긴 시간을 할애하여 체류중인 산티아고의 매력은 주로 이런 모습들인데, 이들의 문화 속에 자리잡은 예술적 감각은 안데스를 넘어온 태양이 작열하는 동안 네루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흥분제 처럼 작용하여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그 작품 앞에 꽤 오랜동안 서성이며
곧 내 어께 위로 내려앉게 될
달빛과 별빛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달빛과 별빛의 요정들이 녹쓴 인테리어 소품 위로 다시금 내려앉을 때면, 
은은한 빛을 발하며 또 얼마나 고상한 모습으로 변하는지.
네루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게 '녹이 쓸어야 빛을 발하는 삶' 아니던가.


그 문화적 갈증 때문에 오늘도 산티아고의 네루다 생가 곁에 남아있는 고택 곁을 서성이게 된다.    


이 땅을 들끓게 만든 네루다의 문학 작품을 대하지 않아도,
그저 그가 살았던 동네 근처만 배회에도
삶이란, 오래 숙성되고 더 낡을 곳이 없어야  빛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녹이 쓸어 가치를 더하고 있는 인테리어 소품 뒤로
빠블로 네루다 생가가 희미하게 비친다.

여행자의 몸둥아리에는 어떤 녹이 쓸고 있을까.


* 산티아고 현지에서 라이브(VIVO)로 쏘아 올리는 <내가 꿈꾸는 그곳의 포토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면 제3의 땅 남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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