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풀밭 너머 누치가 산다
아직 짝짓기를 하지못한 누치들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6월초 양재천에서 누치들이 서너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는 모습이 멀리서 봐도 눈에 띈다. 곧 장마철이 다가올 텐데 수심이 발목까지 줄어든 양재천에서 누치들의 구애가 애처롭기만 하다. 나는 그 장면을 어른 키 만큼 훌쩍자란 갈대밭 속 풀밭 너머에서 훔쳐보고 있었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오후 뙤약볕을 식히며 양재천변을 가늘게 흔들고 있었다. 어느새 여름이었다.
내가 풀밭 너머에서 그들의 구애 장면을 훔쳐보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누치들일까.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양재천에서 누치들이나 잉어 등 물고기를 볼 수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얕은 천에서 몸을 다 드러내고 있는 팔뚝만한 누치들을 잘 관찰하기 위해서는 작은 수고를 해야 한다. 천 변 갈대밭 사이로 나 있는 작은 도랑 풀숲을 해치고 몸을 숨겨야 녀석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누치들은 얼마나 예민한지 평소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풀밭의 움직임 조차 훤히 꽤뚫고 있다.
그래서 살그머니 발길을 옮기며 수풀을 살그머니 벌려 그들의 구애장면을 지켜봐야 한다.
그 풀밭 너머에는 누치들이 산다.
누치들이 산란을 할 때 수컷이 주둥이로 자갈밭을 파헤쳐 암컷을 유인하고 마땅한 자리가 있으면 그곳에 신방을 차려 산란을 한다. 이때 좋은 자리는 암수가 떼로 몰려들어 치열한 짝짓기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6월의 양재천에는 그런 치열함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은밀한 구애가 수풀 너머에서 조용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장면 모두를 풀밭 너머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노라니 한숨이 난다.
괜히 카메라 셔터 때문에 호흡을 참느라 그랬던 것일까.
6월의 양재천은 누치들 뿐만 아니라 풀밭이 온통 녹색 투성이다.
카메라가 인식하는 건 녹색이 전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갈대 사이로 수풀이 무성하다.
그 풀밭 너머 몸을 겨우 숨길만한 자작한 천에서 누치들이 은밀한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치들의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양재천을 찾아간 시각은 지난해 보다 조금 일렀다.
지난해 양재천을 찾아간 때는 대략 6월 중순 이후(20일 경)였는데 풀밭 너머에서 누치들의 산란장면을 훔쳐본 날은 6월 3일이다.
곧 장마철이 시작되어 물이 불어나고 수온이 떨어지면 아직 짝짓기 하지 못한 누치들은 혼기를 놓치게 될 것이다.
그때쯤 녀석들은 그저 싱글을 고집하며 야속한 세월만 탓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누치들의 구애장면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무릇 생명들의 구애란 눈치가 빤한 때가 아니라,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눈에 콩깍지가 씌운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인간들 처럼 학벌이나 사회적 지위나 금전 등을 따지다 보면, 어느새 세월을 다 보낸 늦둥이 처녀 총각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치들의 구애장면을 풀밭 너머에서 지켜보며 잠시 상념에 젖어있는 동안 역광에 비친 풀숲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치들이 수면 아래에서 천변 풀숲을 올려다 보면 같은 느낌이 들까.
사랑하기 참 좋은 계절 누치들은 양재천 풀숲에 숨어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마치 신방에 드리워진 은은한 빛깔의 커튼 같은 게 천변에 드리운 풀밭이었다.
그 풀밭 너머 누치가 산다.
그곳에서 은밀한 사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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