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초 택시에 얽힌 사연... '시발택시' 왜 이렇게 늦지?
-욕설같은 국내최초 택시이름-
요즘에야 너도 나도 자동차를 다 가지고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오늘날 처럼 자동차가 흔치않았을 때만 해도 바쁜일일 생기면 택시를 타고가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이럴때면 누구든지 마음이 앞서있을 텐데 조바심이 나면 '택시'앞에 접두어를 꼭 한번씩 붙이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때 '시발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중얼거리는 '시발'은 욕처럼 들리지 않았을 것인데
실제로 국내최초 택시인 '시발택시'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고
어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시발'을 남발하기도 했습니다.^^
시발은 욕설이 아니라 '始發시발'이라는 한자음을 우리말로 그대로 옮겼을 뿐 입니다.
자동차 생산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한글로는'시발'로 표기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자동차가 국내최초 택시인 '시발택시'입니다. 드럼통을 펴서 만든 외관이죠.
꽤 오래된 이야기군요.
제가 국민학교(초딩) 다닐때만 해도 이 택시는 흔치않은 교통수단이어서 아무나 탈 수 없는 교통수단이었고
아무때나 탈 수 없는 교통수단이었습니다. 특히 시내를 벗어난 변두리에서는 이런 택시를 좀체로 구경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현존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택시의 실물을 구경하신 분들도 그래서 많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서울이나 부산같은 대도시에서 자라지 않은 분들은 존재조차도 모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케도 제가 어렸을 때 이 시발택시를 서너번 타 보았던 기억이 있고
전차가 가끔씩 오가는 부산의 서면에서 온천장까지 가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승차감이란 기억에도 없으나 시발택시를 타 보았다는 것 만으로 기분이 너무 좋았던...!
서면로터리에서 전포동쪽으로 가면 황령산 기슭에는 작은아버지께서 사셨기 때문에
당시 삼촌댁을 들리면 늘 거치던 곳이 또한 '신진자동차공장'이었습니다.
그 공장에서는 하루종일 뚱땅 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알고보니 드럼통을 두들겨 펴는 소리였습니다.
신진자동차는 당시 '노랑차'라는 합승차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서울역전에 늘어선 시발택시 행렬...
시발택시에 관한 기록들을 살펴보니 재미있는 기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1955년 8월, 서울에서 정비업을 하던 최무성,혜성,순성씨 3형제가 미군으로 불하받은 지프의 엔진과 변속기 차축등을 이용하여 드럼통을 펴서 만든 첫 지프형 승용차. 우리손으로 만든 첫 자동차인 시발은 2도어 4기통 1.323cc 엔진에 전진3단, 후진1단 트랜스미션을 얹었으며, 국산화율이 50%나 되어 긍지가 대단했으나, 한 대 만드는데 4개월이나 걸려, 시발차의 값이 8만환으로 사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1955년 10월 광복 10주년을 기념하여 경복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때 최무성씨가 시발차를 출품하여 최우수 상품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신문에 크게 보도되자 을지로 입구에 있던 그의 천막 공장에는 시발차를 사가려는 고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며, 이로인해 가격도 하루 아침에 30만환으로 뛰어 올랐다. 대통령상을 받은후 한달도 못되어 1억환 이상의 계약금이 들어와 이 돈으로 공장도 사고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서 양산 체제로 돌입 했다.특히 영업용 택시로 인기가 높아서 생산능력이 수요를 늘 못 따라갔다. 얼마후 시발 투기붐까지 일어나 상류층 부자들 사이에선 시발계까지 성행하여 프리미엄까지 얹어서 전매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새로운 차 개발에 많은돈을 썼고 5.16혁명으로 정부 보조금이 끝난데다가 1962년 산뜻한 새나라자동차가 쏟아져 나오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 차는1963년 5월까지 3천여대를 만들어 시판했다. |
기록에서 말하는 것 처럼 시발택시는 동남아여행에서 볼 수 있는 버스나 택시등 촌스러운 모습의 자동차들 처럼
드럼통을 두드리고 또 펴서 자동차 외관을 완성했고 엔진등 부품은 지프자동차의 내용물을 재조립하여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만든 자동차가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라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오늘날 돌이켜봐도 6.25동란후 40~50년만인데 우리나라의 산업이 참으로 빠르게 성장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합니다.
주지하시다시피 오늘날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은 세계수준에 와 있는데
그 시초를 장식한 시발택시는 참으로 볼 품 없군요.
그럼에도 당시 시발택시 때문에 잘 산다고 하는 복부인들이 '시발계'라는 '계모임'을 만들었을 정도라니
시발택시를 타고 시발계를 모으러 간 시발계 사람들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츠암!^^
우리나라를 자동차산업의 선진국으로 올려둔 최초의 자동차는 그후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며
1975년 '포니'라는 그 유명한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始發!...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www.tsori.net
http://blog.daum.net/jjainari/?_top_blogtop=go2myblog
내가 꿈꾸는 그곳-Boramirang
제작지원:그린토피아
'2011 나와 우리덜 > 나와 우리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서울 '청계천' 국제마라톤을 바라보며 (5) | 2008.03.16 |
---|---|
한반도대운하 완공하면 이런 모습!! (25) | 2008.03.15 |
숭례문 소실 후 폐쇄된 '광평대군묘' 알고보니 잘된듯 싶기도 (58) | 2008.03.14 |
매매춘 부추기는 '스포츠신문' 차라리 도색신문 어떨까? (27) | 2008.03.13 |
도대체 '코드'가 뭐길래...? (1) | 2008.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