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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MERICA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겪은 지울 수 없는 세가지 기억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겪은 지울 수 없는 세가지 기억


 이른 새벽에 우수아이아의 차디찬 어둠을 뚫고 출발한 버스는 정오가 다 되어서야 리오그란데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리오그란데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이곳은 k사장과 G사장과 함께 둘러본 곳이기도 했다.
서둘러 부에노스아이레스(이하 '부에노스'라 한다.)행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서 터미널로 갔다.


우수아이아에서 부이노스로 직행하는 버스는 없었기 때문이었고 비행기가 없었다.
자주 결항하는 부에노스행 비행기는 또 다시 이틀반이나 우리를 고생시킬 참이었다.


멋모르고(?) 한번은 타 볼 만한 버스였지만 지구땅끝 도시까지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경험이었기 때문이었다.
'세미까마'는 얼마간 여행을 편하게 해주는 버스일 뿐 '까마'라 할지라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버스여행이었다.


'나쁜기억'을 예고(?)한 트레일러 전복사고가 눈앞에서 일어났다.


터미널 버스사무실에는 여직원 둘이 나와 있었고 한산했다. 그게 문제였다.
우리가 도착한 당일에는 부에노스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리오그란데에서 하루를 더 묵을 수 밖에 없었다.


혜은과 함께 리오그란데에서 묵는 동안 곁에 있는 해변으로 나가보았다.
이곳은 대서양을 끼고 있는 작은 항구도시였지만 항구라기 보다 포구에 가까웠다.
물이 많이도 빠진 해변을 걸으며 우리나라와 다른 바다의 모습을 보고 갯벌을 둔 우리나라의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실감했다.


이곳의 바다는 아무런 정감을 주지 못했고 굵은 모래가 드러난 해변에는 그 흔한 굴껍데기나 조개껍질하나 만날 수 없었다.
다만 이곳 바다에는 수많은 어종이 살고 있기는 했으나 그 어종들은 깊은 바다에 살 뿐이었고
얕은 바닷가 모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황량한 리오그란데 바닷가의 썰물때 풍경...우리나라 서해안 풍경은 얼마나 정감어린 곳인지!


삭막한 이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일이 끔찍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곳이었는데
그들은 가까운 공단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멀리서 온 노동자들로 인해서 숙소 대부분은 만원이었고 우리는 겨우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배PD가 그토록 보고싶어 했던 탱고쇼(이곳에서는 '땅고-Tango-'라 부른다.)가 눈에 아른 거렸다.
탱고의 나라, 탱고의 도시 아르헨티나하면 떠 오르는 '피아졸라'와 비운의 왕비 '에피타'를 떠 올리며 보낸 밤은 너무도 길었다.


Boramirang 함께 가는 南美旅行71
-피아졸라와 에피타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억-


우수아이아(작은 화살표)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까지...버스로 이틀하고 반나절이나...ㅜ


날이새면 이틀동안 대서양 곳곳 낮선 도시를 경유하면서 부에노스까지가야할 것인데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도 간사한 것인지 볼 것 다 보아서(?) 그런지 부에노스로 돌아가는 길은 크게 설레이는 마음이 없었다.



부에노스로 향하는 동안 경유하는 대성야에 면한 아르헨티나의 도시는 대게 이런 모습이다. 라우손市...


늘 그랬듯이 우리는 버스앞자리와 2층을 주로 이용했다.
그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차창밖의 경치는 버스여행을 즐겁게 해 주었고 무엇보다 시야를 넓게 해 주어서 편한 곳이었다.


리오그란데에서 출발한 버스는 다시 마젤란해협을 건너서 리오가제고스에 도착한 후 북상을 거듭한 후 라우손과 비에드마를 거치고
바이야블랑까를 거친다은 최종목적지인 부에노스에 우리를 내려 놓을것인데  
우리는 커다란 2층버스 맨앞에서 침낭을 덮은 채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에서 사라지는 작은 풀포기와
간혹 나타나는 양떼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목적한 '이과수폭포'를 그리고 있었다.


'끌란 호스텔'에서 구할 수 있는 공짜 엽서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취가 담긴것들이다.


아르헨티나의 대서양에 면한 도시들은 우리나라의 바닷가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서 밋밋한 풍경만 있을 뿐 별 볼일이 없었다.
마젤란해협을 건너면서 '어제다시 이곳에 와 보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타고니아의 추억은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루만에 돌아 온 '피츠로이'의 모습은 눈만 감으면 떠 오르는 모습이었고
그 아름다운 산지에 봄이오고 있는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9월에 시작하는 파타고니아의 봄은 눈 덮힌 대지에 생명의 씨앗을 흩뿌리며 또 어떤 장관을 이룰 것인지...
생각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옆 라쁠라타 해변을 지나며


버스가 우리를 부에노스에 내려 놓은건 이틀이 더 지난 정오쯤이었다.
부에노스는 거대하고 정교한 모습의 건물들을 선 보이며 탁트였던 시야에 익숙했던 우리를 맞이했다.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모습을 보니 괜히 들뜨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생활처럼 즐기는 '탱고'의 고장이 바로 부에노스아이레스였던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상징하고 있는 오래된 건물들이 유럽을 옮겨놓은 듯...


이 도시에서 피아졸라는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가 보았고 그는 그 세계를 탱고로 표현했었다.
젊음과 낭만이 넘치는 자유로 가득한 도시속을 한시라도 더 빨리 들여다 보고 싶어서 안달을 하며
버스터미널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 탓다. 그리고 우수아이아에서 건네 받은 한 호스텔로 가자고 주문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에서 지울 수 없는 첫번째 나쁜기억이 여기서 생기는 줄 꿈에도 몰랐다.
탱고쇼와 같이 현란한 발놀림과 몸놀림이 아니라 우리는 재빠른 한 손놀림에 현혹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태운 택시가 버스터미널을 빠져 나간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택시운전사는 꽉 막힌 도로에서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조금전 가지만 해도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며 부에노스는 처음이냐며 여행은 괜찮으냐며 친절하게 수다를 떨던 운전사였다.
이곳의 교통사정은 꽉막힌 서울의 한 모습을 재현 해 놓은듯 했다.


괜히 짜증을 부리는 것 같은 운전사는 우리를 의식하여 빨리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내지
수입에 차질을 주는 자국의 도로사정에 대해서 화풀이를 하는것 같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듯 했으나
그러한 잠시 택시는 도로 한가운데서 신호를 받는 듯 하다가 시동을 꺼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어변속을 몇번 하는가 싶더니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핸들을 치면서 짜증을 부렸다.
그러면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통화를 하면서 자동차가 고장이 났으니 손님을 대신 태워 달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조금전 까지 시동이 꺼진 택시는 다시 시동을 걸어서 도로가장자리에 차를 세우고 다른차를 갈아 타라고 했다.



그 운전사는 오늘 하루 망쳤다는 표정으로 혼자 투덜거리며 다른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몇분이 채 되기도 전에 한 택시가 도착했고 우리는 택시를 갈아탓다.


이 쏘시지가 군침을 돌게 했지만...


그리고 5분도 채 가지 않아서 한 골목길에 택시를 정차하며 우리는 티격태격 싸우고 있었다.
아니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운전사로 부터 배낭과 우리가 격리되고 택시는 사라졌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이랬다.
운전사는 우리가 택시를 바꿔 타자말자 택시요금 이야기를 꺼내며 부에노스에서 통용되고 있는 '달러'에 문제가 있으니
택시비로 지불할 달러를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페소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였다.
그는 내가 건넨 달러를 펴 보고 일련번호를 지적하며 다른 달러를 보여주길 원했다.



10불짜리 달러를 번갈아 가며 보여주었다
. 그동안 그는 사용하지 못하는 달러화와 페소화를 고무줄로 한 묶음 묶어 둔걸 보여 주었다.
택시를 탄 사람들이 지불한 사용하지 못하는 돈이라고 했다.


오래된 시의회건물이 낮선 이 도시의 역사를 대변하고 잇는 곳이다.


택시속에서 그렇게 달러를 주거니 받거니 몇번을 하다가 다른 달러가 없냐고 물으며 신경질을 부렸다.
택시비를 지불할 길이 없으니 신경질 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태껏 문제없이 사용되던 달러였는데...이게 무슨일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것도 잠시
그가 화를 내며 돈을 지불하지 못하는 내게 신경질을 부리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 손에 쥐어졌던 달러는 그의 손에 번갈아 가며 너댓번 오간 것일 뿐이었다.



혜은과 나는 어이없이 한 도로변에 팽개쳐진 다음 고개를 갸우뚱이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의 손과 내 손을 번갈아 가며 오갔던 작은 돈뭉치를 꺼내 보았다. 




밤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풍경...우리나라의 서울의 풍경과 별 다르지 않다.
다만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은 이곳은 우리나라가 도시를 설계할 때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낮에 본 부에노스아이레스 풍경...


아뿔사!!...거긴 1페소짜리 열댓장이 고무줄에 묵여 있었다.

그 도둑놈은(생각만해도 열나네!) 나의 달러지폐를 고무줄로 묶어서 주고받던 참이었는데 내 눈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두눈을 빤히 뜨고 있는데 어느새 내가 가지고 있던 100달러에 가까운 지폐가 페소화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 택시기가는 '야바위 꾼'이었는데 우리가 타깃이 된 것이었다.


이 땅의 주인들인 인디오들은 에스파니아인들에게 빼앗긴 그들 땅에서 울고 있었다.
한국교민들이 밀집해 있는 온세거리 곁에서...


택시가 고장난 것 부터 다른차로 갈아탄 것이나 달러에 문제가 있다며 보여달라는 것 등
그들은 낮선 탱고의 도시에 처음으로 방문하는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관광객을 털고 있는 도둑놈들이었다.


100달러짜리 지페를 더 보여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며 길을 옮겼다.(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이런 바보!...ㅠ)
평소 피아졸라를 떠 올리는 탱고는 도시는 그렇게 내 기억저편으로 '야바위꾼의 도시'로 평가절하되고 말았다.
( 여행객들은 이런 유형의 야바위꾼이 있다는 사실에 주의에 또 주의요망!!)


적도가 가까워질수록 봄은 더 빨리 찾아 왔다.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를 배회하면서...


부에노스에서 머무는 동안 그 나쁜 기억들은 떨칠수가 없었는데
이곳에서 10년동안 사업을 해 온 'ㅈ'사장을 만나면서 그 기억들은 더 증폭되고 있었다.

내 기억속의 탱고쇼는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의 젊은 여행객이 끌란호스텔에 태극기를 달아 둔 태극기와 낙서...자랑스러웠다.


혹시 이 글을 본 '재아르헨티나교민'들은 오해없길 바란다.
어느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너무도 안타까워 몇줄 남기고자 하는 것이며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글이다.


온세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교민의 집에 서 만난 한국음식들...여기서 너무 맛잇게 먹은 음식들...^^


그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민들은 화교나 유대인들과 달리 사업의 대상을 주로 우리나라 사람으로 한정하고
그들과의 거래를 통해서 수익을 얻는다고 하며 새로 이주한 이민자들의 프로필을 모두 꽤차고 있다가,


어떤 방법으로던 도와주겠다며 그 사람과 접촉을 시도하여 마침내 그가 지닌 재산을 탕진케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며
이러한 것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했지만 교민들간 심각한 불신을 만들고 있는 한 사례는 끔직했다.



이랬다.
이곳에서도 교민들간 '계'를 이용하여 몫돈을 만드는 일이 있는데
곗돈을 타는 날 계주가 교사한 것으로 보이는 사고가 잇따른다는 것이다.


곗돈을 타는 날 어떻게 알았는지 그 돈을 갈취하기 위한 강도가 총을 들고 들이닥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겟돈을 탈 날을 아는 사람은 계주밖에 모른다는 것인데...!



나는 아르헨티나에 대해서 극도의 실망감을 보이고 있었고 마치 이 도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같이 보이기도 했다.
내 기억속에 두번째 나쁜기억으로 자리잡은 교민들의 소식을 들으며
 '온세거리'에 자리잡은 지인의 상점에서 소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모처럼 마셔보는 소주이기도 했지만  이 가게에서 담구어 파는 김치가 너무 맛잇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농장을 하는 우리교민 한 분이 우리나라에서 가져 간 씨앗으로 이곳에 심은 농작물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땅에서 자란 배추나 고추보다 더 맛있었다.



이역만리 먼 땅에서 우리의 씨앗을 퍼뜨리며 터전을 일구고 있는 우리 교민들 때문에
부에노스에서 겪었던 나쁜 기억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농약을 치는 횟수가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농산물 취급은 매우 까다롭기로 소문난 곳이다.
우리가 많이도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었다.


그래도 세번째 기억이 파타고니아를 안고사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나쁜기억을 보듬고 있었다.


 이 터미널은 부에노스에 대한 나쁜 기억을 만들어준 장소다. 이곳에서 다시 이과수폭포로 가기위한 매표를...


끌란호스텔이 있는 부에노스의 누에바 대로변에서는 밤새 탱고가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나나 혜은은 그 탱고쇼가 전혀 마음에 끌리지않았다.
이미 마음은 이과수폭포에 가 있었다. 




부에노스를 떠나며 이과수폭포를 향하여 이동하는 버스창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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