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금지' 무시한? 담쟁이 잔혹사!
나를 이곳으로 오게한 사람은 김영감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성실하여 손자하고 놀아만 줘도 되는 넉넉한 집에 살았지만
소일거리도 마땅치 않아서 손자녀석 과자값이나 번다며 주차장 관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마당 한켠에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담쟁이였지요.
봄이면 너무도 고운 새롬을 내 놓고 여름이면 이쁜 잎으로 담을 둘러 싸며 김영감을 흡족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김영감 손자녀석들이 내 몸에 난 잎사귀 하나 뜯어 장난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김영감이 내게 데려갈 곳이 있다하여 마당에서 옮겨 이곳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정든 김영감네 담벼락을 돌아서며 많이도 울었지요.
가족들하고는 그렇게 이별을 하고 탄천변 고가도로밑 삭막한 기둥에 다시 씨앗을 뿌리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김영감은 이런 나를 너무도 기특하게 여기며 늘 올려다 보며 흡족한 미소를 띄었습니다.
주차장을 나서는 사람들도 내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던지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콘크리트 기둥에 뿌리를 박으며 등반하는 내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나 봅니다.
나는 우쭐대며 기둥전체를 감싸며 더 많은 잎사귀를 만들며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던 어느날 버스에서 내린 한 인간이 손에 무엇을 들고 오길래
나는 그가 근처에서 풀을 베는 일을 하는가 보다 하고 지켜 봤습니다.
가까이서 본 그의 손에는 낫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흉기가 낫입니다.
저 낫을 내 허리에 걸치고 잡아 당기면 그 순간부터 나는 호흡이 끊어지고 마는데
낫이나 칼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지나치겠지 하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허리에 차가운 느낌이 드는 순간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까무라치고 말았습니다.
지난 겨울내내 봄이 오기만 기다렸는데... 나는 결국 봄을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줄기를 뻗치는 동안 나의 허리는 많이도 굵어졌고...
저 기둥 꼭대기에서 내가 올려주는 수분을 먹고 자라는 잎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열매도 많이 맺었는데...흑 ㅠ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던 김영감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는데 무슨일이 있나 봅니다.
나는... 늘 김영감이 이곳에 나타나서... 나를 올려다 보며 미소를 띄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헉 ㅜ
지나가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김영감은... 건...강이 나...빠져서 주차장...관리도 하지... 못할 정도...라 합니다...헉헉 ㅜ
"...그런데... 당신을 무참하게 테러한 인간은 누구죠?..."
...그는... 처음보는 인간이었습니다. 너무도 매정하게 생긴...ㅜㅜ
담쟁이는 그렇게 남은 숨을 헐떡이며 몰아쉬다가 자신을 사랑해 준 김영감을 그리워 하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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