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서 '샘' 솟아나는 이성산성의 불가사의?
아마도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놀랄 일' 하나가 반드시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성산성二聖山城'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은 산아래서 보면 산이라기 보다 구릉에 가까울 만큼 산 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산성이라하여 산성의 흔적을 찾아 보려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이 '작은궁궐'이 아닌가 했지만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궁궐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성이 혹시라도 있을 적의 침략에 대비해서 쌓은 성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허술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의 쓰임새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래서 제가 유추한 것은 다름아닌 '학원-서당 또는 서원-'이 아니었나 하고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이데
서기 608년 당시의 학원이라고 하기엔 좀 생뚱맞은 느낌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자꾸 '학원'이라는 단어가 떠 오르는 것은 건물 모습이'서원' 같은 역할 때문이었고
이곳에서 솟아나는 알 수 없는 샘물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성산성이 위치해 있는 '이성산'은 경기 하남시 춘궁동에 있고 해발 210m에 불과한 나지막한 산입니다.
말이 산이지 곁에서 보면 작은 언덕이나 다름없이 보이는곳입니다.
누구라도 이 산꼭대기에 저수지가 있다고 하면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며
산꼭대기서 샘물이 난다고 하면 더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꼭대기에서는 쉼없이 샘물이 흘러 나오고 있었고 그 물을 막아 둔 저수지가 두개나 있을 뿐 아니라
그곳의 주춧돌 규모로 미루어 이곳에는 커다란 팔각정이 여럿있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건축물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산성이 적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축조하고 건축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이 산이 가진 이름 '二聖山'이라는 점과 이성산이 가지고 있는 '성스러운 샘'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샘물을 마신 사람이 성은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거나
성인으로 불리우던 사람이 이곳의 샘물을 상용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산을 '이성산'이라고 부르며 잘 보호하기 위해서
이 샘물 주변을 막아 일반인들이 쉽게 출입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귀한 샘물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워 저수지나 연못을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그 성스러운 이름이 오늘날 까지 전해져 오면서 二聖山이라 불렸던 것은 아닐런지요? ^^
암튼 맘껏 상상해 봅니다.
이곳은 1985년 발굴이후 잘 보존하고 있지만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홍보가 부족해서 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입니다.
어제 방문한 이곳 샘에서는 아직도 맑은 물이 나오고 있었고 음용해 본 결과 너무도 맛있는 샘물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랫쪽 이성산성샘물은 오염이 되어 마실 수가 없다고 적혀있습니다.
서기 608년 경...그러니까 신라시대 진평왕이 제위하던 시기에 축조된 이곳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발굴당시 출토된 '간지가 기록된 목간木簡' 에 쓰여진 기록에 따라서 쌓은 연대가 서기 608년 경 임이 밝혀졌고
축조 후 200∼300년가량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유물터 입니다.
근처에는 광주풍납리토성(廣州風納里土城:사적 11),
몽촌토성(夢村土城:사적 297) 등이 가까이 인접해 있는 곳이기도 하구요.
이성산성을 돌아 내려 오면서도 풀리지 않는 상상밖의 수수께끼는
어떻게... 저토록 낮은 산꼭대기에서 물이 쉼없이 흐르고 있는 것인가? 였습니다.
지금 겨울가뭄이 극심한대도 말이죠. 참으로 세상은 불가사의한 것들이 너무 많은 곳입니다.
두개의 영험함이 있는 샘 때문에 이성산이라 한것일까요?...
함께 둘러 보면서 '과거의 시간'속으로 가 보시길 바랍니다.
때는 서기 608년 경...한강 유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평화로운 한 동산입니다.
二聖山城 입구입니다.
二聖山城 저수지 혹은 연못이 있던 터가 나타납니다.
큰 길 곁에는 이곳을 지나치던 작은 섶다리 같은 게 보입니다. 발굴전에 설치해 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곳이 남문지와 장방형건물이 있던 곳입니다.
그림의 오른족 끄트머리 작고 얕은 계곡에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곳도 산꼭대기인데...
남문지에 축조된 돌입니다. 하나 하나 일일이 다듬어서 쌓은 흔적이 보입니다.
이곳이 남문지며 좌측에 있는 작은 건물이 이성산성샘물이 나오던 곳이지만 지금은 폐쇄된 곳입니다.
남문지에서 바라본 하남시 춘궁동쪽 모습입니다.
남문지의 모습입니다. 이곳에 저수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가사의 합니다.
남문지 속 모습입니다.
二聖山城 약수가 쉼없이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아래는 남문지의 모습이구요.
그림속의 화살표시가 위 그림들의 모습이 보이는 곳입니다.
이 성은 S字 모양의 포곡형包谷形 으로 축조된 곳입니다. 일반의 성의 모습과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요?
그림의 '#15장방형건물지'가 산정상이며 샘에서 그곳까지 불과 20여m밖에 되지 않습니다.
'#8의 저수지' 곁에 샘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물은 배수구를통하여 아래로 연결되어 있구요.
저곳에서 샘물이 나온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직접 방문해 보시면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이곳 남문지에서 산곡대기로 걸음을 옮겨보겠습니다.
위 안내그림에서 오른쪽으로 절반만 돌아 보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이곳이 두번째 저수지가 있는 곳입니다. 왼쪽으로는 장방형 부석건물터가 있는 곳이구요.
대통령취임을 하루앞둔 이곳의 연못이 꽁꽁 얼어 있습니다.
저수지를 돌아서 보니 이런 모습입니다.
작년 가을에 핀 부들이 서기 603년을 떠 올려보라고 재촉합니다. ^^
이곳이 불가사의한 샘 입니다. 끊임없이 샘물이 나오고 있는 곳에서 올려다 본 산등성이...보이시죠?
이 물은 다시 저수지로 흘러 갑니다.
바로 이 샘에서 아래 저수지로 흘러 들어가는 곳이죠.
많은 사람들이 대피할 만한 시설은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특수층이 사용한 요양처나 관서로 보이는...
장방형건물지와 부석건물지를 한바퀴 돌아 보겠습니다.
장방형 건물지에서 바라다 본 저수지 모습입니다.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무리생각해 봐도 신기하군요.
당시 이성산 주변에는 한강과 맑은 물이 흐르는 천들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인데
이곳에 물을 막아 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방형건물 터에 축조된 돌들입니다.
1000년도 더 된 세월을 거슬러 가며 여러 생각들에 잠겼었죠.
장방형건물터 뒷켠에 나 있는 배수구자 집수구 입니다.
이성산성의 동문이 잇는 곳으로 본 저수지와 장방형건물터 모습입니다.
이곳은 동문과 가까운 곳에 만들어 놓앗던 장방형건물 터 입니다. 산꼭대기죠.
산꼭대기에도 장방형 건물터가 남아 있습니다.
이곳과 더불어서 말이죠. 그림 죄측 끄트머리가 동문이 있는 곳입니다.
동문이 서 있던 이 자리에서 보면 서울의 동편 하남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예전에는 모두 초가가 보이는 저곳에서 선조들이 농사를짓고 살았을 것인데 이곳에서는 귀족놀이? ^^
이곳이 동문이 서 있던 자리가 발굴된 곳입니다.
혹시 사찰이 서 있던 자리는 아닐까요?...당간지주가 서 있던 모습같기도 하구요.
동문이 서 있던 자리에서 올려다 본 이성산정
저곳이 동문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다시 제일처음에 보았던 장소에서 서족으로 이동해 보았습니다.
남문지에서 성곽 서쪽으로 이동하며 궁금증을 풀기로 했습니다.
특이한 모습은 이 성을 축조할 당시 가공한 돌들이 모두 둥글둥글 하다는 겁니다.
모난돌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아마도 二聖山의 철학이 담긴 것은 아닐런지?...
돌 모양이 전부 둥근 모양이지요?
산성의 끄트머리 부분입니다.
이성산성의 서편과 주변은 이렇게 돌무더기로 토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경계표시만 해 놓은 듯...
풀섶에 숨어 있는 돌들도 둥글게 둥글게...^^
둥근 모양은 곳곳에 나 있습니다.이성산을 지키던 산신령의 가르침입니다.
제발 둥글게 살아라!!...물흐르 듯 몸을 낮추고...^^
미루나무 아래로 쌓인 저 돌무더기 속에서 옛사람들의 도란거림이 들려 옵니다.
이성산성을 소개하는 안내문들입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 만으로는 이곳의 주인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이런 규모로 미루어 '神聖'시 되었던 곳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물이 가진 속성 때문이기도 하구요.
아래 안내문들도 참조 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상상력을 해 할까봐 아래로 몰아 놓았습니다.^^
이성산성을 오르는 길에 눈에 띈 기와편입니다.
이곳에 건축된 건물이 소실되면서 흩어진 파편들이겠지요?
숭례문에서 쏟아져 내리 던 기와가 떠 올랐습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과거가 되었습니다. 버려진 이 성터와 같이...ㅜ
이곳으로 사람들이 오고 갔을 겁니다.
말발굽 소리와 개나리 봇짐을 등에 진 사람들이 보이는 듯 합니다.
아낙네들은 머리에 항아리 하나씩 이고 있군요. ^^
황토에 쌓인 저 들들이 이곳이 출입구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곳을 드나들 때 이 산속에서는 서기가 뻗쳤을 겁니다.
그리하여 이성산이라 불렀던 것일 테고...
이성산성 입구입니다. 산성은 발굴후에도 잘 보존되고 있었지만 城밖은 형편없었습니다.
서기 608년 경...그때도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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