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추억만 간직했던 할머니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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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추억만 간직했던 할머니를 보며

우리 인간의 인체 기능 중 '망각'이란 참 좋은 기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얼마전 날씨가 너무 더워 아파트단지에 있는 정자 그늘에 잠시 들렀다. 그곳에는 연로하신 할머니 서너명이 모여 앉아 부채질을 하며 잡담을 나누고 계셨다. 가끔 정자 곁을 지나면 눈에 띄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날씨가 너무 덥죠?" 그랬더니 "여긴 시원해 얼마나 시원하지 몰라 난 에어콘이지 하는 찬바람이 싫어. 어디살아?" 할머니의 나이는 대략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연로하신 분들이었는데 아직 발음이 또렷하고 건강해 보였다. "조~기 뒷동네 살아요."라며 할머니 근처에 앉았더니 할머니들은 자기 아들 자랑에 며느리 자랑에 손자들 자랑까지 늘어 놓으셨다. 자식들을 참 잘 키우신 할머니였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귀가길에 정자 곁으로 지나다가 할머니 일행을 또 만났다. 그래서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날씨가 너무 덥죠? 여긴 시원하시죠?" 다른 인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랬더니 "여긴 시원해 얼마나 시원하지 몰라 난 에어콘이지 하는 찬바람이 싫어. 어디살아?"라고 말씀하셨다. "조~기 뒷동네 살아요."라고 말하면서 할머니들의 기억력이 많이 나쁘신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들은 똑같은 말로 자식들 자랑을 늘어 놓았다. "할머니 자식들 참 잘 키우셨네요. 안녕히 계세요"라며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가 이틀전에 다시 슬리퍼를 신고 정자로 가 봤다. 할머니들이 똑같은 자리에 서너명 둘러앉아 있었다. 소일거리가 없는 할머니들이어서 딱히 갈 곳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날씨가 너무 덥죠?" 라고 똑같은 말로 인사를 했다. 이유가 있었다. 나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서 옷차림도 똑같이 입었는데 할머니는 여전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야. 어디살아?..."라며 다시 물으셔서 "...에구 할머니 조~기 산다고 말씀드렸잖아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랬나 싶은 표정으로 나를 살펴보며 씨익 웃으셨다.

 
할머니들의 연세는 돌아가신 어머니 연세와 비슷비슷 했다. 나의 어머니는 77세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중풍 때문에 꽤나 고생하셨다. 어머니의 병 간호를 위해 온 가족이 매달렸다. 돌아가시기 전에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의 수발을 동기들이 교대로 돌아가며 보살펴 드린 것이다. 어머니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운영이 가득하게 핀 들판에서 당신의 손자들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발음이 어눌하시다가 마침내 말씀을 줄이고 종국에는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우리 7남매를 키우시느라 고생을 참 많이도 하신 분이었다. 나는 정자에 둘러앉은 할머니를 바라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어머니들 께서 어떻게 좋은 일만 있었겠나. 돌이켜 보면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졌으면 하는 일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쁜 기억들이 모두 가슴속이나 머리속에 남아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이나 어머니에게는 망각이라는 좋은 기능이 있어서 좋은 기억만 남겨두고 나쁜 기억들은 상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정자 아래서 잡담을 나누시던 할머니들이 그런 모습이었다. 어른들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망각기능인 '치매'로 인해 고생을 한다는 소리를 부지기 수로 듣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할머니들을 보면서 망각이란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준 가장 좋은 선물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과 영상은 <윤효간의 피아노와 이빨> 871회 공연이 열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의 연주회 모습과 함께 전시된 '전라도 엄니'의 모습이다. 내가 정말 사랑한 울 엄마는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우리 7남매를 뒤로 한 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우리를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당신이 마지막 남긴 의미 심장한 미소가 너무 그립다.ㅜ   내가 꿈꾸는 그곳의 Phot 이야기 Boramirang    SensitiveMedia 세상에서제일 작고강력하며너무 따뜻~한 Media 내가 꿈꾸는 그곳      www.tsori.net / Boramirang 내가 꿈꾸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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