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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기독교인이 법정스님께 드린 매화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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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법정스님께 드린 매화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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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너무 소중했던 한 사람이 다비식이 봉행되는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의 육신은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깨달았기에 그에게서 향기가 나는 것일까? 사람들은 그 향기를 쫒아 눈물을 흘리며 따라갔다. 향기를 풍기면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닐 텐데 사람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흐느끼고 있었다. 깨달음의 향기가 온 세상을 진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며, 어쩌면 이 시대의 마지막 성자의 모습이 우리곁을 떠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애써 그의 향기를 외면하고 살았지만 그는 마지막 까지 내게 향기를 풍기며 나를 안타깝게 했다. 그가 내게 준 것은 꽃 보다 더 향기로운 가르침이었지만 나는 그에게 드릴 게 없었다. 법구가 연화세계로 이동하는 동안 안절부절 하다가, 그가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드릴 꽃한송이를 발견했다. 매화꽃이었다.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곱고 향기로운 꽃이 되어 있었다. 2010년 양력 3월 13일 오전의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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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나는 짬나는대로 신앙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기도원을 전전하며 영적각성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다가 영적체험을 한 후, 마침내 '순복음교회'에서 침례를 받으며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우연찮게도 하산한 이후 처음으로 이웃에서 순복음교회를 다니던 분이 나를 인도하게 됐다. 기적같은 일을 체험하고 난 이후 알지못할 이끌림에 따라 교회출석을 하고 등록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침례를 받게 되었는데 내게 있어서 교회생활은 잘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는 자꾸만 들게 되었다. 교회가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신앙생활과 전혀 다른것들이었다. 순종의 이름으로 목양되는 성도들은 그저 교회의 구성원일 뿐 교복을 갖추어 입은 학생들 처럼 교회가 목적하고 있는 일에 그저 휩쓸려 가야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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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출석 이후 목사님 심방이 이어지고 잘짜여진 구역과 지역의 조직에 각각의 장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주기적으로 구역예배 또는 지역예배 등 일상에서 직장일과 교회일을 제외하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이블을 가까이 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생활에 적용하는 등의 모습들은 결국 내가 꿈꾸던 그런 신앙생활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전통적으로 유교적인 관습을 행해오던 우리 집안 형제들이 보기에 나의 모습은 너무도 엉뚱하게 망가진(?) 모습이었다. 종가였던 우리집에서 엎드려 절을 하는 형제들 사이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우스광스러운 모습을 연출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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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쳇말로 나의 모습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교회출석 이전의 모습 보다 조금은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이런 모습에 대해 동역자들은 기독교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교회 출석을 포기하고 말았다.이유는 간단했다. 교회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은 너무도 편협했고 무엇보다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더욱더 고민하게 됐다. 교회는 바이블을 통독하며 느꼈던 감동이나 바이블이 제시하고 있던 길과 전혀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를 테면 교회에 목사와 전도사와 평신도들이 있었지만 '예수'는 없었다. 조금더 비약해서 표현하면 목사와 그의 참모들인 장로와 권사 밖에 없었다. 내게 있어서 바이블이란, 예수의 흔적이 전부였지만 교회에서 예수의 양심(하느님의 마음이리라)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들어졌고 성삼위에 대한 이론만 난무하고 있었다. 따라서 주의 종을 자처하는 목사가 하느님의 대리인이었으며 예수의 대리인이자 성령의 대리자로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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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나 집단과 마찬가지로 그러하지 않은 목사나 교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교회와 목사들 다수가 대부분 교회성장에 목말라 하고 있었고 성도들 숫자 늘리기에 바빳다. 그러니까 나나 우리 가족들은 그동안 교회성장에 필요한 머릿수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교회는 어느덧 예수 이전의 구약으로 되돌아 가고 있었고 스스로 주의 종이라 칭하는 사람들은 제사장이 되어가며 교회를 정치의 장이나 경제논리로 변질 시키고 있었다. 교회주식회사(?)의 회장과 사장 이사 부장 등이 포진되어 있는 조직이론이 교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를 인도한 집사는 전도의 이름으로 판매원이었던 셈이며 나는 구역의 다단계 일원으로 교회에 출석하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욕실(?)에서 풍덩 머리를 나꿔 채이며 침례를 받았던 것이다. 교회를 다단계 조직에 비교하니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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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끄적이고 있는 글은 누가봐도 네가티브적인 성격으로 교회를 나쁘게 말하는 것이며 기독교를 욕되게 하는 것이어서(예수는 욕되게 하지 않는다) 당사자들 입장에서 보면 껄끄러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반대로 조그만 일에도 감사를 표시하며 '할렐루야'를 남발하며 '하느님께 영광 돌린다'고 하면, 하느님의 역사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며 기도의 응답이라며 난리가 아니어서 곧잘 '간증'에 동원되기도 한다. 마치 새로운 상품을 써 보고 '너무좋다'며 리뷰 글을 쓰는 것과 다름없어서 '하늘의 상급'이 이어질 것이라 하며 추켜 세운다. 오죽하면 한 골 넣을 때 마다 두손을 붙들고 기도하는 시늉을 하며, 오죽하면 연말시상식에서 상 하나만 타도 '모든 영광 하느님께 돌린다'는 표현을 쓰겠나 말이다. 난 그런 모습 등을 보며 속이 점점 뒤틀리기 시작했고 교회 출석을 그만 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다른 이유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은 그들이 보기에 '귀신들린 모습'과 다름없는 사악한 기운에 사로잡힌 것으로 폄하되기 때문에 기회가 닿으면 하나씩 끄집어 낼 생각이다. 교회 출석을 하지 않으면 모두 귀신들린 불쌍한 영혼이고 개신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사탄의 자식들이라는 논리가 지배하는 집단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제 송광사에서 봉행된 다비식은 귀신들의 잔치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까? 나는 그 귀신(?)을 프란체스코 만큼 사랑했으므로 귀신을 사랑한 또다른 귀신이었던 셈이다. 나의 친구이자 스승이었으며 아버지 같았던 법정스님이 연화세계로 이동하는 동안 내 머리속은 텅 비어있는듯 했다. 생전 그를 만나 꽃 한송이라도 놓고 왔다면 이런 푸념섞인 글을 늘어 놓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입에 풀칠하기 바빠서 다시는 못 볼 귀한분을 뵐 수 없어서 안절부절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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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게 스님은 말씀 한자락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봄 여름 가을 겨울 중>" 그때 였다. 눈이 유난히도 많이 오셨던 지난 겨울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피었을 뜰 앞의 매화가 떠 올랐다. 그의 향기는 매화 향기였고 매화 꽃을 닮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가 열반에 들 무렵 뜰 앞에서 매화가 막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며, 그가 사람들의 손에 높이 들려 연화세계로 가고 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매화 한송이 밖에 더 드릴 게 없었고, 그나마 그 꽃은 인터넷을 통해 드릴 수 밖에 없었다. 내게 가장 소중했던 한 사람이 먼 길을 떠나는데 '이게 무슨 면목없는 짓인지'하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며 죽비가 울리는듯 뒤통수를 얻어 맞은듯 싶었다. 얼치기 기독교인이 법정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보인 작은 성의였다. 그러나 스님은 다시금 내게 작은 가르침으로 토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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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 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


* 이 글을 통해 일부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도전을 받으면 작은 가능성이 보일 것으로 여긴다. 오늘은 우리 교회들이 말하는 '성수주일'이다. 매주 한번씩 머리를 조아리며 무엇을 구하며 무엇을 사함받고자 하는가?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소개해 드린다."...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그 누구도,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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