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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한명숙, 앞길 막는 신문방송 기자들 아수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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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앞길 막는 신문방송 기자들 아수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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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8일) 대한민국 언론사들의 기자들은 모두 다 모인 것 같았다. 신문은 물론 방송사와 인터넷 매체 등이 한곳에 다 모였으니 규모가 짐작이 될 것이며 언론의 촛점이 서울지방법원 서관 앞에 모두 집결했다. 떡검으로 불리는 검찰로 부터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뇌물 수수 의혹으로 기소를 당한 후 첫 공판이 열리는 곳이 서울지법 서관 311호 중법정에서 열리기 때문이었다. 포토라인 곁으로 카메라가 도열해 있었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모습이 오후 1시42분경 서울지방법원에 모습을 드러내자 카메라가 일제히 셔터음을 작렬했으며 한 전 총리 지지들은 한 전 총리의 결백을 상징하는 백합을 나누어 들고 "한 총리님 힘내세요", "한 총리님 사랑합니다"라는 구호로 한 전 총리를 응원했다. 그리고 한 총리 뒤를 따라 법정으로 함께 이동했는데 서관 입구는 언론사 기자들과 한 전총리 지지자 및 민주당 당직자 등이 한데 엉켜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었다. 한 전 총리는 법정으로 향하기 전 "내가 살아온 인생을 걸고 법정에서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라고 말하고 곧바로 재판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리고 한 전 총리가 법정에서 떡검의 우스광 스러운 주장을 들으며(미디어 한글로관련 기사<http://v.daum.net/link/6088634>를 참고 하시기 바란다. 법정 상황이 제일 잘 묘사된 것으로 판단된다.) 모두진술 등 첫 공판을 끝내고, 오후 3시 50분경 서관 로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포스팅 제목과 같이 결코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주지하다시피 참여정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서울지방법원에서 공판을 받게된 이유는 한 전 총리가 누누히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의 삶과 양심을 돈으로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이날 재판정의 모두 진술에서도 " 저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과 양심을 돈과 바꿀 만큼 세상을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치검찰 또는 떡검으로 불리우는 검찰은 곽영욱을 내세워 조선일보에 한 전총리가 뇌물을 수수한 의혹을 흘리면서 민주세력의 수장이자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던 한 전 총리에게 이른바 '한명숙죽이기'를 시도해 왔다. 조선일보가 1면 머릿기사로 한 전 총리에 대한 뇌물수수 의혹을 싣자 마자 이른바 조중동 및 언론과 방송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조선일보 기사 등을 인용하거나 부풀리거나 추측기사를 쓰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에 이를 때와 비슷한 상황을 전개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기에 이르자 한 전 총리 측은 조선일보 기자 및 검찰을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정치검찰과 권언유착의 언론 등에 대해 강력한 개혁을 위한 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다 조중동 등 언론과 방송이 만들어 낸 허상이었고 한 전 총리의 앞길 내지 민주세력의 앞길을 신문과 방송들이 앞장서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신문과 방송 등이 서울지법 서관 앞에서 한 전 총리가 도착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첫공판이 끝난 후 다시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었는데, 나는 각 언론사 카메라 기자 내지 기자들에게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이 글을 끄적이고 있다.  


 

어제 서울지법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되물으면 묻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취재 때문에 왔을 것이며 이른바 떡검이 주장한 한 전 총리의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법정 공방 등에 대해 알아 보고자 왔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본 기자들의 모습은 사실(Fact)을 취재하러 온 것이라기 보다 한 전 총리의 모습(얼굴)을 담는데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취재거리다. 카메라 기자가 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한 전 총리가 서울지법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일제히 포토라인 곁에서 셔터를 눌렀다. 한 전 총리를 태운 자동차가 정차하는 지점에 포토라인을 설정해 놓았으므로 수십명 이상의 카메라 기자들이 동시에 이 장면을 담았고 나 또한 사진과 영상으로 이 장면을 담았다.
 


그리고 첫 공판이 열리는 311호 중법정으로 올라가서 재판 과정을 지켜봤다. 100명 규모의 방청석에는 기자와 한 전총리 지지자 등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차 약 250명 정도의 인원이 될 것이라는 추측을 보안요원으로 부터 전해 들었다. 법원 관계자에 의하면 서울지법에서 두번째로 큰 법정이었는데 이 상태대로 라면 다음번 공판에는 보다 더 넓은 재판정(150명 규모)을 사용해야 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만큼 한 전총리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크다는 말이다.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재판정에는 카메라 등으로 기록을 남길 수 없고 방청객 내지 기자등은 재판정의 모습을 속기 등으로 기록내지 스케치 할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그랬다.



첫 공판을 지켜 보면서 정말 어이없는 해프닝들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나는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검찰의 수준이 저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싶었다. 하긴 억지로 짜맞추기 했다고 하니 결과 또한 우스광스럽게 나타날 수 밖에 없겠지만, 도대체 어떻게 전직 국무총리를 기소한 검찰의 모습이 저러한가 싶어 우습기도 했지만 한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는 곽영욱의 모습이었다. 도대체 곽영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링거 두 봉지(비닐팩)에 길게 늘어진 호스에 의지한 채 시종 고개를 오른쪽으로 뉜 채 재판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뒷모습이니 그렇게 보였다. 참, 촌극도 이런 촌극은 없었을 것이며 재판과정을 일일이 속기하던 기자들의 모습을 보면 결과가 너무 안스러웠다. 사실을 어떻게 전달 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따라서 서두에 이 과정을 지켜본 '미디어 한글로님'의 글을 참조하라고 했던 것이다.


누가 원고(검찰)인지 알 수 없는 일이 법정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과정을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를 했더라면 어떨까 싶었다.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개그도 이런 개그가 없다며 배꼽을 쥐어 짰을 것이다. 곽영욱이 한 전 총리에게 줬다는 돈의 출처는 물론 한 전 총리가 미화를 환전하여 사용한 내역 등에 대해서 재판부나 검찰에게 또는 검찰이 오히려 한 전 총리에게 되물을 정도니 총리공관의 정황 등에 대해서는 더 확인해 보나마나 할 정도였다. 이미 나의 포스트에 밝힌 바가 있지만 총리공관에서 지척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금원을 수수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이자 불가능할 정도라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그런데 떡검의 헛다리 때문에 거의 초죽음이 된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검찰측의 기소 사실이나 한 전 총리의 심리과정에서 뭔가 얻어내야 했던 신문과 방송들이었다. 최소한 상식적으로 납득이 갈만한 내용들이 오고 가야 다시금 한 전 총리에 대한 의혹을 부풀릴 수 있었겠지만, 검찰이 방청객 내지 한 전총리 측을 웃기니 그 내용을 그대로 신문과 방송에 보도할 수는 없을 것이며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신문과 방송이 떡검 믿다가 떡 되었다는 표현이 옳은 표현일까? 마치 신문과 방송들이 취재거리(이른바 '꼭지')를 찾지 못해(?) 화풀이라도 하는 듯한 일이 발생했다.



어제 서관 앞으로 취재를 나간 기자 등은 다 아는 일이겠지만 한 전 총리가 첫공판을 끝내고 나올 시간쯤(오후 3시 50분 경) 서관 앞에서는 작은 문제가 생겼다. 포토라인을 수정하는 문제였다. 당초 한 전총리가 법정에 들어기 위해 자동차를 주차하는 위치에 포토라인을 만들어 뒀지만, 공판이 끝나자 처음 자동차가 정차한 위치로 자동차가 갈 수 없어서 서관 입구로 포토라인을 수정해야 한다는 뜻을 한 전 총리측이 통보해 왔다. 기자들은 그럴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일어날 사태 등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는 태도와 함께 기분나쁜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먼저 그어둔 포토라인으로 한 전총리 일행이 이동할 수 없었다. 따라서 포토라인은 사진과 영상처럼 무너져 버렸고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말았다. 기자들이 서울지법에 왜 왔나? 하는 우문이 이렇게 나왔는데 위 영상과 사진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듯이 한 전총리의 귀가 모습을 촬영하는 기자들이 한 전 총리를 마치 중죄인 다루듯 하는 모습이다. 카메라기자들의 이런 모습은 익숙하지만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출(?)된 장면으로 한 전총리에 대한 뇌물 수수 의혹을 얼마나 가감할 것이며, 이 장면을 촬영해 본들 신문이나 방송사가 얻을 게 무엇인지 도무지 궁금해서 기자들이 서울지법에 왜 왔나?하는 우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한 전 총리가 서울지법에 오게된 이유는 검찰과 조선일보 및 신문과 방송들 때문이었고 기자들 때문이자, 언론이 권력에 놀아난 결과 이런 해프닝을 발생시키고 있었던 것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조차 신문과 방송 등 '개념없는 기자'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섭섭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민주세력의 앞길을 막아선 게 신문과 방송들이며 기자들이고 한 전 총리가 서울지법에 오게된 이유도 정치검찰과 언론이 동시에 놀아난 이유가 아니었으면, 서울지법이 이렇듯 소란스럽지 않았을 것으로 사료되는 것이다. 그런 신문과 방송의 기자들이 다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진 한장 내지 영상 얼마간을 얻기 위해 한 전 총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 해야 할까? 아직도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 다수는 권력 앞에서 수단과 방법을 다해 아부를 떠는 정도를 지나쳐 스스로 권력이 되어 사회적 약자를 힘들게 하고 있는 모습인데, 기자들이여!...꼭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지 묻고 싶다.



한 전 총리가 서울지법에 들어서는 모습이나 귀가하는 모습은 초연했고 늘 그랬듯이 백합 같은 모습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한 전 총리에게 뇌물 수수 의혹을 제기한 이유 등에 대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과 검찰을 이용했다는 게 첫 공판을 지켜본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적으로 흘러 나왔고,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한 곽영욱은 자신의 처자식을 위해 마지못해 억지 진술을 한 것으로 말하고 있었다. 한 전 총리는 모두발언을 통해 곽영욱이 검찰의 대질 심문에서 "검사님,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살려주세요"라는 당시 곽영욱의 표정을 언급하며 "한명숙 표적수사에 얼마나 모진 고초를 당했으며 얼마나 재산과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면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진술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고 동정이 갔습니다."라며 검찰이 짜맞추기 기소를 했다는 등 결백을 주장했다.



서울지법 재판부는 이 사건이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 등에 따라 "선거와 관련된 사건은 되도록 빨리 끝내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집중심리를 열기로 했는데 오는 내일(11일)은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곽영욱을 심문하고 오는 22일에는 현장검증을 실시한다고 하며 26일,29일 등 일주일에 세번씩 집중심리로 공판을 빠르게 진행 한 후 4월 9일에 선고를 할 예정이다. 재판과정을 통해 드러난 결과를 참조하면 검찰이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건 곽영욱의 진술 뿐이어서, 곽씨의 심문과정과 현장 검증이 이른바 떡검의 뇌물수수 의혹 기소 사건을 풀어줄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여겨져 귀추가 주목된다. 다음은 한 전 총리가 첫 공판에서 모두 발언을 한 전문을 공개 한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두진술 전문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오늘 생애 두 번째로 법정에 섰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투옥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고문을 당하고 법정에 섰던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때는 독재권력 앞에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상황이 무섭고 두려웠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서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신명나게 일하다 잡혀왔기에 수의를 입은 제 자신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법정에 선 저는 한없이 서글프고 착잡한 심정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시련에 부딪혔습니다. 독재의 시절에서 목숨을 걱정하기도 했고, 때로는 지독한 가난도 겪었습니다. 그 때마다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한 번도 타협하거나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련을 통해 저는 끊임없이 단련되었습니다. 숱한 시련들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다만 주어진 삶을 진실 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월이 지금의 한명숙을 만들었다고 자부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맞닥뜨린 시련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검찰 기소에 의해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뒤집어 쓴, 전 국무총리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부패와 비리, 제 인생에는 결코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말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제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전처럼 저의 신념과 행동의 올바름을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뇌물수수'라는 모두가 경멸해 마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서 싸워야 하는 구차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히 말씀드리건대, 저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과 양심을 돈과 바꿀 만큼 세상을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가난해도 항상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한때나마 제가 가졌던 지위를 자랑하거나 허세를 부려 본 바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저는 국민을 향해서 "인생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단순한 언어적 수사가 아닙니다. 저의 살아온 삶 전체를 건 절규였습니다. 저에게는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화려한 경력보다는 저를 지탱해 온 삶의 진실이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검찰의 공소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5만 불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의 눈을 피해 슬쩍 돈을 받아 챙기는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할 줄도 모릅니다. 또 남의 돈을 스스럼없이 용돈처럼 받아쓰는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국가 공공시설인 총리공관에서 벌어진 오찬 자리에서, 비서관과 경호관들이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는 그런 자리에서 돈을 받는다는 것은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 오찬은 정세균 산자부 장관의 사의표명 후 지인들끼리 가진 송년회 성격의 조촐한 점심식사 자리였습니다. 12월 12일 국무회의 후, 정세균 장관은 총리집무실을 방문하여 장관직을 사임하고 당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상의하였습니다. 이후 대통령과 의논하여 후임 장관까지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12월 20일 오찬 시에 정 장관은 내부적으로는 이미 퇴임을 확정한 상태였고, 12월 29일 공식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퇴임하는 장관에게 총리가 인사 청탁을 한다는 일이 상식에 맞는 일이겠습니까? 정세균 장관과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오찬자리를 마련했다는 검찰의 사건구성 설정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저는 국무총리 임기 중에 국회의원 신분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데 돈이 필요했다면 후원회를 통해 모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리 재직 중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아예 후원회 계좌를 폐쇄하기까지 했습니다. 특별히 총리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이외에 따로 돈을 모아서 쓸 만한 필요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제 인생을 통해,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지위로 인해 원하든 원치 않든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람들에게, 여성계에게, 상징적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도덕성을 잃으면 이것은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저를 바라보고 온 사람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저는 그 책임감과 내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소명감을 매순간 자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또한 한국 최초의 여성총리로서 제가 일을 잘하고 깨끗해야만 후배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자라나는 우리 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국무총리는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을 통할하고 지휘하는 자리입니다. 총리의 자세가 흐트러지면 공무원의 기강도 무너지고, 따라서 나라의 질서도 어지러워집니다. 저는 이런 막중한 책임감과 중압감으로부터 한시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해 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총리공관에서의 5만 불 뇌물 수수라는 혐의는 너무나도 부당하고 악의적인 날조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그동안 검찰 소환에 불응했고 수사 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렇게 떳떳하면 검찰 조사에 적극 응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묵비권은 피의자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당시의 부당한 검찰 수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저에 대한 수사는 조사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언론플레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익명의 가면을 쓴 누군가에 의해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심지어는 수사가 종결되기도 전에 제 혐의 내용이 샅샅이 구체적으로 때로는 내용을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언론에 유출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 속에서 저는 이미 범죄자가 되어 있었고 저의 인격과 명예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검찰조사는 진실을 밝히는 공정한 절차가 아니라 요식절차에 불과했습니다. 저의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 피의사실을 조금씩 흘림으로써 저에 대한 언론의 매도를 이끌어냈던 부당한 수사에 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뇌물수수'라니 이 무슨 해괴한 날조입니까? 이것은 저 한명숙의 살아온 삶 전체를 난도질하는 음해입니다. 참담한 심정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저는 국정의 중심에서 장관과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는 마음에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에 응하였고 다만 부당한 수사에는 여전히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하기 위해 피의자로서 당연한 권리인 묵비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저는 이제 법정에 섰습니다. 법 절차의 정당성과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며, 본 법정에서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성실히 재판에 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가 곽영욱씨를 알게 된 것은 2000년, 그가 당시 어려웠던 여성계를 선뜻 도와주었던 일이 인연이 되어서입니다. 그 뒤로 그저 기업을 잘 운영하는 기업인 정도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알고 지냈을 뿐, 어떤 청탁을 서로 간에 할 정도로 허물없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그가 저에게 5만 불의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을 했다는 사실에 처음엔 너무도 경악했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가 검사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병약하고 공포에 내몰려 있었습니다.

"살려 주세요 검사님,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애원하는 처절한 모습을 봤습니다. 한명숙 표적수사에 얼마나 모진 고초를 당했으며 얼마나 재산과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면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진술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고 동정이 갔습니다. 이러한 궁박한 상황에서 그의 약점을 잡아 받아낸 진술 하나 만을 가지고 저를 몰아붙이고 있는 검찰의 수사는 재판과정을 통하여 그 허구가 명명백백히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지금 이 순간, 살아온 모든 인생을 걸고 제가 평생을 지켜온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죄의 유무를 따지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살아 온 삶 전체를 심판받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진 재산이라곤 지금까지 살아 온 삶 밖에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살아 온 삶이 소중합니다. 저는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직 진실만을, 양심의 소리만을 말하겠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일은 난감하고 가슴 답답한 일입니다만,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재판에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정의와 공평의 눈으로 진실을 밝혀내실 판사님의 혜안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기자들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물론 민주세력의 길을 앞장 서 막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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