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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성구미 촌로가 우럭으로 만든 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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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미 촌로가 우럭으로 만든 생화
-사라지는 '성구미 포구'의 마지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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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50년 동안 이 바닷가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아니 사람들은 할머니가 성구미 포구에서 살아온 세월 보다 성구미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알려고 하지 않으니 조그만 포구에서 50년 동안 살아온 할머니에 대해 모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꽃다운 나이에 성구미로 시집온 이후로 할머니는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행복한 미래가 언제인지 자신에게 찾아올지도 모른다며, 한 해 두 해 손꼽아 기다리며 바람소리와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를 벗으로 삼으며 보냈던 50년의 세월은 저만치 사라지고, 할머니 앞에는 우럭이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통발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런데 그 우럭들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던 게 아니라 촌로의 지난 50년 세월의 꿈을 재현해 놓은듯 꽃잎처럼 펼쳐져 오후 햇살을 쬐고 있었다. 성구미 포구를 이루던 작은 동산 아래 천막으로 만들어둔 어시장에는 우럭과 조기들이 봄바람에 속살을 말리거나 겉거죽을 볕에 쬐고 있었지만, 포구의 옛날 방파제의 석축은 세월 앞에서 속절없이 하나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울고 있었다. 촌로는 이방인에게 우럭을 권했다.





"...잡사바...맛있어!..."

할머니는 길손에게 우럭이나 조기를 권하며 또 하루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나의 관심은 빈 통발위에 꽃잎처럼 펼쳐둔 우럭에게 가 있었다. 할머니는 성구미 포구에서 50년을 하루 처럼 살아왔고 이제는 아들이 잡아 온 우럭을 손질하며 얼기설기 엮어둔 작은 통발 위에 못다한 꿈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 할머니는 우럭의 배를 가를 때 마다 꽃잎을 한장씩 만들고 있었고, 그 꽃잎들은 한송이 꽃이 되어 서해끝자락 바닷바람을 맞이하며 성구미 포구에 생화로 피고 있었다. 그러나 그 꽃들은 춘삼월과 어울리지 않는 꿈 같은 세월이 만든 꽃이었을 뿐이었다. 할머니와 나눈 짧은 대화 속에는 할머니가 그토록 그리워 하던 꽃잎 같은 꿈은 온데간데 없고 50년을 하루 같이 살아온 성구미 포구도 곧 사라질 것이라는 대답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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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미 포구 곁에 늘어선 좌판 뒤로는 까마득히 오래전 한 촌로가 이곳에 시집올 때 부터 포구를 내려다 보던 소나무들이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는듯 했지만 바람은 파도소리와 함께 세차게 밀려들었다. 아직 성구미 포구에 봄이 찾아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어지럽게 널린 닻에는 따개비와 녹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등 뒤로는 현대제철을 가두어둔 거대한 방파제가 성구미 포구를 집어 삼킬듯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었다. 성구미 포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낮선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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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구미 포구는 아직도 옛날 모습 얼마간은 간직하고 있었다. 작은 어선들이 즐비했고 갈매기 울음소리도 여전했지만 무엇보다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포구를 서성이는 촌로들이 갈 곳을 찾지못해 좌판을 벌려놓은 모습이었다. 그랬다. 성구미 포구에 살던 촌로들은 눈만 뜨면 갈매기를 동무 삼아 출항한 지아비가 돌아올 때 까지 기다린던 그곳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아비는 죽고 이제 그 아들이 서해로 나가보지만 그나마 뱃일을 하는 사람들의 수는 크게 줄어들고 벌이도 시원찮아 대부분 도회지로 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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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체념하고 살아가고 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지만 아마도 촌로가 보낸 세월을 더듬어 보면 성구미에 갇혀 지냈던 세월이 얼마나 무심했을지 모를 일이다. 성구미 포구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산면 가곡리에 위치한 서해의 작은 포구며 현대제철(구한보철강)이 들어서면서 부터 운명이 달라지고 있었다. 성구미란, 섬처럼 끝이 막힌 지형이라고 하여 '섬꾸미'라고 불리다가 '성구미'가 되었다는 지명의 어원을 가진 곳이며 지금은 한보철강이 코 앞에 보이는 조그만 포구는 간재미회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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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리 바닷가에 위치한 성구미 포구의 간재미회는 그냥 유명했던 정도가 아니라 '아주 유명한 곳'으로 엄동설한이 끝나면 봄부터 외지에서 찾아드는 손님들로 항상 붐비던 곳이다. 싱싱한 회가 넘쳐 나던 성구미 포구는 특히 석문방조제가 생기면서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는데 한 때 석문방조제가 관광객을 끌어들이면서 이곳은 발을 디딜 틈도 없었고 천일염 재배장소로도 유명한 곳이었지만 석문방조제와 함께 대호방조제 등이 바다를 막는 간척지 사업으로 성구미는 물론 실치로 유명했던 장고항이나 왜목항이나 우리나라 서해 끝에 위치한 삼길포항 등 작은 규모의 항포구의 옛 모습은 서서히 그 모습을 잃는 한편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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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미 포구를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곳의 명물 간재미회 무침을 맛보고 싱싱한 회를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들로 간재미는 3월에서 5월, 6월이 제철이고 간재미가 알을 품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어서야 제맛을 볼 수 있는데 여름 한철 간재미회 맛을 볼 수 없는 이유는 간재미 살이 뻣뻣해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3월 첫주 '경칩'날 찾아간 성구미 포구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모습이었고 횟집 사람들은 카메라를 가진 나를 향해 갈매기 사진은 나중에 찍고 회 한 접시를 먼저 먹고 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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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담벼락과 마주하고 있는 포구 안쪽에 성구미 포구의 옛 흔적 조금은 남아있었지만, 염전 대신 덩치 큰 철강회사를 바라보며 회를 먹기란 쉽지 않았고 성구미 포구를 들른 나의 목적은 사라지는 풍경을 담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성구미 포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곳을 둘러 봐도 카메라가 마땅히 찾을 곳이 없어 보여 좌판을 서성 거렸던 것인데 그곳에 한 촌로가 우럭의 속살로 생화를 빚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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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미 포구의 촌로는 아직도 이 포구로 시집 올 때 마음은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일까? 둥그런 통발 위에 속살을 드러내고 경칩 날 찬바람을 쐬고 있는 우럭의 속살 처럼 차디찬 바닷가에서 50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촌로가 피우고자 했던 행복한 꿈은 '우럭 꽃'으로 피어났고 간재미들은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끝물이여...인자 여그 다시 올 수 없응게...잡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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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우럭을 향해 카메라만 샬칵 거리고 있는 나를 향해 아쉬운 한마디를 했다. 성구미 포구는 할머니가 보낸 청춘과 함께 세월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말이었다. 포구에 들어설 때 어째 엉성하고 황량하던 모습이었는데, 성구미 포구는 개발로 인해 그나마 지금의 모습 조차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미 이곳 포구 사람들에게 개발보상금이 건네졌고 곧 이곳을 떠나야 할 형편이므로 경칩날 만난 이 풍경 조차 내 블로그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풍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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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6월이면 현대제철의 확장공사로 인해 '성구미 포구'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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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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