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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건강 미인 '소양강 처녀' 더듬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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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 미인 '소양강 처녀' 더듬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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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춘천을 다녀 오면서 소양호에서 근화동 쪽을 바라보고 있는 소양강 처녀 동상을 처음으로 가까이 가 봤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정은 춘천에 살고 계시는 분들도 예외는 아닐듯 한데 일반에 널리 알려진 소양강 처녀의 동상은 자동차로 휙 지나치는 게 고작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양호 곁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겨울연가의 촬영장소여서 모처럼 소양강처녀 동상을 찾는 날에도 일본인 관광객 한 그룹이 '욘사마 배용준'의 촬영장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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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기도 했지만 이곳을 찾는 분들은 많지 않아서 소양호반을 유람할 수 있는 여객선이나 보트에 이끼가 가득하게 낀 모습과 같이 이곳을 찾는 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모처럼 소양호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짬을 내어 늘 지나치던 소양강 처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소양강 처녀가 왼손에 들고있는 물건이 무엇인가 궁금하기도 하여 처음으로 그녀를 가까이서 만나 봤습니다. 건강 미인 소양강 처녀는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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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 처녀 상은 지난 2005년 11월, 국민 애창곡이된 '소양강 처녀'의 발상지인 춘천의 소양호반에 건립했는데요. 소양강 처녀 작사자인 반야월씨와 가수 김태희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업비 8억5천만원을 들여 제작한 12m 높이의 소양강 처녀상 입니다.



이 조각상은 국내에 현존하는 여인상 가운데 최대 크기로 알려졌으며 조각가 남상연(45.경기도 고양시) 씨가 제작했습니다. 그림 뒤로 보이는 소양 2교 등 소양호를 가로 지르는 다리들은 1967년 의암댐이 생긴 이후로 춘천 호반 곳곳에 만들어 졌으며, 소양강 처녀가 어린 시절과 18세의 꽃다운 나이를 보낼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춘천호반이 겨우 물을 가두고 있을 당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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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춘천호반이 만들어진 것은 소양강 처녀의 실제 주인공인 '윤기순'씨의 나이가 18세 때 였고, 의암댐이 만들어 지면서 소양강은 사실상 소양호수로 막 변하고 있을 당시였습니다. 이후 오늘날은 춘천이 호반의 도시로 불리우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산으로 빙 둘러싸인 분지 사이로 소양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다시금 생각해 봐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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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 처녀 윤기순씨의 18세 때 모습과 2006년 현재 모습

소양강 처녀를 작사한 반야월 선생에 따르면 그의 사무실 '가요작가동지회'에서 사무를 보며 노래를 배우던 열여덟살 처녀가 자신의 고향인 춘천으로 동지회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부터 국민 애창가요인 소양강 처녀의 시상이 떠 올았다고 전해지는데요. 당시 이곳을 방문한 일행들이 소양강의 아름다움에 빠지며 너무 순수해 보이는 처녀와 강의 모습을 보며 시상이 떠올라 즉흥적으로 끄적인 시詩가 소양강 처녀였고, 그 주인공이 바로 윤기순씨(사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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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양강 처녀 윤기순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윤씨와 나이가 비슷한 소설가 이외수님을 상상 하시면 그녀가 얼마나 풋풋한 처녀의 모습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고, 이외수님이 석사동에서 청년기의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당시, 그의 저서를 맑고 투명한 영혼으로 만들어 주고 지배한 춘천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공지천이나 소양강 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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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을 곱게 차려 입고 소양강을 배경으로 촬영한 모자 사진은 현재 소양강 처녀 동상이 건립된 부근이며, 뒤로 보이는 다리는 소양2교로 다시 만들어 졌고 현재는 교각 흔적만 남아 있다.<자료사진 출처: http://cafe.daum.net/195816>

따라서 당시 소양강이나 춘천 지역에 살고 있던 분들이나 대를 이어 춘천에 살고 계신분들의 가슴이 따뜻하고 숨김없는 솔직함 등을 고려하면, 소양강 처녀의 노랫말 속에 등장하는 모습은 우리가 잃어버린 아름다운 과거가 그대로 녹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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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을 수몰 시킨 의암댐이 멀리 보인다. 멀리 삼악산 아래로 소양강이 흐르고 있었다.

몇년전 이외수님과 가장 가까운 친구(옛 강원문단) 몇분과 술자리를 나누면서 당시 소양강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지금의 의암댐 바로 곁에 있는 덕두원을 거쳐 서울로 가는 길은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위 그림에서 의암댐 물을 모두 배출했다고 가정하니 수려한 삼악산 사이로 유유히 흐르며 강촌으로 이어질 모습이 금방 연상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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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자료를 살펴보면 소양강변에는 백사장이 널려 있었고 여름이 되면 이곳에서 가족들이 피서를 즐기는 모습이 마치 바다로 보일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으며, 소양강 처녀 윤씨와 반야월 선생 등이 이곳을 찾아 망중한을 달랠 때 해가 저무는 소양강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곳에 열여덟 딸기 같이 풋풋하고 향기로운 처녀가 갈대를 꺽어 든 모습이 시상을 금방 자극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고도 남습니다. 소양강 처녀 상에서 그녀가 왼손에 든 물건은 갈대였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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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그냥 지나칠 때) 소양강 처녀가 손에 든 물건이 나룻배를 저을 수 있는 노 정도로 대충 생각했지만, 소양강 처녀를 다시 음미하며 자세히 더듬어(?) 본 결과 소양강 처녀를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고 시상을 번뜩이게 만든 주 재료로 보일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소양강에서 건진 유일한 추억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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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 처녀가 바라보는 맞은편 근화동 음식점 골목 모습이 세트장 같다.

그러나 다행히도(춘천시민의 입장에서는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소양강 처녀상이 있는 춘천호반 곁에는 미군부대가 오랜동안 상주하면서 주변의 개발이 늦어, 지금도 소양강 처녀상이 마주보는 근화동에는 마치 영화세트장 같은 옛날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중 몇 음식점들은 매우 유명한 명소로 식사때가 되면 발디딜 틈이 없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맛집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제가 먹어 본 막국수 중에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남촌막국수' 집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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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 처녀상 바로 곁에 '겨울연가' 촬영장소가 있다.

3대가 함께 막국수집을 운영하는 이곳의 풍경만 봐도 소양강 처녀가 살던 당시를 박재해 둔 듯 하고, 약국집 골목을 들어서면 금방 대로변 넘어 소양강 처녀가 건강한 팔등신 모습으로 갈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배용준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만든 '겨울연가'는, 우리 국민들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된 국민애창곡 소양강 처녀를 무심결에 떠올리게 만들며, 우리나라는 물론 바다건너 일본에 있는 줌마님들의 여심까지 흔든 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


치마 걷어 올린 '소양강 처녀'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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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흘러 소양강은 춘천호반으로 변했고 소양강 처녀 윤씨는 어느덧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했지만, 노랫말 속에 숨어있는 소양강 처녀는 언제 봐도 18세 처녀 모습 그대로 건강미인 입니다. 가까이에서 소양강 처녀 모습을 보신 여러분들은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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