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된 금천다리길 가을을 털다
세검정을 다녀오는 길에 체부동에 있는 금촌시장을 기웃 거리며 서울에서 좀체로 만나기 힘든 한 풍경 앞에서 꽤 오랜동안 서성거렸습니다. 그곳에는 다 쓰러져가는 한옥 처마에 알루미늄 사다리를 받쳐 놓고 기와지붕 위에서 한 할머니 께서 가을을 털고 계신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서울에 사시면서 이런 풍경을 보신적 있으세요?
할머니는 지붕위를 조심스럽게 옮겨 다니며 다 익은 대추를 따고 계셨는데 할머니가 올라선 한옥 지붕아래 처마에는 오래되고 낡은 양철 물받이가 바위솔과 이끼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한 모습이었죠.
서울에서 가을을 털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곳에 이끼와 바위솔 까지 만날 수 있었으니 여간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좁은 골목에서 한옥 지붕위에 계신 할머니를 올려다 보고 있노라니 카메라 앞으로 대추가 투둑 거리며 여기저기로 튀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가 털고 계신 대추를 골목 아래서 줍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정겨운 풍경이던지요.
체부동은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곁에 자리잡고 있고 금촌시장을 끼고 있는 금촌다리길을 가진 서울의 오래된 동네중 하나며 이곳에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가지 명제 앞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오래 사신분들이라면 좁은 골목길과 함께 불편한 재래식 구조의 건물과 시설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마을 중 하나라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적인 동네인것 만은 사실입니다.
서울 토박이들이 유일하게 서울의 전통적인 모습이라고 자랑할만한 곳이기도 하구요. 이곳 금촌다리길 한편에서 할머니가 가을을 털고 계신 장면에서 시선을 조금만 더 돌리면 사방으로 콘크리트 빌딩들이 즐비한데, 서울의 본 모습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모습입니다.
체부동 금촌다리길에서 대추를 수확하고 계신 할머니의 모습 근처로 어디서 날아온지 모를 바위솔과 이끼들이 자랄 수 있는 모습과 같이 600년 고도 서울의 모습은 경복궁과 함께 서울의 옛모습을 유일하게 갖춘 곳으로 인위적으로 조성되고 관리되는 한옥마을과 질적으로 다른 사람 냄새가 풍기는 서울의 전통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위솔이 낡은 물받이 통에서 이끼와 함께 자라는 이런 모습은 머지않아 우리가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서울의 진풍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멀쩡한 한옥이 헐려나가는 모습을 봤고 한옥이 즐비한 이 동네에 콘크리트로 만든 양옥이 들어서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서울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모습이었죠.
사유재산이 개발제한에 묶이거나 원치않는 재개발 사업에 포함되는 것을 싫어하거나 아니면 좋아할 당사자들이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보존을 통해 잘 관리하면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도 한 방법인 거 같아서 곧 전설속에 묻힐 몇 장면을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제가 만약 여행을 좋아하는 외국의 친구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가이드를 한다면 서울에서 제일 먼저 보여 주고 싶은 게 4대문 안에 있는 한옥마을이며 그중에서도 체부동과 닮은 한옥동네 모습입니다.
체부동 등 오래된 서울의 한옥마을의 모습은 비록 콘크리트로 만든 신식 빌딩 등에 비하면 누추해 보일지 몰라도 '한강의 기적'을 일군 진정한 과거의 모습이 아닌가 싶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진정한 서울 토박이로써 문화서울을 가꿔온 사람들이라고 소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미니어쳐 시설을 통해 서울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면들이나 전시용행사로 사진이나 촬영하게 만드는 그런 모습들은 서울의 가치를 소개하는 모습이 아니라, 서울을 알고싶은 사람들에게 마치 모델하우스에서 서울을 분양하려는 듯한 부자연 스러운 모습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워 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알고싶어하는 것은 비지니스로 충만한 관광산업이 아니라 진정한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고도의 뒷골목이 아닌가 싶구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반듯한 서울의 모습을 소개한 후 서울의 문화 중심이었던 고궁을 방문한다면 시쳇말로 뻑~갈 수 밖에 없는 게 서울의 풍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혹, 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금촌다리길 한편에서 한옥 처마끝 물받이통에서 자라고 있는 바위솔과 이끼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서울의 모습을 잊지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행인것은 서울시가 이런 사정을 헤아려서 앞으로 10년간 3,700억원을 투입하여 급격하게 멸실돼가는 한옥 부흥에 나서고 있고, 오세훈 서울 시장은 "한옥선언은 서울의 정체성을 살려내 세계적 문화도시로 도약하겠다는 새로운 가치 선언"이라며 "선언을 계기로 서울시 곳곳의 한옥주거지를 보존해 친환경 웰빙주거지로 가꾸겠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서울시는 10년간 총 37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4대문 안 3천100동, 4대문 밖 1천400동 등 총 4500동의 한옥을 보전하거나 또는 신규 조성하기로 했었는데요. 우선 북촌마을에서 시행해온 한옥 개보수 지원비용을 4대문만으로 확대하고 지원금도 늘릴 계획이며 3,000만원 무상지원 2,000만원 융자에서 6,000만원 무상지원, 4,000만원 융자로 지원한도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또 일반 주택을 한옥으로 신축할 경우 8,000만원을 무상 지원하고 2,000만원을 융자해주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한옥단지가 새롭게 조성되는데요. 서울시는 성북구 성북2재개발구역을 시범단지로 선정하고 공동주택 337가구와 함께 한옥 50가구를 짓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 발표는 작년(2008년) 12월초에 발표한 사항이므로 진행상황이 궁금하기만 한데요. 서울시민의 한사람으로써 서울시의 이같은 발표와 함께 시행여부 등이 궁금한 것은 한옥마을에 대한 보존과 관리를 선포하고 예산까지 책정한 마당에 할머니가 올라선 한옥은 너무도 부실해 보여 구체적인 시행에 있어서 적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게 아니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국인이라 할지라도 서울에서 한옥마을을 찾기란 쉽지않고 찾아가려는 사람도 드물지만 체부동의 한옥을 둘러보면서 맞딱뜨린 대추를 털고있는 할머니가 디디고 선 한옥의 지붕보다 처마끝에 매달려 있는 물받이가 언제쯤 제작되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물받이 속에는 먼지가 쌓여 흙이되고 그 위에 다시 이끼가 자라며 바위솔까지 자라는 모습은 '예술적' 시각으로 보면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시정의 모습으로 보면 허술하기 짝이없는 관리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민 다수가 이런 형편에 대해서 잘 알고자 하지도 않지만 '창의시정'을 내걸고 있는 서울시의 모습이라면 재개발에 몰두하는 모습과 같은 열정으로, 한옥마을 등 서울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동네에 대해 풍광 등을 잘 관리하여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언제라도 방문하면 고풍스럽고 정겨운 모습에 반하여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잘 가꾸어주었으면 바람 간절합니다.
요즘 서울의 각종 행사를 오가다 보면 '서울의 랜드마크'를 내세우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남대문이 소실되어 재복원 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서울의 랜드마크는 경복궁이 자리잡고 있는 고궁들 일 것이며 고궁을 둘러싼 서울의 옛 한옥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고 광화문 네거리의 육조거리 재현과 같은 문화사업은 서울시민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체성을 확보하는 대단한 사업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뻔지르한 문화사업 뒷편에서 이렇듯 홀대를 받고 있는 한옥마을 등은 1년에 한차례 방문할까 말까한 외국관광객 등 국내외에 홍보하는 서울시의 시정과 달리, 맨발로 살금살금 디녀야할 정도로 낡아있고 관리가 시급한 문제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대로 방치해 두었다간 머지않아 재개발 지역으로 선포되고 그나마 이곳에서 살고있던 사람들은 건설사 용역에 의해 모두 쫒겨나갈지도 모를 운명에 처하는 것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요?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작은 마당을 두고 대추나무의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란 쉽지않고, 그런 집을 찾기란 더더욱 쉽지않습니다.
아마도 곧 다가올 미래에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곳은 '내가 꿈꾸는 그곳' 블로그가 전부일지도 모르며, 그때 서울 종로구 체부동 금촌다리길 골목의 낡은 한옥 모습은 유일하게 사진으로만 남아 사람들로 부터 잊혀져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체부동의 골목길을 돌아서는 순간 체부동의 모습은 일제강점기에서 막 해방된 모습처럼 오래되어 보였고, 금방이라도 인정많은 어른들이 걸어나오실 것만 같은 정감있는 촬영세트장 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막다른 골목에서 할머니는 신발을 벗어 두고 가을볕 아래 대추를 털고 계셨고, 도르륵 굴러다니는 대추를 줏어 담으시던 할아버지의 정겨운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물받이통에 낀
이끼와 바위솔 너머
한옥지붕 위에서
할머니께서는
그저
맨발로 대추 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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