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분위기만 한국시리즈 '직행'하는 듯
-두산 빛바랜 고영민의 3점홈런-
2009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두산에 8-3으로 승리한 SK 선수들이 응원단을 향하여 인사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어제(11일) 잠실야구경기장에서 열린 '2009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전'은 SK가 2연패 뒤 2연승을 거두었습니다. 플레이오프 벼랑 끝에 몰렸던 SK는 8대3 스코어가 말하듯 4시간 30분이 넘는 대접전끝에 원정에서 완승을 거두며 2연승을 거둔 끝에 승부를 5차전까지 끌고 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저는 2회말 부터 이 경기를 지켜봤는데요. 솔직히 저는 플레이오프 4차전이 두산 베어스의 승리로 끝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며 전년도 챔프인 SK를 홈에서 넉다운 시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잠실야구장에 도착하자 마자 운동장 밖으로 들려오는 함성은 두산팬들의 함성이 아니라 SK를 응원하는 팬들이 지른 것인줄 운동장에 입장한 후에 알았습니다. 1.2회에 이미 3점이라는 큰 점수를 내주고 있었으므로 두산팬들의 표정들은 많이도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3차전 까지 치르는 동안 두 팀간 3점이라는 점수는 여간 커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두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초반 1회 2회 3점을 내 주기는 했지만, 3회말 무사 1.2루 상황에서 고영민이 글로버의 135km 짜리 가운데 높은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3점홈런으로 연결했고, 고영민의 홈런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만 3호 홈런이었습니다. 이때 잠실운동장의 분위기는 3루 SK 원정 응원단이 완전히 침묵을 지킬 정도로 분위기는 두산쪽으로 기우는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두산에 고영민이 있었다면 SK에는 박정권이라는 무시무시한 타자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올 시즌 팀내 최다 홈런(25개)을 터뜨리고 있는 선수였고, 3차전까지 매 경기 안타행진을 펼치는 등 11타수 5안타를 기록하고 있었죠. 특히 9월에만 8개의 홈런포를 날릴 만큼 좋은 타격감각을 가을잔치 까지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팽팽하게 이어지던 3대3 균형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2사 주자 1.2루 상황에서 임태훈의 3구째 공을 받아쳐 좌측 외야 담장을 직접 맞히는 2타점 2루타로 연결하며 SK는 5대3으로 다시 리드를 잡았습니다. 사실상 이것으로 두산은 4차전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죠. 두산의 김현수가 외야담장을 맞히는 박정권의 볼을 잡으려다 가벼운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부터였고 지난해 한국시리즈 챔피언 답게 SK의 저력은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었다면 잠실야구장을 찾은 두산의 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3회말 무사 1.2루 상황에서 고영민이 글로버의 가운데 높은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통쾌한 3점홈런으로 연결할 당시의 모습과 사뭇 달랐습니다. 박정권의 2루타에 이어 SK는 계속된 1,2루 찬스에서 김강민이 우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2타점 3루타를 뽑아 완전히 승부에 쐐기를 박았고, 숨막히던 접전은 7회초에 대량 4득점이 나오면서 승리는 완전히 SK쪽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는데요.
8회초에는 최정의 솔로홈런까지 터지자 잠실운동장을 가득 메운 두산팬들은 망연자실한 나머지 깊은 침묵으로 빠져들며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8회말과 9회말 공격을 남겨두고 있는데 말이죠. 그만큼 SK의 화력과 집중력이 커 보였던 것일까요?
그런 반면에 SK응원석은 3회말 고영민의 3점 짜리 홈런이 터지고 난 직후를 빼고 나면 거의 매회 응원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잠실운동장의 외야 관중석이 하나 둘씩 비어가더니 8회에 이르자 두산의 팬들은 외야석을 대부분을 비우고 있었고, 1루쪽 곳곳에는 사람들이 출구를 향하여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불펜이 약한 두산이 뚝심을 발휘할 건덕지가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죠.
누구든지 경기를 이기고 있을 때는 응원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이며 응원을 잘한다고 반드시 플레이오프전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법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적지에서 2승을 챙겨온 두산이나 두산의 팬들이 한 게임만 잡으면 플레이오프로 갈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있었던 것일까요? 이를 앙다문듯한 플레이오프 4차전 히어로인 박정권 등 SK의 집중력과 저돌적인 공격력앞에 두산의 선수들과 팬들 모두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사정이 이러함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두산의 김경문 감독의 표정이 밝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이제 플레이오프는 마지막 한 게임만 남겨두고 있는데요. 어제 경기에서 두산이 3대3으로 추격하며 접전을 벌일 때 뜨거웠던 열기와 함께 두번의 찬스를 살리지 못한 점과 투수 임태훈의 실투는 추격의지를 꺽기에 충분했습니다. 반대로 SK는 선발 글로버가 고영민에게 3점 홈런을 맞고 2이닝만에 강판되긴 했지만 이어 등판한 정우람과 윤길현, 이승호, 고효준이 나란히 두산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승리의 발판을 놓아 불펜이 약한 두산에 비해 막강 불펜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10번째 선수로 불리우는 SK응원단의 응원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질뻔한 SK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산의 응원단인 두산의 팬들은 응원 뚝심에서도 자리를 내 준 한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야구에 있어서 플레이오프나 한국시리즈는 우승을 일구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야구를 통한 축제로 승화시켜야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아닌가 여겨지는데,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부진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모습을 보면 씁쓸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5차전에서는 어느팀이 승리를 하던 야구인들의 아름다운 매너를 볼 수 있는 축제이기를 기대합니다. SK의 저력은 선수는 물론 감독과 구단과 서포터즈의 혼연일체감이 무엇보다 돋보입니다. 두산이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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