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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택시기사가 털어 놓은 '만화'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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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가 털어 놓은 '만화'같은 이야기


"...만화 많이 좋아했지요. 형이 중1 땐가? 두살 차인데 꼼짝 못했지요. 하도 많이 맞으니까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했다니까요. 하루라도 안맞으면 불안해서 못견뎠죠. 나중엔 요령이 생겨가지고 형 기분이 안좋아 보이면 아양을 먼저 살살 떨고...하루는 눈 쌓인 날에 만화책을 빌려 오라는 거라. 강원도 산골 15리 길을 고무신에 양말 다 젖어가며 산을 넘어 빌려 왔더니 "이 새끼 내가 본 거 빌려왔잖아" 하면서 얻어 터지며 다시 빌리러 갔죠." 이 이야기는 '박재동의 손바닥 그림들' 전展에 전시된 그림속의 이야기며 박재동화백이 택시를 타고 택시운전기사와 함께 나눈 이야기를 손바닥 그림에 담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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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택시를 탈 일이 별로 없지만 지하철과 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이 흔치않던 시절에는 툭하면 택시를 타던 시절의 이야기 같지만 최근의 이야기다. 택시를 타면 누가 먼저러 할 것도 없이 목적지를 묻거나 말하는데 그 이후로 좁은 택시속에서 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지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는데 주로 세상살아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를 테면 '요즘 손님 많아요?'라던지 '어딜 다녀오시나 봅니다' 등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목적지에 금새 도착한 것 같고 그새 정이들어 인사를 건네고 헤어진다. 박재동화백이 담은 택시안의 풍경은 직접 그로 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담았고 박화백님의 이야기에 의하면 "택시를 타고가는 동안 그의 인생사 전부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대개 택시기사와 나누는 이야기는 아무도 듣는이가 없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손님입장에서는 처음 뱉아낸 세상사는 이야기지만 하루종일 피곤하게 운전하는 택시기사의 입장에서는 여러분들이 타고 내리므로 택시속은 세상사는 이야기 창고와 다름없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기록한 내용들을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고 박화백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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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들이 모인다구요? 이현세씨도 나오나요?...그럼 박봉선씨는?...돌아가셨다구요?...그럴 나이가 아닌데...병으로...'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요즘도 봐요. 몇년전 까지...아, 그래서 그림이 달라졌구나...그 내용은 피터팬이라는 이름의 무술고수가 신의 경지까지 가서 미국하고 맞짱을 뜰 수 있는 함대를 이끌고 악의 무리와 싸우는 이야긴데 아, 그게 볼 때는 그렇게 신이 날 수 없어요. 한국인이 세계를 주름잡고. 왜 무협소설 보면 정의로운 주인공이 되는 기분 있잖아요. 그래서 약자가 당하는 걸 보고 그 기분으로 덤볐다가 엄청많이 맞았어요." 박화백의 손바닥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마치 내가 택시에 함께 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말문을 트고 보니 택시속은 작은 카페처럼 변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택시기사는  마음문을 열고 장황하게 그의 인생을 털어 놓는다.

"...어릴때는 시골서 온 데를 다니면서 개구리 잡고 손바닥만한 삼베 주봉 하나 입고 개울에서 붕어 미꾸라지 잡고. 지금도 꿈을 꾸면 그때가 그대로 나와요. 천국이 따로 없어요. 무릉도원이 거기예요. 14살 때 우리집에서 참외를 한 지게 지고 두시간 걸어 조치원 장에 가서 팔았죠. 얼마나 배가 고픈지, 돈이 없으니 사 먹을 수도 없고. 그때는 참외를 먹는 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죠. 5시쯤 돌아오면 그때 밥을 주더라구요. 엄마는 계몬데 여자아이를 하나 낳아 내가 업어 길렀죠. 내가 요강도 다 닦고. 중학교는 안보내 줬어요. 집안 사정으로 보면 갈 수 있는데 (계모가)안보내 주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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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길이 너무 갑갑해서 아랫동네 친구랑 의논했어요. 그 전에 아버지 한테 "아버지 저도 도시로 나가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게 해주십시요."했더니 "조금만 기다려라"하고 그만이었어요. 다시 물어 볼 엄두도 안냈죠. 아버지라면 그땐 그랬으니까요. 그래도 너무 갑갑해서 얼마후에 다시 말씀 드렸는데 그때도 기다리라는 말씀 뿐이었어요. 그래서 친구랑 대전으로 갔어요. 나는 그동안 10환까지를 안쓰고 모아돈 170환이 있어서 비상금으로 쓰고, 대전에 친구누나 집에 갔는데 친구누나 집이 자동차유리,시트 같은 거 갈아 끼우고 수리해 주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기술을 배우며 일을 했죠.

거기 있는 게 너무 좋은거예요. 밥을 양껏 먹을 수 있었거든요. 집에 있을 땐 계모 한테 좀 더 달라고 못하거든요. 밥 배불리 먹고 마음 편하니까 1달만에 키가 한뼘정도 커졌어요. 나도 깜짝 놀랐어요. 옷이 짧아져서 못입겠더라구요. 친구 누나가 옷을 사 줬어요. 근데 그동안 집에서는 난리가 났죠. 애가 없어졌으니까. 수소문하다가 내친구 집에서 물으니, 대전에 애 누나집에 같이 가서  돈벌고 있으니 걱정마라고 해서 안심했죠. 한달 지나니 추석이라 친구누나가 옷해 주면서 집에 인사가라고 해서 억지로 갔어요. 계모가 붙잡더라구요. 그래도 올라와서 한 6년정도 일하다가 군에 갔다와서 서울로 올라왔죠. 계모 이모가 하는 푸줏간에 갔는데 아버지가 푸줏간은 안된다고 해서 운전만 한다하고 일만 했지요. 근데 이 푸줏간이 돈이 되는거더라구요...고기집에 배달해 주니, 새벽 5시에 통금있는 12시 까지 배달했는데 젊음으로 버티다가 나중엔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2천만원 가지고 가게를 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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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화백님이 그려준 안사람과 나의 케리커쳐

그때 친구형 누나가 여자를 소개시켜 줘서 편지하여 사귀었는데 키가 작고 예뻐서 좋아하고 결혼 하기로 했죠. 처녀 엄마가 날 보러 왔을 때 먼저 동거하고 나중에 식올리자고 했더니 안된다고 내려갔어요. 마산서 처녀가 놀라서 올라왔어요. 사정 얘기를 하고 같이 몸을 섞으면 결혼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계속 오빠집에 간다고 피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그럼 우리는 아직 깨끗한 사이니까 괜찮으니 너는 네 길로 가라고 했죠. 그랬더니 생각하다가 그날은 오빠집에 안가더라구요.

그러구나서 마산으로 내려 보내면서 가서 기다려라 나중에 데릴러 가겟다고 했죠. 그래놓고 지냈는데 그때 가게일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되고 우리집에서도 키가 너무 작다하고 그저그려 편지를 점점 안하게 되어 소식이 끊어졌죠. 나는 나중에 가게를 음식점으로 바꾸고 그러면서 소개로 지금 마누라를 만나게 됐죠. 첫애를 낳았는데 1.5k라, 그걸 돈 없다고 병원에서 나가라 하더군요. 나가서 그걸 키웠어요. 마산 처녀는 내 키가 크다고 큰이불 맞춰놓고 결혼한다고 기다리다 내가 안오니가 약을 먹고 죽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그게 맘에 걸렸어요. 그러다 대구에 어떤 선생님하고 결혼해깨알,서 잘 산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박재동화백이 택시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알같이 적어둔 글씨를 번역(?)하는 동안 나는 손바닥 그림속의 작은 택시속에서 그의 이야기에 넋을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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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사가 마치 영화를 보는듯 필름이 다 돌아 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박재동 화백이 아끼는 작품중 하나였다. 이 정도의 이야기가 오가려면 택시비가 꽤 나왔을 법 하지만 택시기사가 들려준 만화속 무용담 같은 생생한 삶 속 이야기는 택시비가 아깝지 않을 듯 싶다. 이렇듯 하루에도 수많은 손님들이 타고 내리는 작은 공간속에서 삶에 눌린 서민들이 하소연을 늘어놓기라도 할 때 택시기사님의 인생무용담을 들으면 좌절감에 빠져있던 손님들이 희망을 되찾게 되는 건 아닐까? 택시기사님들은 신문고와 다름없어서 시사문제에 민감한데, 한때 마산처녀의 연정을 마음아파할 정도였던 택시기사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섭섭함도 털어놨다.

이명박정부가/서민들 잘 살게/해준다면서/거꾸로 가고 있어요.
서민 위하는 길은/간단해요/아파트값 잡아주고 /임대료 잡아주면/돼요

그게 제일 고통이죠.

근데 지금 강북/아파트 값이 벌써/8천만 9천만원이/올랐어요
언론에 나오는 거 보다/실제로는 말도 못해요

베스트 블로거기자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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