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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장맛비 피한 '비둘기' 뭐하고 지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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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피한 '비둘기' 뭐하고 지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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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2일) 오전, 밤새 내린 장맛비가 궁금하여 탄천의 광평교에 들러 금방이라도 범람할 듯 넘실대는 시꺼먼 황톳물을 카메라에 급히 담고 돌아서다가 다시금 발길을 돌렸다. 내 발길을 붙든 것은 다름이 아니라 비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광평교 교각위 작은 틈새에 옹기종기 모여 비를 피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비에 젖어있었고 몸을 잔뜩 웅크린채 거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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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녀석들과 처음 만났던 때는 작년 겨울이었다. 탄천의 제방을 따라 철새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녀석들은 무리를 지어 탄천 곳곳을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청둥오리로 착각하여 교각 한 쪽에 몸을 숨기며 녀석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카메라에 담으려 했지만 뷰파인드 속의 모습은 '닭둘기'로 천대받는 비둘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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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은 기분으로 녀석들을 멀리하고 오리들을 쫒아 다녔었다. 그리고 기억 저편에 있었는데, 녀석들은 탄천을 금방이라도 삼킬 것 같은 시꺼먼 황톳물을 곁눈으로 바라보며 마치 원망이라도 하는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녀석들은 여기서 뭘 하고 지내는 것일까? 폭우를 잠시 피하고 있는 것일까?...아니었다. 내 발길을 붙들어 둔 이유는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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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녀석들은 녹음이 우거진 탄천변을 날개짓하며 부지런히 먹거리를 찾아 나섰을 것이며, 사랑의 결실로 낳아둔 알을 품으며 천혜의 자연을 누리게 해 준 그들의 부모에게 감사하고 있을 시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가끔 이곳을 찾는 왜가리와 겁많은 오리 가족들을 깜짝깜짝 놀래키며 날개를 파닥였을 것이다. 탄천에는 피라미와 누치 등 먹을 거리가 풍부했고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들이 거의 매일 떠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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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탄천에서 태어나 멀리 남한산성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며 자란 녀석들이 주로 이동하는 곳은 탄천을 따라 학여울 까지 단숨에 날아가기도 했고, 가끔은 올림픽대로 아래로 몸을 낮추며 한강변으로 가 보는 일이 있었지만 녀석들은 이곳을 떠나본 적이 거의 없고 떠날 이유도 없었다. 탄천에서는 도심속에서 처럼 그들의 배설물 때문에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 그들 때문에 아무때나 보이는 족족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 따위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가끔 날개짓이 피곤하면 교각 한편에서 잠시 쉬며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아이들이나 아저씨 아줌마들을 구경하며 행복해 하며 하루를 마감하며 날개를 접곤 했다.


장맛비 오시기 전 광평교 아래 탄천의 모습




탄천이 범람 위기를 겪기 전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건너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서울과 경기지역 등의 집중호우로 탄천의 물이 얼마나 많이 불었는지 가늠이 된다.
(비둘기들이 앉아있는 교각 바로 아래서 촬영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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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전 부터 사정이 달랐다. 하늘에서 무슨 구멍이 뚫어지기라도 했는지 잠시 내리던 빗줄기 치고는 그 양이 너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굵기도 달랐다. 따라서 급히 떨어지는 빗방울은 금새 녀석들의 날개를 젖게 만들 뿐 아니라 늘 오후 간식을 먹으로 교각 아래 모래밭으로 나가는 일도 힘들게 됐다. 그나마 그 간식들은 오리들이 뭍으로 이동하며 모두 집어 먹고 있는 터 였고, 시꺼먼 황톳물은 금방 줄어들지도 않았다. 황톳물이 줄어들지 않고 장맛비가 계속되자 녀석들은 생배를 곯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 가락시장과 같은 먹거리가 풍부하게 넘치는 곳이 있긴 했지만 탄천에서 길들여진 먹거리만 못했고, 무엇보다 그곳은 너무 위험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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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광평교 아래에서 녀석들과 조우한 시간은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탄천변 제방도로에서 탄천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든 자전거 전용도로 위에서 녀석들의 비에 젖어 풀죽은 모습을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다 잠시 녀석들을 바라봤는데, 녀석들은 이를테면 '수재민'의 모습으로 비가 그칠 때 까지 마냥 저러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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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평교를 떠나지 못하는 녀석들...우리 인간들의 처지와 별 다를바 없는 그 모습이 내 발길을 붙들어 놓은 것이다. 다행히 장맛비는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있었지만, 녀석들은 장마가 끝날 때 까지 비에 젖은 몸을 잔뜩 웅크린채 탄천의 물만 바라보며 아이들이 잠수교 위로 부지런히 페달을 밟고 달리는 모습을 기다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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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블로거기자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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