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대통령 투신 도와준 경호원?
-부엉이 없는 '부엉이' 바위-
참 이상도하지?...
청와대에서 파견된 경호원이 '밀착경호'를 하지못한 이유가 뭘까?...왜 그랬을까?
노 전대통령이 투신 서거한 부엉이 바위를 바라보며 한숨짓는 조문객들
노 전대통령의 생가 곁에서 빈소가 만련되고 있을 즈음 노 전대통령이 투신 서거한 부엉이 바위를 바라보며 떠 올린 생각이었다. 당시 노 전대통령의 서거 원인이 투신자살로 보도되었을 때도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지만, 경찰의 사고원인 조사와 부산대병원의 서거 공식발표 때문에 사실로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믿기지 않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자동차 속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경호원의 경호실패를 떠 올렸고,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노 전대통령 시신을 따라 봉하마을로 들어서며 제일먼저 부엉이 바위 앞으로 가 봤던 것이다. 최초 언론과 방송에 보도된 서거원인은 '투신자살'이었고 노 전대통령이 투신 직전 곁에 있던 경호원에게 "담배 있느냐?"고 물었고 담배를 소지하지 않은 경호원은 "담배 가져올까요?"라고 했다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은 최초 경호원의 진술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노전대통령이 투신할 당시 투신을 제지할만한 위치에 없었으므로 투신을 도와준(?)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기 직전 부모님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정토원을 찾았던 정황이 드러났고, 유서를 작성한 다음 사저를 나와 부엉이 바위와 지척에 있는 정토원으로 이동할 당시 경호원은 노 전대통령과 동행하지 않은 사실이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 밝혀짐에 따라 대통령경호실에 대한 일반의 시각이 예사롭지 않고 노 전대통령이 서거한지 5일째 되는 오늘까지 노 전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싼 타살의혹들이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고 있다.
현재까지 부엉이 아래로 투신된 장소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아
추락당시 혈흔이 없는 점 등이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 전대통령은 투신직전 마음정리를 굳힌 후 정토원에 들러 부모님의 위패에 '하직인사'를 하며 부엉이 바위로 향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토원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노 전대통령이 사저를 나서 정토원에 먼저 들러 하직인사를 올리고 부엉이 바위를 향할 동안 경호원은 동행하지 않았고, 노 전대통령이 먼저 봉화산으로 오르고 경호원이 뒤따라 온 정황이 드러났는데, 경호원이 정토원 관계자에게 "(노 전대통령)계시냐?"고 물었던 점이나 정토원에서 경호원에게"VIP와 같이 오셨나?"고 물었던 점은 으례히 경호원과 동행하며 심부름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그렇게 물었을 것인데, 그 시간 이미 노 전대통령은 온 국민들을 슬픔에 빠지게 만든 부엉이 바위 위에서 30m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의혹 몇가지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경호원이 진술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제일 먼저 노 전대통령이 투신 서거할 당시 밀착경호를 한 것으로 진술을 했지만 언급한 바 경호원이 밀착하지 않은 정황이 목격자나 정토원 관계자에 의해 드러났는데 경호원이 단순히 책임회피를 위해 거짓말을 꾸미게 된 것일까? 하는 점이다. 둘째, 왜? 투신 서거 당일 아침에는 노 전대통령이 혼자 먼저 산을 올랐는가 하는 점이다. 경호원이 동행하지 못하고 꾸물거릴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다.
셋째, 노 전대통령의 행방을 찾아나선 경호원이 투신한 노 전대통령을 너무 빨리 발견했다는 점이다.투신 서거한 노전대통령의 행방도 몰라 정토원을 들러 행방을 물어봤던 경호원이 어떻게 노 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아래에 투신한 사실을 그렇게 빨리 찾아낼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초 봉화산으로 등산을 할 계획이었다면 경호원은 최소한 이동시간 등을 감안하여 봉화산 등산로 쪽을 먼저 뒤따라 갔을 것이고, 노 전대통령이 보이지 않음에 따라 다시금 뒤돌아와서 이곳 저곳을 다니며 노 전대통령을 찾았을 것이며 산길을 평지처럼 뛰어 다녀도 시간차가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자료들을 보면 사저에서 출발한 오전 6시 10분경 부터 최소한 20분에서 30분 사이에 행방도 모르던 경호원이 부엉이 바위 아래 투신한 노 전대통령을 너무 쉽게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전에 노 전대통령이 경호원과 약속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 시각이 오전 6시 40분 경이었다. 20~30분이 노 전대통령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간이었고 노 전대통령의 이동경로를 참작하면 투신 결심을 굳히고 거침없이 이동한 괘적이었는데 그동안 경호원은 뭘하고 있었던 것일까?
넷째, 경호원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근접하여 경호하는 경호원들은 무술 유단자들일 뿐만 아니라 체력이 보통사람들과 다르고 건장하며 만일의 사고가 났을 경우 응급처치법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위 세가지 의혹들이 최초 보도된 거짓진술과 일치한다고 해도 바위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머리가 바위에 부딪치고 온 몸이 골절상을 입은 사람을 곧바로 등에 업어서 경호원이 엠브란스가 아닌 일반승용차로 병원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그가 상당기간 이성적 판단을 중시해야 할 대통령 경호훈련을 받아 온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 힘든 점이다.
다섯째, 노 전대통령의 동태를 24시간(?) 파파라치 처럼 감시하던 MBC,SBS,KBS 등 방송사와 조중동 등 언론의 카메라에 노 전대통령의 산행 모습이 노출되지 않은 점이다. 노 전대통령이 유서(전문)에 밝히고 있는 사실과 같이 봉하마을 대통령 사저에서 살고 있는 현실을 '감옥과 같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명박정부와 검찰이 노 전대통령과 추종세력들에게 먹칠을 가하며 기소를 앞둔 시점에 봉화산 정상에 머물고 있던 언론과 방송사 카메라는 노 전대통령 사저에서 노 전대통령이나 권양숙여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아 보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건 당일 아침 노 전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고 봉화산으로 이동하는 장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는가? 그들은 이 장면을 녹화 내지 촬영한 후 특종 장면으로 거래를 시도한 파파라치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일까? 아니면 그 시간 용케도 방송과 언론사의 기자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인가? 이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노 전대통령이 투신 서거한 이튼날 아침 같은 시각 부엉이 바위로 가는 길목에 가 보니 5월 말 경 오전 6시 경의 봉하마을은 날이 훤히 밝았고 사방의 모습이 육안으로 충분히 식별되는 시각이었다. 노 전대통령이 유서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퇴임후 농촌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언론과 방송의 감시가 감옥살이를 한 경험을 잘 알고 있는 노 전대통령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꽤 긴시간 나는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앞을 서성이며 투신 서거 당일 경호원의 행적과 함께 노 전대통령의 행적을 머리속에 그려봤다. 여러 의혹들이 있었지만 나름의 결론은 청와대에서 파견한 경호원의 경호실패가 노 전대통령의 투신을 도와 준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므로 노 전대통령의 투신 서거 직후 맨 처음의 발표가 오히려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하지 않다면 만신창이가 된 노 전대통령을 그렇게 빨리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한편, 두개골과 척추와 팔다리 등에 중상을 입은 노 전대통령을 무식하게 함부로 등에 업고 병원으로 이송한 장면에서는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는 '타살의혹'을 부추기는 장면인데, 타살계획(?)에 의해 경호원이 지시에 따라(?) 부엉이 바위 위에 먼저 도착(?)하여 마지막 노 전대통령이 결심 실행(?)을 머뭇거릴 동안 '담배' 이야기가 흘러 나왔고 동행한 경호원이 부엉이 바위 아래로 떠 밀었다(?)는 결론이 성립된다. 이러한 추론에 입각하면 노 전대통령이 노트북(한글)에 작성한 유서는 정적들에 의한 결정적인 압력수단이 동원되어 자의반 타의반에 의해 작성되었을 것이며 작성배경에는 정치적 '빅딜'이 성사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확인이 어려운 이런 추론은 노 전대통령의 유서 중반을 잘 살펴보면 재고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돈 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는 부분이나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라고 말한 유서 끝부분은 '타살설'을 부인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굳이 누군가의 압력에 의해 유서를 작성했다면 '오래된 생각'까지 쓸 필요가 없고 불교관이 엿보이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라는 표현을 쓸 이유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타살설을 제기한 사람들은 새로운 의혹을 제기 함으로써 이명박정부 등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수단으로 작용할지 모르지만 노 전대통령의 거룩하고 참된 투신 서거를 왜곡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오히려 타살설을 제기하려면 이명박정권과 운명을 함께하는 뉴라이트 계열과 조중동 등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들에게 촛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봉하마을 곳곳에는 그러한 언론과 방송들의 폐해를 꼬집는 현수막 등이 걸려 있고 실제로 봉하마을을 출입하는 언론과 방송들은 눈치를 보며 취재를 하고 있는 형편이자 노 전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의 모습과 달리 노 전대통령에 대한 보도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두얼굴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전 후 우리가 살고있는 한반도 땅에는 부엉이가 서식하기 좋은 자연환경이 뛰어남에 따라 봉하마을 노 전대통령 사저 뒷산에 있는 부엉이 바위와 같은 부엉이들의 터전들이 많았지만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인한 자연훼손으로 부엉이 서식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영상과 같이 부엉이는 절벽 속에 둥지를 트고 새끼를 낳아 부지런히 먹이감을 사냥하고 키워 단 시일내에 성체로 키워내는 동물이다.
노 전대통령이 추모영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부모는 모름지기 자식을 잘 돌봐야 하며 지도자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국민들을 잘 섬겨야 한다"고 말한바와 같이 노 전대통령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정치지도자로 나선 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먹이감을 찾아나선 부엉이 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부엉이 바위 위로 향했던 것이며, 경호원의 시선을 유도하고 부엉이가 그랬던 것 처럼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게 아닐까?
봉하마을 노 전대통령 사저 곁 흙무덤에 꼿혀 있는 피겟들은
방송차량 속에 묻힌채 언론과 방송이 피하고 싶은 내용들이다.
따라서 어쩌면 우리와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북한의 핵개발 소식을 대서 특필하며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등 그동안 노 전대통령의 포괄적뇌물수수를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대던 언론과 방송의 타살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한반도는 불바다가 되고도 남는데 핵무기가 무슨 소용이며, 미국의 이익이 곧 우리의 이익이라는 정치지도자들의 그릇된 생각이 이 땅의 진정한 민족주의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노 전대통령이 남기고 간 민주의 후손들이 다시금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는 부엉이 둥지를 더 많이 트는 일 뿐이다. 노 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로 간 까닭이 아니겠는가?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oramirang
Sensitive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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