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 깨어난 천왕봉 '진달래' 지금부터!
아리랑 고개가 이런것일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참아내고 겨우 당도한 천왕봉에서 10분도 채 머무르지 못하고 하산을 재촉해야 했다. 먹구름이 천왕봉 하늘을 덮고 있었다.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해야 중산리로 갈 수 있고 그곳에는 나를 집으로 데려 갈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빗방울 몇이 후드득이며 가파른 천왕봉 아래 샘터에 떨어졌다.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발길을 돌리는데 천근만근 무거워진 발길을 붙든 것은 이제 막 봉오리를 내민 진달래무리였다. 이럴수가!...
나는 시공을 초월하는 알 수 없는 벽에 부딪치며 한순간 얼어붙어 있었다.
산은 참으로 공평하여 빈부귀천이 가리지 않고
지위고하를 묻지 않는다.
그뿐인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한편
동서고금을 통하여 그를 찾는 사람들을 늘 품안에 안아준다.
우리와 함께 반만년을 살아온 백두산과 한라산이 그랬고
내 발길을 붙들어 놓은 지리산 천왕봉이 그랬다.
산은...
오를 때나 내려갈 때도 힘들지 않은 법이 없어서
우리네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봉우리에 다다르면 끝난 듯 하지만
다시금 처음 시작한 곳으로 되돌려 보낸다.
내가 그랬다.
반백이 넘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디 편히 한번 쉰적이 몇번인가 되었던가?...
천왕봉에 오르면 세상 모든것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듯 싶어도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찰라에 불과하다.
나는 10분정도를 그곳에서 어영부영 촬영하느라 시간 뺏기고
추워진 날씨탓에 몸을 가누느라 시간을 다 빼앗겼다.
10 min/Lifetimes...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너머 온 아리랑 고개를 반추하며 행복해 했다.
나를 힘들게 한 천왕봉이 없었더라면
이제 막 봉오리를 내민 진달래가 귀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며,...
아리랑 고개와 같은 험난한 삶이 없었다면
결코!...
나는 지천에 널린 진달래 앞에서 서성거리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천왕봉이 나의 하산길을 재촉했듯이
내 가슴 깊은곳에 자리한 애뜻한 진달래도
그리 오랜시간 나를 붙들지 않았다.
그를 이 산중에 내버려 두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아리랑 고개가 우리들의 삶이었을까?
얼마나 서럽고 애닯았으면
그는 내 옷자락을 놓으며 봉오리마다 핏멍울이 들었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모습으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지난 5월 2일 오후 3시 20분 경, 지리산 천왕봉 바로 아래서
우리는 그렇게 다시는 못 볼 것 처럼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서울로 돌아온 지금, 나는 그를 다시금 들여다 보며 반추하고 있지만
그는 지금쯤 멍든 가슴을 열어보이며
하늘을 향하여 하소연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일 것이다.
반만년 동안 그의 곁을 지나친
우리네 이웃들의 지치고 멍든 가슴에 메아리치는 붉디 붉은 하소연을
다시금 털어 버리고 겨울을 기다릴 것인데,...
왜그리 세월은 또 더딘지
천왕봉 진달래의 아리랑도 우리와 너무 닮았다.
...
천왕봉天王峰 진달래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이련만 나이가 들면서 부터 느끼는 체감시간은 하산할 때 느낌과 별 다르지 않다. 누구나 산을 오를 때는 시간이 더디고 힘들게 느끼지만 막상 정상에 다다르면 하산을 해야하고 처음 출발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한 경로를 너무도 잘 그려놓은듯한 천왕봉의 아리랑을 담은 그림이 우리네 정서와 너무 닮은 진달래가 아닌가 싶다. 우리네 인생과 너무 흡사하다.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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