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그곳
무덤 때문에 '허리'를 잘리다니!
어제 오후, 서울 강남구 수서지역에 있는 광평대군 묘역 중심에서 많이 떨어진 S의료원 근처 야산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는 고양이를 찾아서 잠시 산속을 헤매는 동안 내 눈에 띈 참나무와 마주치게 됐다. 그림과 같이 나무의 밑둥지 주변에는 나무를 고사시키기 위해서 수액을 운반하는 나무껍질 층을 잘라낸 모습이다. 잘라낸 흔적을 자세히 보니 최근에 자른 모습이 아니라 최소한 1년은 돼 보였다.
이렇게 나무의 허리부분이 잘리운 나무는 모두 세 그루였는데 그중 한그루는 일찌감치 누군가에 의해서 허리를 잘리고 껍질이 벗겨진 채 죽어있었고 두그루의 나무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최소한 작년까지는 살아있었던지 나무에 잔가지가 많이도 달려있었다. 멀리서 외형상으로 보면 이 나무가 봄을 맞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곳은 민간인들이 거의 출입을 하지 못하는 곳이므로 허리가 잘린 나무가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외딴 산중이다.
양지바른 무덤앞에서 거리가 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이 나무는 아름드리 참나무로 족히 30년 이상은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왔을 터인데, 어느 봉분 때문에 허리가 잘렸을 이 나무는 워낙 커서 잎이 무성해질 쯤 무덤 주위에 그늘을 드리웠을 것이며 그늘이 드리운 자리에는 잔디가 잘 자라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무덤의 후손들이나 가족들이 망자의 무덤에 찾아오면서 잔디를 해롭게 할 수 있는 이 참나무를 잘라 버리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우선 나무 밑둥지 부분에 흠집을 내고 서서히 고사하게 만든 모양이다.
나는 이 나무를 바라보면서 산자와 죽은자를 다시금 떠 올렸다. 망자의 가족들은 망자가 뭍힌 이 무덤이 잘 가꾼 모습으로 잔디도 무성하길 바랬을 것이고 그렇게 하는 길이 망자에 대한 예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며 나 또한 기왕에 만든 봉분이라면 그렇게 해야 마땅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산사람의 입장에서 본 감상적인 생각일 뿐이고 추위도 더위도 느끼지 못하는 망자에 대한 배려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망자가 다시 부활한다거나 하는 불합리한 일은 없을 것이다.
정말 망자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계절과 오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오늘과 같이 봄비가 오시는 날이면 우산이라도 받치고 곁에 서 있어야 하지 않겠나?...어쩌면 망자의 영령은 무덤 앞 혼유석에 나와 계절에 따라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가을이면 아름다운 빛깔로 변하는 참나무를 친구삼아, 어쩌다 한 해 한번 찾아 올까말까한 살아있는 가족들이 만든 외로움을 달랬을지도 모르며 목신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인간들의 행위는 망자를 위한답시고 아름드리 참나무에게 해코지를 하고 만 것이다.
그림속 나비 일러스트가 있는 곳은 무덤이 있는 자리로 허리잘린 나무로 부터 먼 곳에 위치해 있다.
살아있는 후손이나 가족들이 망자에 대한 추모의 한 방편으로 만든 양지바른 무덤은 장묘문화에 지극한 우리들의 정서에 비추어 보면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무덤으로 부터 거리가 꽤 떨어지고 무덤의 잔디가 잘 자라고 있는 마당에 이렇듯 나무의 허리를 칼로 베어놓은 모습은 임종에 이른 환자에게 연결된 링거액을 차단한 모습과 다르지 않다. 굳이 그늘이 문제였다면 전지를 하여 볕을 더 많이 쬐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 방법은 너무도 귀찮고 힘든 일이었을까?...인간의 생명이 소중하면 자연속 만물들의 생명도 그와 다르지 않다.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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