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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까문명으로 가는 '하늘' 길
-상편-
남미여행에서 본 '나스까 지상화 Nazca Lines'는 나스까를 다녀온 후로도 두고 두고 의문으로 남아 수수께끼를 더하고 있었다.많은 사람들이 잉카문명 이전에 번성한 것으로 알려진 나스까문명에 대한 사실 정도야 알고 있지만, 메마른 대지위에 그려놓은 수백미터 정도 크기에서 수킬로미터에 달하는의 '지상화'는 페루의 동태평양 해안 일대에 수백 수천개에 달하고 있고 제작시기는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방법'으로 확인한 결과 AD 1C 부터 8C 까지 약 700년동안 그려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스까 공항에서 나스까라인으로 가기위해 활주로로 이동하는 세스나기
하루아침에 이 그림을 다 그린것은 아닌것이라는 이야긴데, 아직도 지상화를 그린 이유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어떤이는 이 그림을 외계인이 그렸을 것이라는 설도 있고 그림의 성격에 대해서도 딱히 이렇다할 설득력을 가질만한 근거를 내놓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나스까 평원에 그려놓은 나스까 지상화地上畵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가운데 나는 나스까문명 속 지상화의 존재에 대해서 내가 쓴 남미여행기에 상상을 불어넣고 있었던 것인데, 나스까지상화가 그려진지 2,000년이 지난 최근에는 이 지상화가 오늘날(미래) 출현한 '구글어스'를 예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출이 부족하여 엉망인 그림을 재 편집하며 나스까지상화가 그려져 있는 평원으로 다시 가 보고 있는 것이다.
나스까라인을 돌아 본 세스나기가 회항하여 착륙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나스까문명 속 사람들은 목화 등을 심으며 이 지역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이곳에서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을 텐데, 왜 황량한 평원위에 할일없이 거대한 지상화를 그리는 수고를 했을 것일까? 하는 점이다.
나스까공항에서 나스까라인으로 가기위해 대기하면서...
이 지역은 지상화가 보존된 이유와 같이 건조한 사막과 같은 지역이고 하늘에서 내려다 본 나스까 지역은 골짜기 한 모퉁이를 제외하고는 풀한포기 제대로 잘 살 수 없는 곳이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나스까라인으로 향하기 위해서 막 이륙직전에 있는 세스나기...보통 6인승에서 12인승 세스나기가 이 공항에 대기중이다.
나스까 사람들이 지상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삽과 꽹이와 같은 도구만 있으면 얼마든지 아무때나 그림을 그릴수가 있었겠지만 하늘에서 내려다 본 골짜기는 거대한 빙하가 한순간에 녹아 흐른것 같은 자국이 선명한데 그 흔적은 또한 거대한 홍수가 만든 사태의 흔적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넓게 펼쳐진 평원위에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면 형체를 알 수 없는 지상화를 그렸던 것이다.
NASA의 항공사진으로 본 '나스까라인'이 있는 위치...거대한 사태가 골짜기를 매몰시킨 모습이다.
나는 상상에 또 상상을 더하며 나스까지상화를 그린 나스까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거듭하며 나름의 결론을 내렸는데, 어느날 번성했던 나스까문명이 정말 하루 아침에 자연의 재앙으로 흙더미에 묻히고 말았다는 것이며, 용케도 살아남은 후손들이 기억을 더듬어 엄청난 흙더미에 묻힌 나스까문명을 기억해 내기 위한 조치로 짬짬히 700년동안, 꾸준히 이 평원 아래 묻혀있는 나스까 문명의 흔적을 기록했다.
나스까공항에 설치해 둔 나스까라인의 주요 형상(나스까지상화)들
그 결과 어떤 것들은 원숭이나 벌과 거미같은 동물의 형상으로 꽃과 같은 식물의 형상이나 그들과 함께했던 각종 생활상과 함께 도로등을 표시해 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스까 인근의 2,000년전 나스까인들의 두개골이 묻혀있는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유골,
이들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평생 길렀다.
대개 문명들은 수백년 혹은 수천동안의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들은 잉카문명 이전에 번성했던 이 문명을 기억해 냄으로써 새로운 문명을 일구어 낸 것은 물론 장차 언제인지도 모를 문명이 번성하면 흙더미 아래 묻혀진 나스까라인을 발견 할 현대 문명에 의해서 그들의 문명이 밝혀지길 학수고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 오른 것이다.
나스까공항 곁 한 호텔의 화려한 모습
이 글을 끄적이는 동안 나스까라인의 자료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토기가 이곳에서 발굴된 사진을 접하게 됐는데, 이 사진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어간 사람들의 묘지에서 조차 발굴되지 않는 희귀한 자료였다.
나스까문명의 출토물이 화려하다.
그리하여 구글어스를 작동시키고 나스까라인이 위치해 있는 나스까로 이동을 해 봤더니 그곳에는 나와 안사람이 나스까라인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세스나 비행기를 기다린 장소가 또렷이 나타나 있었고, 막 이륙하려는 비행기와 함께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가 함께 구글어스에 촬영된 채 박재되어 마치 나스까 지상화의 한 모습을 보는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스까라인으로 가는 하늘 길에서 본 나스까시 인근의 모습
아마 이런 모습도 어느날 천재지변으로 잊혀졌다가 발견되면 나스까라인과 같은 수수께끼로 후대는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구글어스로 확인한 나스까공항의 모습이다. 마치 나스까라인을 보는듯...
나스까라인으로 비행직전 기장과 함께...
나는 재빨리 나스까라인의 지상화가 있는 곳으로 구글어스를 돌려보고 고도를 맞추며 나스까문명이 번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나스까라인으로 초점을 맞췄다. 다시본 나스까라인은 여전히 거대한 사태로 보이는 흔적 위에 알 수 없는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NASA가 촬영해 둔 이미지를 비교해 보며 나스까인들이 염원(?)하고 예언한 흔적들이 도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글어스로 확힌한 나스까라인, 우측의 작은 원내가 나스까공항이 있는 곳이다.
나스까공항에서 세스나기를 타고 약 45분간 나스까 하늘에서 본 바로 그 그림이었고 나스까인들이 후세에 알리기 위한 한 방편의 나스까 지상화는 그렇게 세상에 알여졌던 게 아니었을까? 나스까라인의 존재는 1939년 영국의 롱아이랜드 대학 교수인 폴스코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고 페루 해안지방의 관개시설을 연구하기 위해서 나스까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메사에 노출된 그림이 단순한 자국이 아닌것을 직감하고 비행기를 타고 확인한 결과 지상화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나스까라인으로 이동중 바라 본 팬아메리카 하이웨이 모습
그러나 그의 나스까라인 발굴 이전에 '팬아메리카 하이웨이'가 건설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자칫 나스까문명의 존재를 알리는 지상화가 훼손될 뻔 했지만 '마리아 라이헤' 여사에 의해서 이 그림의 판독은 나중에 해도 늦지않다고 여겨 세상에 호소하고 팬아메리카 하이웨이가 나스까라인을 비켜 갈 수 있도록 조치한 결과 오늘날과 같은 나스까라인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골짜기가 나스까라인이 그려진 평원이다. 거대한 토사가 흘러내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세월은 2,000년이나 되는 시간을 보낸 후였고, 비행기라는 문명의 이기가 발명되면서 나스까라인이라는 공간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인공위성이나 로켓 등이 발명되기 이전에 나스까인들은 그들의 문명이 매몰되어 재건하기 힘든것과 같이 새로운 문명이 등장하기 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수천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자신들이 죽은 후에라도 그들의 선조들이 이룩해 놓았던 문명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나는 나스까인들의 예견에 따라서 구글어스와 나스까 하늘에서 바라본 그들의 그림을 보며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하편에서는 제가 촬영한 나스까라인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림의 원본 사이즈는 이곳 나스까에 있습니다.
Boramirang
남미여행에서 본 '나스까 지상화 Nazca Lines'는 나스까를 다녀온 후로도 두고 두고 의문으로 남아 수수께끼를 더하고 있었다.많은 사람들이 잉카문명 이전에 번성한 것으로 알려진 나스까문명에 대한 사실 정도야 알고 있지만, 메마른 대지위에 그려놓은 수백미터 정도 크기에서 수킬로미터에 달하는의 '지상화'는 페루의 동태평양 해안 일대에 수백 수천개에 달하고 있고 제작시기는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방법'으로 확인한 결과 AD 1C 부터 8C 까지 약 700년동안 그려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스까 공항에서 나스까라인으로 가기위해 활주로로 이동하는 세스나기
하루아침에 이 그림을 다 그린것은 아닌것이라는 이야긴데, 아직도 지상화를 그린 이유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어떤이는 이 그림을 외계인이 그렸을 것이라는 설도 있고 그림의 성격에 대해서도 딱히 이렇다할 설득력을 가질만한 근거를 내놓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나스까 평원에 그려놓은 나스까 지상화地上畵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가운데 나는 나스까문명 속 지상화의 존재에 대해서 내가 쓴 남미여행기에 상상을 불어넣고 있었던 것인데, 나스까지상화가 그려진지 2,000년이 지난 최근에는 이 지상화가 오늘날(미래) 출현한 '구글어스'를 예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출이 부족하여 엉망인 그림을 재 편집하며 나스까지상화가 그려져 있는 평원으로 다시 가 보고 있는 것이다.
나스까라인을 돌아 본 세스나기가 회항하여 착륙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나스까문명 속 사람들은 목화 등을 심으며 이 지역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이곳에서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을 텐데, 왜 황량한 평원위에 할일없이 거대한 지상화를 그리는 수고를 했을 것일까? 하는 점이다.
나스까공항에서 나스까라인으로 가기위해 대기하면서...
이 지역은 지상화가 보존된 이유와 같이 건조한 사막과 같은 지역이고 하늘에서 내려다 본 나스까 지역은 골짜기 한 모퉁이를 제외하고는 풀한포기 제대로 잘 살 수 없는 곳이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나스까라인으로 향하기 위해서 막 이륙직전에 있는 세스나기...보통 6인승에서 12인승 세스나기가 이 공항에 대기중이다.
나스까 사람들이 지상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삽과 꽹이와 같은 도구만 있으면 얼마든지 아무때나 그림을 그릴수가 있었겠지만 하늘에서 내려다 본 골짜기는 거대한 빙하가 한순간에 녹아 흐른것 같은 자국이 선명한데 그 흔적은 또한 거대한 홍수가 만든 사태의 흔적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넓게 펼쳐진 평원위에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면 형체를 알 수 없는 지상화를 그렸던 것이다.
NASA의 항공사진으로 본 '나스까라인'이 있는 위치...거대한 사태가 골짜기를 매몰시킨 모습이다.
나는 상상에 또 상상을 더하며 나스까지상화를 그린 나스까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거듭하며 나름의 결론을 내렸는데, 어느날 번성했던 나스까문명이 정말 하루 아침에 자연의 재앙으로 흙더미에 묻히고 말았다는 것이며, 용케도 살아남은 후손들이 기억을 더듬어 엄청난 흙더미에 묻힌 나스까문명을 기억해 내기 위한 조치로 짬짬히 700년동안, 꾸준히 이 평원 아래 묻혀있는 나스까 문명의 흔적을 기록했다.
나스까공항에 설치해 둔 나스까라인의 주요 형상(나스까지상화)들
그 결과 어떤 것들은 원숭이나 벌과 거미같은 동물의 형상으로 꽃과 같은 식물의 형상이나 그들과 함께했던 각종 생활상과 함께 도로등을 표시해 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스까 인근의 2,000년전 나스까인들의 두개골이 묻혀있는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유골,
이들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평생 길렀다.
대개 문명들은 수백년 혹은 수천동안의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들은 잉카문명 이전에 번성했던 이 문명을 기억해 냄으로써 새로운 문명을 일구어 낸 것은 물론 장차 언제인지도 모를 문명이 번성하면 흙더미 아래 묻혀진 나스까라인을 발견 할 현대 문명에 의해서 그들의 문명이 밝혀지길 학수고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 오른 것이다.
나스까공항 곁 한 호텔의 화려한 모습
이 글을 끄적이는 동안 나스까라인의 자료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토기가 이곳에서 발굴된 사진을 접하게 됐는데, 이 사진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어간 사람들의 묘지에서 조차 발굴되지 않는 희귀한 자료였다.
나스까문명의 출토물이 화려하다.
그리하여 구글어스를 작동시키고 나스까라인이 위치해 있는 나스까로 이동을 해 봤더니 그곳에는 나와 안사람이 나스까라인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세스나 비행기를 기다린 장소가 또렷이 나타나 있었고, 막 이륙하려는 비행기와 함께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가 함께 구글어스에 촬영된 채 박재되어 마치 나스까 지상화의 한 모습을 보는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스까라인으로 가는 하늘 길에서 본 나스까시 인근의 모습
아마 이런 모습도 어느날 천재지변으로 잊혀졌다가 발견되면 나스까라인과 같은 수수께끼로 후대는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구글어스로 확인한 나스까공항의 모습이다. 마치 나스까라인을 보는듯...
나스까라인으로 비행직전 기장과 함께...
나는 재빨리 나스까라인의 지상화가 있는 곳으로 구글어스를 돌려보고 고도를 맞추며 나스까문명이 번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나스까라인으로 초점을 맞췄다. 다시본 나스까라인은 여전히 거대한 사태로 보이는 흔적 위에 알 수 없는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NASA가 촬영해 둔 이미지를 비교해 보며 나스까인들이 염원(?)하고 예언한 흔적들이 도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글어스로 확힌한 나스까라인, 우측의 작은 원내가 나스까공항이 있는 곳이다.
나스까공항에서 세스나기를 타고 약 45분간 나스까 하늘에서 본 바로 그 그림이었고 나스까인들이 후세에 알리기 위한 한 방편의 나스까 지상화는 그렇게 세상에 알여졌던 게 아니었을까? 나스까라인의 존재는 1939년 영국의 롱아이랜드 대학 교수인 폴스코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고 페루 해안지방의 관개시설을 연구하기 위해서 나스까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메사에 노출된 그림이 단순한 자국이 아닌것을 직감하고 비행기를 타고 확인한 결과 지상화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나스까라인으로 이동중 바라 본 팬아메리카 하이웨이 모습
그러나 그의 나스까라인 발굴 이전에 '팬아메리카 하이웨이'가 건설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자칫 나스까문명의 존재를 알리는 지상화가 훼손될 뻔 했지만 '마리아 라이헤' 여사에 의해서 이 그림의 판독은 나중에 해도 늦지않다고 여겨 세상에 호소하고 팬아메리카 하이웨이가 나스까라인을 비켜 갈 수 있도록 조치한 결과 오늘날과 같은 나스까라인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골짜기가 나스까라인이 그려진 평원이다. 거대한 토사가 흘러내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세월은 2,000년이나 되는 시간을 보낸 후였고, 비행기라는 문명의 이기가 발명되면서 나스까라인이라는 공간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인공위성이나 로켓 등이 발명되기 이전에 나스까인들은 그들의 문명이 매몰되어 재건하기 힘든것과 같이 새로운 문명이 등장하기 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수천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자신들이 죽은 후에라도 그들의 선조들이 이룩해 놓았던 문명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나는 나스까인들의 예견에 따라서 구글어스와 나스까 하늘에서 바라본 그들의 그림을 보며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하편에서는 제가 촬영한 나스까라인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림의 원본 사이즈는 이곳 나스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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