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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자락의 바릴로체에 있는 나우엘 우아피 호수를 떠나 장도에 오르며 나는 처음보는 낯선 풍경 앞에서 마냥 좋아하고 신기해 하면서도, 앞으로 다가 올 미래에 대해서 일말의 두려움을 늘 안고 있었다. 낮 낯선 땅에서 불귀의 객이 될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들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내 시야 곁을 지나는 풍경들에 심취하는 동안 어느새 내가 당도해야 할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때로는 내 곁을 스쳐 지나는 풍경들에 압도되어 당장이라도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목적한 곳이 아니라서 유혹이 있을지라도 차마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버스가 바릴로체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안데스로 부터 점점 멀어지는 동안 파타고니아 남쪽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나는 남극과 가까운 극지의 모습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그곳은 오래전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고 또한 우리가 잊고사는 낯선 풍경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 모습을 신앙의 한 모습과 동일시 하고 있었다.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곳은 모진 세파속에서 늘 만나는 일그러진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라 모질고 모진 세파 속에서도 그들의 원형을 간직한 모습들이었고, 그들이 꿈꾸는 곳은 자연에 순응하는 보잘것 없는 삶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보잘것 없음이 나를 매료시켰던 것이며 여행의 목적지가 된 것이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멀어진 안데스가 점점 더 그리워짐은 또 무슨 연유일까? 나는 안데스에서 보낸 시간들이 충실하지 못했음을 또 발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데스의 현재에서 발견하지 못한 세상의 가치들에 대해서 관점을 흐리고 있었고 살아있는 동안 다시는 가 볼 수도 없는 스치며 지난 것들에 대한 작지만 아쉬운 애착들이 차창을 또한 스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매순간이 최선이고 최고의 기쁨이었던 것 같은데 되돌아 보면 나는 그 기쁨 조차 세상과 타협한 작은 산물임을 깨닫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세상과 타협하는 게 나쁜일일까? 어차피 우리는 세상속에 살면서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느낀 세상의 기쁨들이란, 내 육신의 오감을 충족해 준 것들이었을 뿐 장차 내가 맞이할 기쁨들이 아니었고 낯선길을 찾아나선 이유하고는 별개의 것들이었다. 내 손에 든 것은 작은 지도와 목적지의 정보가 수록된 가이드북 하나와 낯선땅에서 얼마간 묵을 옷가지와 목을 축여줄 음료수와 잠을 재워줄 돈 몇푼이 고작이었다. 버스가 안데스로 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안데스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고 내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앞에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 처음 낯설기만 하던 길들이 어느새 나와 친숙해 졌고 쓸데없이 두려움으로 떨었던 낯선길은 늘 내가 마주하던 친숙한 길 처럼 변해갔다. 이틀을 꼬박 2층버스 속 앞자리에서 낯선풍경을 내려다 보거나 혹은 스치며 지나는 풍경을 살폈다. 차가운 바람이 버스앞 아주 작은 틈새로 조금씩 베어 나와 몸이 찰 때면 침낭을 펴서 무릎에 두르고 이역만리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돌아갈 땅도 떠 올렸다. 그곳에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익숙한 풍경에 길들여져서 낯선길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이곳에서 먼 길을 나선 사람들도 낯선길을 여전히 두려워 하고 있었다. 그곳은 나를 낳고 키워준 산하가 있는 곳이며 그리운 내 혈육이 살고 있는 내 고향이었다. 언제 돌아 갈 것인가?... 그곳은 나의 육신과 혼백을 잉태한 곳이고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와 선조들이 살던 곳이다. 그리고 또 한 곳!... 내 영혼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한 이 땅을 떠나 낮설고 두려운 길을 떠나야 할 것인데 그때도 여전히 내 손아귀와 봇짐속에 낯선길을 떠날 때 처럼 행선지와 목적지가 각인되어 있을까? 내가 떠난 여행의 목적을 충족하고 나면 돌아갈 곳이 나의 육신과 혼백을 잉태한 곳이고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와 선조들이 살던 땅인데 삶의 종착역이 될 인생의 마지막 길은 또 어디메뇨?... 여행을 떠나는 길 위에서 늘 되묻는 말이다. 2008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데, 나는 나를 반겨줄 리 없는 낮선길을 떠날 때 본 처음보는 낯선 길을 펼쳐놓고 있다. 그때 나는 적지않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애써 그 표정을 감추었다. 하지만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니 그 또한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었다.
'새해'라고 이름표를 달고 나온 2009년도 경험칙에 의하면 지금껏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살아온 시간들과 별다를 바 없고 낮설기만 할 뿐 두려운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사흘후면 낯선 길을 따라 다시 먼 여행길에 오른다. 그때 나를 지켜줄 굳건하게 지켜줄 가치는 방랑이 아니라 나를 되찾는 태초로 향한 여행이며 새롭게 '내가 꿈꾸는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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