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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내가 만난 이 시대의 '예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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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난 이 시대의 '예수'는 누구인가?

2008' 성탄특집, 노숙인 인문학강좌 '졸업식'에 가다!  -제3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거행된 노숙인들의 '인문학 코스' 졸업식을 지켜 보면서
나는 적지않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제1편에 쓴 어느 '노숙인' 이 가르쳐 준 인문학 강좌!의 서두에
나 스스로 노숙인이나 노숙자에 대한 개념이 흔들리고 있었고 정리되지 못했다.

그건 각각의 개념들이 가리키는 뜻을 모르는 바가 아니라
대체로 우리사회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도시영세민이나 극빈자들이나 보호시설속 사람들이나
거처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을 가리켜 노숙인 또는 노숙인이라고 불렀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니 정말 우리사회에 넘쳐나는 사람들이 이들 노숙자나 노숙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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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바삐 돌아가는 우리사회에서 주눅이 들대로 들어서
숨도 제대로 못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처지를 숨겨가며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이런 사정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 복지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일 것인데,
그동안 우리사회의 복지정책은 지적한바 빵이나 돈 몇푼을 쥐어주며 생색을 낸 게 전부라 생각하니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클레멘트 코스'로 불리웠던 '휴먼 서울 시민 희망의 인문학'에 관심을 둔것이며
그 성과는 괄목할만 했다. 제 2편에 쓴 노숙인들 살 길 마련한 '희망'으로 가는 교실!
'휴먼 서울 시민 희망의 인문학'이 적용된 배경이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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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2008년도에 노숙인들과 영세민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서 시행한 인문학 코스는
문화의 힘을 이용한 '희망찾기'였고, 인문학 코스를 졸업하는 209명의 우리 이웃들은 너무도 행복해 했다.

그리하여 인문학코스에 참여한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내 뱉는 성취감은
자신이 공부한 인문학코스를 다른분들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요즘은 경제사정이 나빠도 여간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경제사정이 좋았을 때도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노숙인이나 노숙자들이나 영세민들이 존재했다.

 경제사정이 나쁜 지금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런분들이 늘어가는 추세인데
그렇다면 그들 모두에게 희망으로 가는 '인문학코스'를 밟게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할수만 있다면 우리사회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까?...아니었다.
서울시가 제시한 인문학코스는 '정신적 지원 차원의 인문학강좌'일 뿐이었다.

또한 이런 정책적 배려는 서울시민의 극히 일부에게 적용되는 것이었고
수도권이나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복지정책의 일환은 아니었다.
특히 이런 정책을 다루어야 할 정부는 고사하고
정치인들 스스로도 빈부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빵을 나누는데만 몰두하고 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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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정신적으로만 풍요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자칫 '자족하는 방법'만 배운 신앙과 같은 훈련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오늘날 정치권은 국민들의 행복지수 따위에는 관심조차도 보이지 않은 채
빵 나누기와 이념과 체제논란 같은 힘겨루기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도시영세민이나 노숙인이나 노숙자들을 무한 방치하고 있는 책임을 동시에 지고있다.

그들 모두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인문학코스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런 사람들이 '소외된 이웃들을 위하겠노라'고 말할 때 그들을 믿는 사람이 또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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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장에서 인문학코스를 수료한 노숙인들은 내 옆에서
 그들의 지난 6개월의 자취가 담긴 짧은 영상이 방영되는 동안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그들을 가두고 있던 사회적냉대와 소외감을 떨치게 해 준 교수님들께 대한 감사와 더불어
주경야독으로 힘겹게 인문학코스를 통과한 순간들이 오버랩 되면서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가 제공한 휴먼 인문학코스는 수강생 대부분에게 큰 만족을 준 것과 같이
또다른 동기부여를 통해서 그들이 우리사회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게 하는 한편,
배를 불릴 수 있는 빵도 더불어 제공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며
이 일에 정치권이나 정부나 국가가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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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탄 전야다.
예수가 나사렛의 한 마굿간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태어날 당시만 해도
 그를 알아본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던 마리아 였고 동방박사가 전부였다.

그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등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동안
초라한 행색의 '하느님의 아들'을 이용할 정치적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그의 제자들이었다.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그를 왕으로 추대하면 그들을 노략질하던 카이저를 정복할 수 있었을 것 같았지만
예수는 그들의 소원을 뒤로하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오늘날 우리네 카이저는 예수를 내세워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핍박하고 있고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이 예수를 흉내내며 카이저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이 모두가 '예수아이콘'을 이용한 한낱 '예수마케팅'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것은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과  행동들이 그러하지 않았다면
머리 둘 곳도 없었던 예수와 같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우리사회 곳곳에 널려있지 않았을 것이며
이런점에 대해서 예수아이콘을 내세우고 있는 거대집단의 교회들도 더불어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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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늘의 뜻을 땅에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하며
'땅끝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하는데,
당장 내 이웃에 있는 가난한 이웃들을 방치하는 게 하늘의 뜻이며 하느님의 사명인가?

내가 인문학코스를 수료하는 졸업생들을 만나며 행복해 했고 가슴 뭉클했으며
 가슴 한편이 따뜻해 옴을 느꼈던 이유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의 형상을 만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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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먼 하늘에 있지도 않았고 교회에도 없었다.
지금으로 부터 약 2,000년 전에 예수는 도시빈민으로 살았고
지금도 예수가 살고있는 곳은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어두운 사회 한구석이었다.

그곳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우리들의 어두운 자화상이자
우리모두가 거두어야 할 가난한 우리 이웃들이었다.

그들을 휴먼 인문학 코스로 인도해 준 경희대학교와 서울시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힘든 과정을 통과한 209명의 '인간 승리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 전해드린다.

메리 크리스마스!!~ ^^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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