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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노숙인들 살 길 마련한 '희망'으로 가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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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숙인들 살 길 마련한 '희망'으로 가는 교실!
2008' 성탄특집, 노숙인 인문학강좌 '졸업식'에 가다!  -제2편-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행복해 하는 일이 몇번이나 얼마나 있을까?
나는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앞에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슴 뭉클해 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숙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버림받았던 사람들이고
그들 스스로도 살아갈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보통사람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쉽게 꿈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똑같이 주어진 삶을 악착같이 살아보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그들의 바둥거림에도 불구하고 냉담했고
그들을 가리켜 '노숙인'이라는 이름으로 폄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편에서 인문학강좌를 끝으로 졸업하는 한분에게 노숙인이나 노숙자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그는 담담하게 "...없이 사는 사람을 함부로 칭하는 말..."이라고 정의했다.
말 한마디 조차 그들에게는 촌철살인의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비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그들을 가리켜 '도시영세민' 또는 '극빈자'라고 불러야 옳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지 않다면 그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우리사회에 넘쳐는데,

 오히려 빈부차이로 인한 양극화로 인한 이들 때문에
우리나라는 '노숙인의 나라'라고 불러야 옳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기분나쁜 호칭임에 틀림없다.
서울시는 이분들을 가리켜 저소득층 또는 노숙인이라 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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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코스를 수료한 졸업생들이 평화의 전당에 들어서려 하고 있다.

평화의 전당 앞에서 기뻐하며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는 이들을 뒤로하고
평화의 전당 안으로 발길을 옮기자 그곳에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우글 거렸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며 점점 더 그들이 행복해 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들은 모두 209명이었고 암울한 현실을 딛고 희망을 되찾은 사람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우선 '희망으로 가는 교실'을 운영한
'휴먼 서울시민 인문학강좌' 배경에 대한 자료를 훑어 보았다.
서울시의 크고 작은 행사들 모두는 서울시장의 시정철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므로
서울시장(오세훈)의 홈피를 방문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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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민과 노숙인들의 졸업식이 거행되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 앞에서 졸업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기뻐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가운데
우리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기틀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이 글을 읽으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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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소원이었던 가운과 사각모를 쓴 졸업생들...

[오세훈] 노숙자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다.

# 어느 여죄수와의 대화

"가난한 사람들은 왜 계속 가난하게 살까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찌보면 판에 박힌듯 한 질문에 살인죄로 8년째 복역중인 여죄수가 답했다.

"잘 사는 사람들이 누리는 정신적인 삶을 우리는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죠."

"정신적인 삶이요? 당신이 얘기하는 정신적인 삶이란 무엇이죠?"

"그거 왜 있잖아요, 음악회나 박물관, 미술전람회 같은거요. 강연회도 그렇고요."

이것은 내가 나눈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책에서 읽은 대화다. 그런데 이를 접한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충격으로 한동안 멍했다.
문답의 주인공은 '빈스워커'라는 여죄수와 '얼쇼리스 Earl Shorris'라는 미국 문필가였다.

얼쇼리스는 지금으로 부터 10년전, 미국전역을 돌면서 극빈자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가난에 대한 해법을 주제로 책을 쓰기 위해서 였다. 그러다 만난 이가 빈스워커스 였다.

어려운 경제형편 때문에 범죄에 물든 죄수들을 만나러 교도소에 들렀을 때,
그녀는 20대 초반에 살인죄를 저지른 여죄수로 복역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가난의 이유'로 '정신적인 삶'을 꼽았던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정신적인 삶은 철학이나 문학, 역사,...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문학이었다.그녀가 덧붙였다는 이야기는 더욱 잡아끌었다.

"우리 아이들을 음악회나 박물관에 데려가 주세요. 미술전람회도 데려가 주세요.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가난의 대를 끊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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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인문학 코스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 모습이다.

# 용답동 노숙자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책을 덮으면서, 취임초에 찾아갔던  용답동의 노숙자 쉼터가 떠 올랐다.
혹시라도 쉼터에서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쓸까봐 당일 새벽에 방문 소식을 통보하도록 하고,
일종의 불시방문을 한 터였다.

노숙자들이 평소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날 아침메뉴는 설렁탕. 식사의 질은 나쁘지 않았다.
노숙자들과 함께 아침을 들며 말을 건네 보았다.

"제일 힘든 게 뭐죠?"

"스스로를 이길 수 없을 때죠."

"무슨 말씀인가요?"

"몇 달 잘 참고 일상으로 돌아오던 사람들이 술 한 잔 생각을 이기지 못해서
다시 거리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하거든요. 그런 때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요."

대화를 이어갈수록 설렁탕에 말아 넣은 밥이 영 넘어가지 않았다.
그의 무기력한 눈빛을 마주하고 나니 작은 한숨만이 가가스로 삼켜질 뿐이었다.

그 노숙자 쉼터에는 100여명 정도가 기거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자활근로사업이나 공사장 노동들을 하면서
노숙을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하는 분들도 있었다.

반면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포자기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경우 대체로 알코롤에 찌들어 있었는데
 그런 그들의 눈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자존감도 읽을 수 없었다. 참으로 착잡했다.
그들의 의욕없는 표정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집무실에 돌아와서 노숙인 생계보조 사업의 활성화 등을 실무부서에 지시한 후에도
고민은 계속됐다.

'일자리를 만들고 생계를 보조해 주는 방식만으로 그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을까?'
'생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그들이 해체된 가정을 되찾고 새 삶을 계획하는 것이 가능할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빛에 공통적으로 배어있는 무기력을
먼저 극복 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혜성 복지대책 만으로는 당장의 생계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삶의 무력감 까지는 거둬 내 줄 수는 없었다.

물고기를 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고 하지 않았던가.
노숙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희망과 자존감을 되찾아 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다.

책에서 빈스워커와 얼쇼리스의 대화를 읽던 그 시점까지,
그 구체적인 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아 내내 갈증이 나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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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다.

여죄수와의 대화를 통해 영감을 얻은 얼쇼리스는
가난 때문에 교육다운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학교육 수준의 문화와 예술, 역사와 철학과 같은 교양, 즉 인문학을 가르쳐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클레멘트 코스'라는 이름의 강좌를 시작한다.
저명한 교수와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빙해서
우리로 치면 노숙인이나 쪽방 촌 주민들에게 강의를 시작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 강좌를 수강한 빈민 중 상당수가 대학에 진학했고, 새 일을 시작했으며, 가족과 재결합을 했다.
이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 강좌를 모델로 한 프로그램들이 생겨났고
모두 상당한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한 경험담이 담겨있는 책을 읽던 주말 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합리적이고 성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문학적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언어구사력이 떨어지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는 사고력도 떨어진다. 삶에 대한 판단력도 부족하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해 보고 싶어도 가난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 보니,
가난의 악순화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한 나의 생각을 딱 떨어지게 반영해서 구현해 낸 것이 바로 클레멘트코스 였던 것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 마자 검토를 지시했다.

"진정한 의미의 노숙인 자활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겁니다.
우리 서울의 상황에 맞도록 이러한 취지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세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휴먼 서울 시민 희망의 인문학' 이다.
실무적인 준비를 거쳐서 경희대학교에 운영을 맡겨 2008년 4월 부터 첫 수업에 들어갔다.


 
노숙인들 살 길 마련한
'희망'으로 가는 교실!
 


첫입학생들은 노숙인과 자활근로자, 저소득 주민등 모두 300여명.
이들은 철학과 글쓰기,문학,역사,예술 등을 배우고 문화유적지를 탐방하고
작가와 예술인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각 분야의 실력있는 학자들이 강의를 맡고 있고,
 소설가 공지영씨와 영화배우 정준호씨 등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했다.

수업초기, 나는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당장 먹고 살기에 빠듯한 분들이 이런 강의를 어떻게 생각할지,
 수업분위기는 어떠한지, 자발적인 열의가 어느정도나 될지, 걱정과 기대가 뒤범벅이었다.

"학생들은 진짜 열심입니다. 노숙인들도 굉장히 열심히 나옵니다.
당장 생계걱정을 하는 분들이 이런 데 관심 있겠나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저희 직원들도 많이 놀랄 정도로 열의를 보입니다.
강의를 듣는 분들은 표정부터 많이도 달라졌습니다."

보고를 받으며 반가운 마음에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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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의 힘, 문화의 힘!

그러던 차에  '휴먼 서울 시민 희망의 인문학' 수강생들을 직접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경희대 측으로 부터 특별 강사로 초청받은 것이다.
강연초청을 수락한 후 전에 없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준비를 했다.

나의 지시로 시작된 강좌인 만큼 애착이 크기도 했지만
강좌를 듣는 분들에게 미력하나마 희망과 용기를 보태드리고 싶은 소망이 컷다.

마침내 강단에 서게 된 2008년 7월 초,
수업을 듣는 노숙인들과 저소득 주민들, 그리고 그 가족들 까지 강당을 빼곡하게 채워 주셨다.
그날 40분 동안의 강의에서 내가 가장 강조했던 것은
문화와 예술,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의 힘이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 지나온 인생에서 얻은 지혜이기도 했다.


구글어스 속 그림의 위치
 지도상에, in Google Earth (KML)
 
 
 
 
 
 
 
 



"어린시절 저는 삼양동 달동네 판자촌에 살았는데요,
집안에 화장실은 커녕 수도도 없었죠.
동네 어귀의 공동 화장실을 쓰고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가 먹어야 하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누구나 어려운 시절이긴 했지만 당시에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부러웠던 상대는 담장이 있는 집에 사는 친구였죠.

하지만 저 스스로 그러한 사춘기의 열패감을 디고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바로 꾸준한 책읽기 였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당시 부모님은 정말 중요한 등대가 돼 주셨습니다.

아픈무릎을 감싸 쥐고 달동네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생계를 꾸리셨는데요.
어린 저희 남매가 그러한 인문학적인 교양을 쌓아 나갈 수 있도록
집안 분위기를 이끌어 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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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코스 졸업생들이 카메라 앞에 당당하게 섰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는, 당대에서 가난의 고리는 끊지 못할 지라도 자녀 세대에서라도 가난을 끊게 하려면
인문학을 접하라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자녀세대가 인문학을 접하려면 부모세대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있어야 하기에
더욱 열심히 더욱 열심히 인문학에 매진 해 달라는 당부였다.

학생의 신분으로 앉아있던 노숙인들은 무척 진지해 졌다.
나는 그런 그분들의 눈빛을 하나하나 살펴 보았다. 순간, 가슴 뭉클한 감동이 느껴졌다.

그들 역시 노숙이 처지였지만,
취임 초 노숙인 쉼터에서 만났던 이들의 눈빛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열의와 의욕이 전해졌다.

물론 서울의 빈민 전체에 비하면 이분들의 숫자는 결코 큰 비중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들 중 상당수가 새 삶을 살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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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서울 시민 인문학 코스'가 얼마간의 돈이나 몇 끼의 밥보다
노숙인들에게는 훨씬 더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삶의 의미에 대한 희망이다.

삶을 포기하다시피 했던 사람들에게 의욕과 자존감을 회복하게 하는 힘,
그것이 인문학의 힘이요. 내가 누누이 강조하는 문화의 힘인 것이다.

문화는 절대로,  가난한 자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배부른 자의 유희라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문화로 부터 교양이 나오고
그 교양만이 그들을 가난의 대물림에서 탈출 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어찌어찌해서 졸부가 되어도 문화와 교양이 없으면 공허 할 뿐이다.
그리고 그 부는 결코 세습에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문화시정은 결코 배부른 자들만의 노래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글 출처 http://blog.naver.com/ohsehoon4u/120056546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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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맨 처음 경희대학교 켐퍼스를 들어서며 속으로 서울시의 시정에 대해서 시큰둥했었다.
그동안 정치인들이 해 왔던 낮익은 수법이 또 이곳에서 펼쳐질 것이라는 불필요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노숙인을 상대로 한 인문학강의가 무슨 소용이며 무슨 지랄인가 싶기도 한 것이었다.

요즘 전해듣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고등교육을 받는 이유가 취업을 위한 한 방편이었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일류대학의 문을 두드려 보고자
알파맘들은 초딩도 되기전에 아이들을 들볶아 학원으로 전전케 하는 것이며 그 이유가 별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 비하면 '휴먼 서울 시민 인문학 코스'를 수강한 가난한 시민들은
비록 짧은 인문학강의를 통한 코스를 졸업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인문학에 입문했던 것이며
시작할 때 어려웠던 점은 고사하고 너무 빨리 끝나버린 수업에 대해서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화의 전당 앞에서 그들은 비로소 행복한 미소를 피워 올릴 수 있었는데
그 배경에는 서울시가 도시 영세민들이나 노숙인들을 배려한 시정이 있었고
그 시정뒤에서 고뇌의 흔적이 역력한 서울시장의 눈물겨운 문화적 철학이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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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이 글을 통해서 서울시장의 업적을 드 높이려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서울시정이 이끌고 있는 '문화코드'를 많은 서울시민들이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길 바라고
그를 통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우리 시민들이나 국민들이 '인문학 코스'를 더 많이 수강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동안 고속성장을 하면서 돌보지 못한 가난한 이웃들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을 수 있다면 그보더 더 좋은 일이 또 어디있겠는가?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는 속설이 있다.
서울시가 고뇌한 것 처럼 우리 가난한 이웃들에게 빵이나 돈 몇푼을 안겨주는 일은 쉽다.
그러나 그런 복지정책은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 코스를 졸업하는 노숙인 여러분에게 '희망으로 가는 교실'은
행복이 무엇이며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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