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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놋그릇' 다 내다버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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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놋그릇' 다 내다버린 아버지!

앨범을 정리하다가 하마터면 지워버릴뻔한 두어장의 그림앞에서
낡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작은 추억을 떠 올리고 있었다.

그림속의 놋그릇(鍮器)은 내 어릴때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릇일 뿐만 아니라
나를 살찌우고 크게 만든 밥그릇이었다.
이 밥그릇들이 어느날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서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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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집안 가득하던 놋기를 모두 처분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처분된 놋기속에는 촛대로 부터 수저에 이르기 까지
눈 뜨면서 부터 잠들때 까지 우리형제와 가족들이 늘 마주치던 것들이었는데,

이 놋기 때문에 고생을 면치 못하던 어머니와 누이와 숙모 등
 부엌일을 주로하는 여성들을 위한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집은 종가였고 년중 크고 작은 행사가 이어졌는데
어떻게 보면 거의 매일 잔치를 하는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때마다 유기들은 잘 빻아진 기와가루를 묻힌 지푸라기에 묻혀서 닦여지며
집안 여성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며
녹이슬지 않고 깨끗해 보이는 '스텐레스' 그릇이 시중에 나오면서 전부 고물상으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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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 유기들은 얼마전에 다녀온 코레일의 '팸투어' 당시
제천역전의 한 골동품 노점에 진열되어 있던 유기의 모습이고, 아버지가 내다버린 유기와 모습이 똑 같았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아 두었던 것인데 점심을 먹기위해 제천에서 잘한다고 하는 한 음식점에서
유기에 담긴 산채비빔밥 그릇이 다시금 40년도 훨씬 넘은 추억을 슬슬 건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알져진대로 놋쇠로 만든 모든 기물을 유기라 부르는데
이 그릇의 역사는 청동기시대 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 우리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었고,

기록에 의하면 "도자식기가 보편화된 조선시대에도
겨울철에는 도자기에 비해 보온력이 뛰어난 유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보수성이 강한 제기류는 전례를 충실히 따라 유기의 사용을 규범화했다."고 전할만큼
우리문화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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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문화나 우리 가족사 중에서 빼 놓을 수 없었던 유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정작 기뻐해야 할 어머니 등 집안여성들 몇은 못내 아쉬워 하며 고물장수 뒤를 바라보곤 했다.
천금만 못했지만 애지중지한  물건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요즘 다시금 생각해 봐도 아버지인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리 없다고 여기지만
가치란, 반드시 오래되었다고 해서 중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결정이었다.

요즘 우리경제나 정치현실이 힘든 가운데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문제들에 대해서 심기가 불편하다.

차라리 그런 정보들에 대해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까지 틀어막고 살면 좋으련만
컴만 열면 눈에 띄는 모습들은 따지고 보면 '새로운 것'을 가장한 '낡은 것'이 너무도 많이 보인다.
그것은 온라인에서 건 오프라인에서 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민족이 즐겨먹고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비빔밥이자
다양한 좋은 재료들의 특성을 잘 이용하며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데 유기도 그중 하나였다.
정치나 경제나 문화속에서 버려야 할 가치는 과감하게 버리고
좋은 점을 잘 살려서 놋그릇에 담긴 비빔밥처럼 '맛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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