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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 山들

계룡산 대자암 상좌스님 '법문' 훔치다!



계룡산 대자암
상좌스님 '법문' 훔치다!

우리는 도둑놈이었다. 그 도둑놈은 나를 포함하여 딱 두사람이었다. 대전 논산간 민자고속도로를 거쳐 대자암으로 가는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멀리 계룡이 꿈틀거리는 듯한 계룡산을 바라보며 그렇지!...우린 도둑놈이야!...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금번 거사(?)에는 모두 세사람이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은 여성이었는데 그녀가 이 범행에 교사를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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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서울에서 산부인과를 개업하고 있는 의사였는데 사실은 그녀가 우리를 종용하여 법문을 훔쳐 오도록 한 것이었다. 흠...그러면 법문을 어떻게 훔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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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이라면 불법에 대해서 서로 묻고 대답하는 일인데 그렇다면 한번도 만나보지 않은 상좌스님을 만나서 그와 대화를 나누어야 할 텐데, 그때 그 법문을 도둑질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가 계룡산 갑사 쪽을 이동하는 동안 몇차례 상좌스님의 법문을 효과적으로 훔쳐 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대자암의 상좌스님이 계시는 곳은 갑사의 암자인 대자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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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갑사 대자암으로 가는 길에 본 계룡산의 모습...천지인의 조화가 눈에 띈다. 이하 그림은 대자암 모습과 대자암 주변의 경관

계룡산 대자암
상좌스님 '법문' 훔치다!


대자암으로 가는 길목의 갑사는 만추의 화려한 모습으로 계룡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둑질도 이렇게 순조로울 수 있을까? 맘먹고 하는 도둑질은 열사람이 지켜도 감당할 수 없다는 속설이 딱 들어 맞았다. 우리는 대자암으로 걸어서 갈 필요가 없었고 갑사나 암자로 불사 때문에 가는 사람인 양 말하라는 교사자의 가르침(?)대로 그리하여 자동차 바퀴가 겨우 얹히는 꼬불꼬불하고 좁은 산길을 따라서 드디어 대자암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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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둑놈은 법문을 훔칠 장소인 대자암 불당과 상좌스님의 거처를 기웃 거리며 범행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전 10시가 다 된 대자암에는 볕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계룡의 등 뒤로 쏟아져 내리는 그 빛은 어쩌면 평범한 햋빛에 불과 했지만 마치 서광처럼 보였다. 두 도둑놈에게 베푸는 하늘의 자비로움일 까?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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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암은 상좌스님은 조실 정영 스님이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4시 34분 세수 85세 법납 66세로 입적하신 후로 대자암을 지키고 있는 분이었다. 불자가 아니어서 큰 관심을 가지진 못했지만 정영스님의 발자취는 위대했다. 현대판 무문관을 처음 세운 것으로 유명한 정영 스님은 1965년 말 서울 도봉산 천축사에 이어 1990년대 초 대자암에 무문관을 세워 무문관의 명맥을 잇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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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 스님은 1923년 경남 창원에서 출생하였으며 일본에서 수학했다. 1940년 만공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로 출가. 상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43년 해인사 칠불암 대승사 미래사 보문사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수십안거 성만. 1954년 비구 정화운동 당시 동산 효봉 청담 스님 등과 정화 앞장.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교무부장 재무부장 역임 해인사 총무 천축사 봉은사 망월사 갑사등 주지역임 후 30년 동안 계룡산 대자암에 칩거 수행정진했다. 대자암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했다.

1964년 천축사에 한국불교 처음으로 무문관 선방을 개설한 스님은 대자암에 1993년 윤3월 두 번째 무문관인 삼매당과 시민선방인 시방당을 개설 한국불교의 수행 풍토를 일신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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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을 도둑질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둑질 할 물건(?)에 대한 값어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두 도둑놈이 당도한 대자암에는 상좌 스님이 정영 스님의 귀한 법문을 모조리 꽤 차고 있었던 것이며 그 보물은 계룡의 등자락이 빤히 보이는 이곳 산자락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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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을 훔치는데 성공한 두 도둑놈은 기분좋게 불당을 나서며 상좌 스님께 인사차 들렀다. 해맑은 미소와 투명한 피부를 지닌 상좌 스님은 우리가 법문을 훔친 사실에 대해서 까마득히 모르고 계셨다. 그리고 손수 도둑놈들의 수고(?)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금방 우려 낸 차를 대접해 주셨다. 상좌 스님 곁으로 정영 스님의 커다란 영정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 도둑놈들아!...법문 훔치느라 수고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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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 스님과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두 도둑놈은 실토를 하고 말았다. "스님!...오늘 조금전에 들려주신 법문을 훔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훔쳐 갑니다!...^^". "안되는데!..."하시며 미소를 지으시며 "...그런 줄 알았드라면 좀 더 준비를 할 걸 그랬나? ^^ "...어설픈 도둑놈들은 무릎을 조아리고 앉아서 그윽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스님을 바라보며 인사를 드리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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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길에 꼭 찾아 뵙겠습니다." 나는 실수를 하고 있었다. 도둑놈치고는 어설프기 짝이없는 인삿말이었다. 금방 죽비처럼 꼿히는 일성이 뒤따랐다. "...아니지!...먼저 찾아 와야지..." 얼굴이 화끈 거릴 시간조차 없었다. "네!...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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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암은 40여 년 전 서울 천축사에서부터 이어져 온 무문관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으로 지난해 8월 21일 조실인 정영 스님의 주관으로 결사에 들어갈 수좌 21명을 선발했었다. 당초 21명을 선발했지만 입방 희망자들의 간절한 청을 이기지 못한 정영 스님이 제2무문관에 4칸의 방사를 더 마련해 25명이 입방할 수 있게 됐다. 이날 입방을 위해 모인 수좌는 대자암 삼매당三昧堂에 12명, 부여 제2무문관(옛 매화초등학교)에 13명. 2차 결사 참가자들은 38세 비구부터 68세 비구니까지 평균 승랍 20년차 내외의 비구, 비구니 구참 수좌들로 짜여졌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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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작년에 입적하신 조실 정영 스님은 법문을 통해 "본래의 마음자리가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깨닫는 것은 생명을 걸고 부지런히 캐지 않고서는 얻기 어렵다"며 "이번 2차 3년 결사에 들어가는 스님들은 방일하지 말고 정진해 시방세계에 불법을 호령할 명안종사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셨다고 하는데, 지난 4일 두 도둑놈들은 정영 스님을 모시고 있던 상좌 스님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정영 스님과 나눈 법문을 들을 수 있었고 그 귀한 법문은 불당에서 동영상으로  남겼던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도둑질이 성행하는데 도둑질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도둑놈들은 우리 두사람과 범행을 교사한 한 여성 뿐이었다. 이 장물은 다시 시중에 유통되며 힘든 삶을 다독 거리며 다시금 도둑질을 부추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제천으로 가시는 한 노스님을 공주의 한 터미널에 모셔드리면서 생긴 생각이다. 세상의 인연은 도둑질 하고도 닿아 있으니 대단한 인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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