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너무도 더딘
구룡령자락&인진쑥
양양에서 창촌으로 넘어가는 길에 커다란 병풍처럼 드리운 구룡령의 가을은 화려하다.
마치 오색실로 수놓은 듯한 구룡령은 구름도 쉬어 갈 만큼 높지만 모양새는 어미의 품 같이 넉넉하기만 하다. 그 품에서 젖이 흐르듯 조그씩 배어 나오는 갈천골 약수 한모금을 들이키면 젖맛처럼 '닝닝한' 탄산수가 갈증을 풀어준다.
내가 처음 구룡령을 찾았을 때는 발파작업이 한창진행중이던 때 였고 내린천을 오가며 백두대간의 젖줄에 반하여 자주 찾으면서 10월이면 무수히도 많은 밤하늘을 보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천골 가는 길에 재배되고 있는 '인진쑥'의 효능과 남대천의 수려한 경관을 만나기 위해서 찾는 곳이다.
구룡령자락에 한가구만 살고 있는 깐돌이네(노출이 무서워 이렇게 부른다)에서 바라 본 구룡령은 구름이 산을 넘다 쉬어가는 것 처럼 시간 조차도 더디게 흐르며 묶여 있는 듯 하다. 세상사람들은 바삐 움직이며 살아가는데 도대체 이곳은 바쁜 게 없다. 그래서 강쥐 조차도 심심해 죽을 지경이다.
양양시내에 나가면 서울에서 구경하던 물건은 다 있건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비닐봉지를 씻어 말려서 재활용하고 있고 무엇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깐돌이네 할아버지는 구룡령자락에 서식하는 느타리며 송이며 버섯등을 채취하고 깐돌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등에 업힌 깐돌이와 시간을 보낸다.
고사한 참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사용하고 볕이 좋은 집 뒤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가두어 그대로 식수로 사용하는 이곳은 구룡이 살았던(?) 만큼 깊은 골짜기였지만 최근에 도로포장이 되면서 쪽박에 물 새듯 구룡령 바같으로 시간들이 새 나가는 느낌이다.
나는 마당 한켠에서 심심해서 뭇살겟다는 듯 무료해 하는 강쥐를 불러서 잠시 시간을 보내려 했으나 이녀석은 노는 것 조차도 귀찮은듯 작음 몸을 어슬렁 거리며 마당을 배회할 뿐이다. 긴 분침이 정각을 향해 기어오르는 듯 모든 게 더딘 이곳에서 인진쑥을 달이고 달여서 만든 '쑥환' 한 봉지를 들고 월정사 자락이 보이는 구룡령을 넘었다.
사철쑥이라고도 불리우는 인진쑥은 다양한 성분들이 포함된 쑥으로서 비타민 A의 함량이 높아 암예방에 효과적이고 발암물질의 생성이나 활성을 억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쑥 추출물은 대단히 강한 혈청지질의 억제작용이 있어서 동맥경화나 고혈압 치료에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진 영약중 하나다. 만간에서는 황달이나 간염,간경화 등 치료에 쓰이고 생즙을 내어 먹기도 할 뿐만 아니라 오래 고아서 조청(인진고)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구룡령자락에 한집만 사는 깐돌이네에서 그 인진쑥환을 때마다 구입한지 2년이 된 것이다.
구룡의 형상처럼 구불구불 휘어진 도로 아래에서 한겨울에도 눈을 맞고 자라는 인진쑥은 구룡들이 이 쑥을 뜯어먹고 자라서 용이 된 것일까? ^^ 요즘은 많은 약들이 시중에 나와 있고 불치의 병들도 시중에 더불어 나와 살고 있는데 나는 구룡령 골짜기에 들어서면 그러한 병들의 원인이 시간에 너무 쫒겨서 생긴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하나 제대로 천천히 만든 식품들이 적은 현대의 식품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좋을리 없다. 좋은 음식이란 천천히 오랜동안 곰삭히고 끊여야 인체에 좋은 작용을 할 것인데 인진쑥을 달여 끓이는 과정이 그러하며 구룡령자락에 머문 시간까지 달여서(?) 만든 인진고는 그래서 그런지 음식을 급히 먹거나 과식했거나 어떤 이유로든 배탈이 났을 경우 즉시 효과를 발하는 영약이다.
속을 다쓰리는 약이니 인체 곳곳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특히 여성들에게 좋은 약성을 지닌 인진쑥인데, 그 약을 받아 들고서 구룡령을 넘으면 구룡령은 어찌나 길고 먼 거리인지 구룡령 너머 창촌이 까마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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