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천 연어의 슬픔이 깃든
'송천松川'리 찾아가다!
한동안 나는 강원도로 갈 기회가 있으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양양에서 구룡령을 넘어 창촌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금은 구룡령에도 현리로 가는 길이 새로 개통되었지만 한계령이나 미시령 등이 정체될 때 이 길을 아는 사람들은 우회하여 속사로 빠져 나가거나 인제 등지로 방향을 틀었다.
양양에서 한계령으로 이동하다가 좌측으로 굽어진 길을 따라가면 한고개를 넘자 마자 남대천의 상류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남대천은 우리나라의 어느천 보다 보기 드물게 천 변에 소나무가 많고 우뚝솟은 구룡령의 모습은 백두대간과 남설악의 새로운 절경을 만들고 있는 곳이다. 남대천을 끼고 있는 지천들 곁에는 대부분 울창한 송림이 덮여있고 남대천은 그 사이로 그림처럼 굽이쳐 흐르고 있다.
남대천은 미천골과 법성치 골짜기로 부터 흐르는 두개의 큰 지류와 미천골로 이어지는 천 외에 양양군 서면 송천리와 송어리로 이어지는 지천이 하나 더 있다. 이 천이 송천떡마을을 휘감고 돌아나가며 남대천으로 이르는 것이다. 지금은 이 골짜기 곁으로 사람들이 많이도 모여살고 구룡령이 개통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이어졌지만 오래전 이곳에서는 고향산천을 떠나서 먼 바다로 나간 연어들이 지친몸을 이끌고 고향을 찾아서 산란을 한 다음 마지막으로 자신이 태어난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나는 강원도에서 볼일을 마치고 상경할 때 이렇게 아름다운 천을 그냥 지나친 법이 없다. 차에서 내려서 연어들이 떼를지어 상류로 이동하는 환상에 잡혔고 어떤때는 천 변으로 나가서 혹시라도 눈에 띌 연어의 모습을 보기위해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단 한차례도 이곳에서 연어를 만나지 못했다. 팔뚝만한 연어가 자갈을 헤치며 상류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 그 자리에는 피라미들이 떼를지어 놀고 있었을 뿐이다.
오래전 이곳에서는 연어들이 떼를지어 이 천으로 올라올 때 그 연어를 먹잇감으로 배를 채우며 동면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반달곰이 어슬렁 거렸을 테고 연어들은 수년내에 다시 찾은 이 아름다운 천변에서 고향의 흙내음과 솔향기를 맡으며 긴여정을 마무리 했을 것이다.
연어가 산란하기 좋은 장소는 천이 얕고 깊은 골짜기의 청정한 지역일 텐데, 우리나라 강원도의 천은 북아메리카와 같은 대륙에 비해서 너무 짧고 수량도 풍부하지 않다. 그러나 이곳에서 산란한 연어들이 먼 바다에서 성장한 다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쯤이면 클대로 커진 몸집을 가누기 조차도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천 수만km를 헤엄치며 자신을 낳아 준 고향산천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당도한 곳은 솔향기 나는 고향산천의 흙냄새가 아니라 '그물망'이었다.
요즘 양양에서는 '연어축제'가 한창이다. 남대천 한켠에 그물을 쳐 두고 어른 팔뚝보다 더 큰 연어를 풀어놓고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연어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남대천의 자랑이었던 연어를 추억하고 있고 관련당국에서는 연어를 부화시켜 바다로 보내고 있다.
연어를 붙잡아 알을 채취하고 인공적으로 수정하고 부화시키는 이런 조치가 없었더라면 그나마 남대천에서는 연어를 구경할 수 조차 없고 연어라는 이름은 먼 나라의 이야기 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럼에도 '양양연어포럼'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보면 연어의 "치어방류량 대비 회귀율은 한국이 0.5% 수준으로 미국, 캐나다, 러시아, 일본 등의 1~4%에 비해 저조하다."고 말하고 있고 "연어는 식품 선호도가 높지 않아 경제성이 떨어지고 대중 식품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또 양양군의 김진하 경제도시과장은 '연어산업'을 위해서 "부가가치 확대,관광상품 개발 등 양양의 대표자원으로 활용하고, 연어과학관 건립 및 식품자원으로의 산업화와 해상 양식기술 개발,수출 주력 상품화,첨단식품 클러스터 조성" 등의 구체적인 대책과 방향을 제시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양양연어포럼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꿈 보다 해몽'이 좋다라는 생각이 든다. 연어를 통하여 부가가치를 드 높여서 지역민들의 경제사정을 나아지게 하고 양식기술 개발과 관광상품개발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찬동을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침소봉대되어 현실을 제대로 잘못 보고 있는 것 같다.
언급한 대로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케나다,미국,소련처럼 내수면어업이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남대천으로 연어가 회귀할 수 있도록 만든 조치는 인공적인 면이 적지 않고 연어를 인공적으로 부화하게 된 이면에는 '양양수력발전소'와 같은 시설이 남대천 상류를 차단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연어가 이역만리 먼 바다에서 죽을힘을 다하여 회귀하여 자신을 낳아준(?) 고향인 남대천으로 와서 솔향기 그윽한 흙냄새도 맡아보기 전에 그물로 포획된다면 얼마나 슬픈일인가?
남대천 상류로 연어가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게 만든 댐과 같은 시설이 양양군민에게 어떤 실익을 안겨주는지 잘 모른다. 그렇다고 연어만을 위해서 이 댐을 허물었으면 하는 바램도 주제넘는 일이다. 하지만 기왕에 연어포럼과 같은 행사를 통해서 양양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양양군민이나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는 길을 찾으라고 한다면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연어와 우리'를 위한 조치들을 생각해 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내가 찾아간 양양군 서면 '송천松川'리는 그림과 같이 수정과 같은 물이 사철 흐르고 있고 남설악의 솔향기 그윽한 향을 품고 남대천을 향하여 흐르는 천이다. 그림속에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연어의 흔적은 없고 환상만 가득한데, 만에 하나 가을이 되어 이곳으로 연어들이 떼를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넘쳐나는 관광객들 때문에 차 한대 잘 다니지 않는 구룡령은 지동차행렬로 장사진을 이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양양군은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인하여 가가호호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며 이런 장관을 보기위하여 비행기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힘들게 지어놓은 양양공항의 존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전술한 미국이나 케나다,일본 등지에서 연어를 만나(관광)볼 수 있는 조치를 해두고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설령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곳은 연어로 부터 먼발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연어축제를 한답시고 그물속에 가두어 둔 연어들이 죽지않기 위하여 발버둥쳐야 하고 그 연어를 잡고 환호하는 모습은 연어를 잘먹지 않던 우리네 습성(?)들 하고 너무도 동떨어진 모습이 아니던가? 남대천 곳곳에 시설해 둔 켐핑장이나 한철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업소들 때문에 연어가 설사 남대천으로 회귀한다고 해도 길을 잘못들지 않았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라면 이곳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너무 서운한 이야기가 될까?
할수만 있다면 남대천하류 부터 큰 두갈래 상류에 이르는 천으로 연어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어도를 확보하면 연어는 물론 인간도 더불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이곳 송천마을을 휘감고 도는 송어리계곡에도 연어들의 등지느러미가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은 수해복구가 되면 하천부지를 한뼘이라도 더 차지 하기위해서 석축을 높이 쌓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 천변에 석축이나 콘크리트 벽을 쌓을만한 곳이 못된다는 것 쯤도 잘 알 것이다.
연어가 설사 인공적으로 부화되었다 해도 그가 치어로 남대천에서 살면서 한번쯤은 맡아 본 고향의 흙냄새와 남설악의 솔향기를 간직한 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그물속으로 잡혀 들어가 그 어미가 그러했던 것 처럼 연어의 일생이 '부화의 일생'으로 끝나면 슬프기 그지 없는 일이다. 또 그가 이역만리 먼 바다에서 처음 떠났던 고향 남대천으로 거슬러 오면서 꿈에도 그리워한 고향산천은, 두고두고 연어의 가슴에 한으로 남을지 그 누구가 알 것인가?
송천리에서 촬영한 그림속에는 연어들이 한마리도 보이지 않고 피라미 몇마리만 맑은 물을 헤집고 노닐 뿐이었다. 이곳은 우리 산하를 떠났던 연어가 고향을 찾아 회귀 하던 중 남대천 하류 그물속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그리워한 그들의 고향땅이다.
자연은 자연스러울 때가 가장 자연답다. 연어는 보이지 않지만 아직은 청정한 자연의 모습을 잘 간직한 송천리 골짜기에는 벼메뚜기가 천연덕스럽게 몸에 달라 붙는 곳이고 솔바람 향 그윽한 곳이다. 이곳은 마음이 울적해 질 때나 먼 곳으로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으면 꼭 찾고 싶고 무거운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고향과 같은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우리가 당장 살아가기 힘들어서 파헤치고 가로막은 우리의 산하는 더 큰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옛날 연어들이 떼지어 천을 거슬러 올라갔던 남대천 변에 서서, 오늘날 연어가 그러한 것 처럼 우리도 인공그물 속에서 수정되고 부화되는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연어가 흘린 눈물이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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