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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망부석이 된 물고기?



망부석이 된 물고기?


우리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중에 '망부석 설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신라사람 박제상의 아내 이야기가 담긴 이 설화를 시작으로 곳곳에 망부석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오는데 망부석 설화중 일부를 위키백과에 쓰여진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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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세미원에 있는 망부석이 된 물고기?...

망부석望夫石 설화는, 일본으로 떠난 박제상을 그리워한 박제상의 부인에 얽힌 설화이다.
삼국유사의 〈내물왕奈勿王과 김제상金堤上〉편의 중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王旣見寶海, 益思美海一欣一悲, 垂淚而謂左右曰. 如一身有一臂, 一面一眼, 雖得一而亡一, 何敢不痛乎. 時 堤上聞此言, 再拜辭朝而騎馬. 不入家而行, 直至於栗浦之濱, 其妻聞之, 走馬追至栗浦, 見其夫已在舡上矣. 妻呼之切懇, 堤上但搖手而不駐.
왕이 이미 보해(복호)를 만나자, 미해(미사흔)의 생각이 더하여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니, 눈물을 흘리며 좌우 신하들에게 말했다. "마치 한 몸에 팔이 하나인 듯, 한 얼굴에 눈이 하나인 듯, 비록 하나는 얻었으나 하나는 잃었으니, 어찌 감히 괴롭지 아니한 일인가." 그 때에 제상이 그 말을 들으니, 다시 절하고 하직하여 말을 탔다. 집으로 가지 아니하고, 곧바로 율포栗浦 물가로 향하니, 그의 처가 이를 듣고, 말달려 율포로 좇아가니, 이미 지아비가 배 위에 올라있었다. 아내가 간절하게 부르나, 제상은 다만 손을 흔들며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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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편의 후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初堤上之發去也, 夫人聞之追不及, 及至望德寺門南沙上, 放臥長號. 因名其沙, 曰長沙. 親戚二人, 扶腋將還, 夫人舒脚, 坐不起, 名其地, 曰伐知旨. 久後夫人不勝其慕, 率三娘子上鵄述嶺, 望倭國痛哭而終. 仍爲鵄述神母, 今祠堂存焉.
처음 제상이 떠날 때, 부인이 이를 듣고 좇았으나 미치지 못했으니, 망덕사 문 남쪽 모래사장에 이르러, 누워서는 크게 부르짖었다. 이로 인하여 그 모래사장의 이름을, 장사長沙라 이르게 되었다. 두 사람의 친척이 부축하며 돌아오는데, 부인이 다리가 풀려 앉은 채로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 땅의 이름을 벌지지伐知旨라 이르게 되었다. 오랜 후에 부인이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딸 셋을 데리고 치술령鵄述嶺에 올라, 왜국倭國을 바라보며 통곡을 하다 생을 마쳤다. 그로 인하여 치술령의 신모神母가 되었으니, 지금도 사당이 존재한다.


'치술령'은 울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상에 있는 바위는 지아비를 그리워하던 바위라고 하여 망부석이라고 부른다. 문헌의 마지막에서 언급된 사당은 인근에 위치한 은을암隱乙岩으로, 죽은 아내의 혼이 새가 되어 날아든 곳이라 하여 유래되었다. 망부석과 은을암은 함께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 '박제상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전한다.

지난주 양수리에 있는 그린토피아와 세미원을 다녀 오면서 두물머리 한켠에 버려진 듯 홀로 남아있는 바위덩어리가 있었는데 그 바위에 암각을 하여 물고기 형상을 만든 모습을 보며 망부석을 떠 올렸다. 본문중에 치술령은 울산에 위치하고 울산의 지리적 위치는 일본과 많이도 가까운 곳이며 신라시대 때 주요 항구로 울산의 한 포구인 '율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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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으로 치면 '버스 떠나고 손 흔드는 모습'이 연상되는 율포에서 박제상의 아내는 망부석이 되고 말았다는 설화는 요즘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사람이 바위가 될 수 있는가?...이런 설화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나오는 '소금기둥'으로 변한 이야기도 그와 같을 것인데 이런 설화는 왜국倭國에 볼모로 있는 왕자 '미사흔'을 구하러 갔다가 정작 자신은 살해당하고 만 슬픈 이야기라서 그를 추모하기 위해서 만든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두물머리에 있는 저 물고기는 누구를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것일까?

멍한 눈으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의 두물머리 서쪽, 서울이 있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이 망부석은 야속하게 떠나는 이 계절과 시간을 못내 아쉬워 하며 황금빛 가을볕을 쬐고 있었다. 본문에 쓰여진 망부석에 대한 설화가 한자어로 되어있는데 오래전 삼한시대 때 한글이 창제되었다면 망부석과 같은 설화 외에도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들이 보다 많이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설화들을 오늘날 활자로 사용할 기틀을 만든 '한글날'인데 '영어공교육'과 같은 교육제도를 일반화 하려는 정책들 때문에 불편하고, 그 정책을 펴고자 뽑아놓은(?) '공孔교육감'이 앞장서서 '공空교육'을 빌미로 돈거래를 한 사실을 보니 망부석이 된 제상의 아내가 가슴에 썩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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