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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MERICA

지구가 '둥근'사실 처음으로 증명한 사람은?


지구가 '둥근'사실

처음으로 증명한 사람은?



16세기경,

아직도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다만, 지구가 편평하지 않다는 사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누가 증명해 보일 것인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지금에야 누구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지금으로 부터 50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 가 보면 '주장'만 있지 '증명'이 되지 않아 갑론을박이 계속 되었는데

서양에서는 기원전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데스'란 사람에 의해서 地球設(지구는 둥글다.)이 제기 되었다 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이고 지리학자이기도 했다.


 리오가제고스에서 본 대서양의 아침놀


 Boramirang 함께 가는 南美旅行67

-'마젤란' 해협을 아시나요?-


별로 신통한 측량 기계도 없던 그 시대에, 그가 정확히 지구의 크기를 측정한 것은 오직 수학의 힘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데

 그리스의 천문, 지리, 수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는 '세가지 가정'을 바탕으로 지구의 둘레를 측정하였다고 전해지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이익선생(1681-1763)이 서양역법을 통해서  

'지구의 직경이 3만리이고   둘레가 9만리'라고 인정하면서 서양의 천문학이 앞서 있음을 공표한 사실이 있다.

이런 논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막연하나마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고 증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시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선박'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천측장비인 '육분의'가 있어야 하며 튼튼한 범선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선박의 크기는 장거리항해를 가능하게 하는 다량의 식량을 실을 수 있는 대형선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언제 닥칠지 모르는 바다의 폭풍과 풍랑과 같은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목숨을 내 놓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이 모험을 할 수가 없었다.


Estrecho de Magallanes


 마젤란해협을 방문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우수아이아로 가는 관문에 마젤란해협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그런 가운데 포르투갈의 항해가이며 모험가인 마젤란(Fernando de Magallanes)이 '미친짓'을 감행했다.

그의 성격이 증명 해 주듯이 이런 항해는 어쩌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고

설령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가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이 전혀 없어 보였다.


실제로 그는 이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필리핀의 한 섬에서 원주민들에게 사살되었고

엘카노가 85t에 이르는 범선을 이끌고 스페인으로 돌아 왔다.

그가 스페인으로 돌아왔을 때 그 배는 물이 새고 있었고 생존자는 21명에 불과 했는데 대부분의 몰골들이 난파선의 유령과도 같았다 한다.  

마젤란의 성격은 극도로 모순적이며 복잡하다고 알려졌는데 마치 '동키호테'와 같은 성격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무모한(?) 세계일주의 선봉에 설 수 없었을지 모른다.



 


출처 : Copyright 1994-2004 Encyclopaedia Britannica
 동영상을 'Play'하시면 '마젤란'이 항해한 세계일주 코스를 볼 수 있습니다.

마젤란은 필리핀의 1521년 '막탄 섬'에서 원주민들에게 살해되었지만 원정대는 엘카노의 지휘하에 스페인으로 귀환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젤란은 사실상 세계일주를 하지 못했습니다. 마젤란은 스페인 사람이 아니고 포르투칼의 탐험가 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간 초유의 사건 처럼 이런 엉뚱한 사람으로 부터 새롭게 발전 해 나가는데

나는 그가 이 해협을 통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바람이 세차게 부는 마젤란해협에 오랜동안 서 있었다.

그가 없었더라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언제인가 증명되었을테지만,


나는 목숨을 건 그의 항해를 두고 아무리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라들 하지만

그의 그런 모험심이 존경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가 포르투갈의 국적을 버리고 에스파니아로 귀화 한 사실은

아마도 그가 가진 이런 모험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사정을 가진 배경이 그곳이기 때문이라 여겨지는데

그는 한시도 자신에게 만족을 하지 못하는 '불만투성이'의 모험가로 알려졌다.


 바람이매우 심한 마젤란해협에 서서 기념으로...뒤로 보이는 바다가 대서양쪽이다.


그러니까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젤란과 같은 성격을 가졌다는 것일까?...

나는 감히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

여행이란, 나름의 계획을 수립하고 떠나야 하겠지만 그것은 마젤란이 항해를 하기 위해서 준비한 '짐'에 불과하고

그의 앞에 펼쳐질 사건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여행이 무슨 '세미나' 참석하듯이 정해진 코스를 밟고 돌아 온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아마도 마젤란이 필리핀에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굳이 필리핀 까지 가지 않았을 것 처럼 말이다.(비약 ^^)

여행은 그래서 떠나고 싶을 때 아무때나 훌쩍 떠나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이고

평소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란 말이다. ^^


 남미 최남단을 둘로 쪼개어 놓은 마젤란해협은 세계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마젤란이 이 해협을 최초로 발견 하면서 부터 이름지어진 곳입니다.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해협의 대부분은 칠레 영토이나 대서양에 접한 끄트머리부분만 아르헨티나 영토 입니다.

그레서 우수아이아-Tierra del Fuego-로 가기 위해서는 그림의 <현재위치>에서 승객을 태운 버스가 운반선에 의해 실려

아르헨티나 땅으로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출국과 입국을 번갈아 두번씩 하게 되어 '패스포트'에 스탬프가 도배되는데 여행객들은 이 과정을 스탬프 때문에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형식적인 출입국 과정은 여행객들을 지루하게 만듭니다.  

오렌지색 루트가 마젤란이 해협을 통과한 이른바 마젤란 해협입니다. 청색루트는 우리가 이동하는 코스구요.

저 해협은 '파나마운하'가 건설되기 전 까지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터널과 같은 유일한 통로 였습니다.


운반선의 접안시설이 있는 포구...아니 나루에 가깝다. 저 바다 뒷쪽으로 뿐다아레나스를 통과하여 동태평양이 나오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키지여행'은 꽝이며 사정이 허락만 한다면 '배낭여행'을 해 보시길 권유해 드리는 것이고

지금 지구촌 곳곳에는 그런 인간들이 부지기수로 많이 있는데

그 원조가 마젤란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마젤란해협에 도착해서 그들을 실어나를 배가 오는 동안

이 해협의 포구와 가까운 카페에 앉아서 무료하게 시간을 떼우며 앉아 있는 것이다.  



 여행객들이 탄 버스를 운반하는 선박이 해협으로 접안하고 있다.




 마젤란해협의 바람은 눈을 뜨지 못할 만큼 세차게 불고 있었고

이 날씨는 지구의 땅끝으로 갈수록 더 심해지는 듯 했다. 재빛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눈이 펑펑 쏟아지며 눈보라를 날릴 듯 했으나

간간히 진눈깨비와 같은 작은 얼음조각들이 날릴 뿐이었다.


혜은은 일행과 떨어져서 마젤란해협의 해변을 걷고 있는 내가 걱정되어서 입이 한발 나와 있었다.

멀리서 우리들을 실어나를 운반선이 접안시설도 제대로 없는 해변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마젤란해협은 마치 커다란 강 하구처럼 넓었으나 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 바다가 태평양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안 마젤란의 선택은 참으로 위대해 보였다.


 

실제로 강직한 성격의 그가 이 해협을 통과 후에 감격하여 펑펑 울었다는 사실은

 감성이 풍부하고 이성적으로 옳바른 선택을 한 그의 축배와 다름없었다.


우리는 이곳에 오기 위해서 깔라파떼에서 띠노와 작별하고 낮선 터어키 친구와 미국에서 온 젊은 친구들을 다 보내며

이른 새벽 3시에 깔라파떼 버스터미널을 나섰던 것이다.

깔라파떼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리오가제고스에 도착했을 때는 대서양에 붉은 아침놀이 펼쳐지며 우리를 환영했고

지구땅끝을 향한 버스여행에 몸을 싣고 마침내 마젤란해협의 한 어귀에 서있는 것이었다.



 조금전까지 서 있었던 장소에서 해협을 건너는 배 위에서...


우리가 가는 곳은 지구땅끝마을이 있는 '불의 땅' 우수아이아였고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육로와 해협을 건너야 했다.

마젤란의 항해史나 세계최초여행기에는 필적할 순 없지만 우리의 모험도 마젤란 못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지도와 상상력은 태초의 모습을 찾아서 가는 모험가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실제로 우리들 앞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무시로 벌어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순풍을 만난 마젤란의 범선처럼 잘도 다니고 있었는데,

휴식이 짧았던 탓인지 버스여행이 길어진 탓인지 몸상태는 영~아니었다.    


   


 깔라파떼에서 비행기를 타고 우수아이아로 가면 몇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곳을 우리는 버스로 이동하고 있었다.

마젤란해협을 통과 하면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처음 도착한 곳은 칠레의 출입국관리사무소였고

그곳에서 버스에 탄 승객들은 모두 내려서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절차는 얼마가지 않아서 다시 반복되는데

이번에는 다시 아르헨티나로 입국하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심한 지구땅끝으로 가는 버스들의 창에는 이런 흔적이 있다.


입국장에 있는 X-ray투시기 앞에서 우리를 부르는 손짓이 있어서 가 보았다.

모니터 속에는 무슨 '폭탄'의 화상처럼 생긴 모습이 보였고 뭔가 하고 있는데

한 직원이 우리들 가방을 열고 보여주는 물건 때문에 피식 웃고 말았다.


"...응...그거...도시락이여...! "


"...(갸우뚱?)...먼시락?..."


"...아...밥이여 밥..."




불의 땅-Tierra del fuego-으로 들어 가는 길



이 고개를 넘어가면 '불의 땅'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쌀(아로스)로 지은 밥과 혜은이 깔라파떼의 민박집에서 만든 '소고기장조림'을 설명해 주었다. 씨익 쪼개는 그들...

통과!!...스탬프에 도장이 꽝 찍혔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며 작은버스에 나누어 탄 우리들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쉼없이 가고 있었고

마침내 눈보라가 날리는 불의 땅에 당도 하고 있었다.


저 고개를 마저 넘어야 불의 땅이다. 가슴이 설랜다.


봄이 오고 있는 불의 땅에는 눈이 가득했고

 벵쿠버로 부터 멕시코시티와 페루 꾸스꼬를 지나며 볼리비아 라파스와 칠레 뿌에르또몬뜨와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깔라파떼와 피츠로이를 경유한 우리는 오래전 인디오들이 불을 지피며 추위를 녹인 태초의 땅에 도착했다.

바람은 멎었으나 밤의 우수아이아의 좁은 도로는 얼음으로 덮여 있었고

우리를 마중나온 민박집 주인은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 해 주었다.


날이 밝자 간밤에 그렇게 불어대던 바람이 멎었고 민박집 창으로 보이는 비글해협은 너무도 조용했으며

창에 걸친 나무들의 잔가지에 새롬이 움트고 있었다.    



민박집에서 아침에 본 우수아이아의 평화로운  전경...멀리 보이는 바다가 '비글해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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