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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MERICA

Tistory에서 다시보는 El Camino Inka a Machupic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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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Camino

 Inka a Machupicchu
5일차

보라미랑 함께 가는 南美旅行29
-잉카트레일 마지막 날-

이 글은 tistory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만들어 본 지난 이야기입니다.
원문을 보시려면 아래의 다음블로그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티스토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재편집해 보았습니다.





Tistory에서 다시보는 El Camino  Inka a Machupicchu





SensitiveMedia 

이 그림은 NASA에서 촬영한 마츄피츄의 그림입니다. 좌측 가운데가 마츄피츄유적이 있는 곳이다.

잉카인의 도시 마츄피츄에 태양신의 메신저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잉카의 나라 페루에 가면 가는곳 마다 이 곡을 들을 수 있다.

페루國歌는 몰라도 펄사이먼과 아트가펑클의 'El condor pasa'에 작시된

 너무도 유명한 곡인데, 이 음악을 들으면 왠지 서글픈 느낌이 가슴 한 가운데서 되살아난다.

그 정서가 잉카의 최후모습과 너무도 잘 어울릴뿐 아니라,

잃어버린 '아나로그'에 대한 그리움을 부른 노래며

보고싶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자

지금은 흔적도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잘 표현된 곡인데,

'검색'을 통해서 잉카인들이 쓰던 '케츄아어'로 부른 이 곡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마츄피츄를 밝히는 아침해가 우르밤바계곡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잉카트레일에 대한 회상의 글을 몇자 끌쩍이면서 듣고 있는 이 곡은

불과 5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을 앞에두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를 속으로 많이도 울린 곡이다.


페루의 상징이 된 마츄피츄의 유적은 건기의 마른풀들로 인해서

아침햇살에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수천년전에 그들은 이 골짜기나 우르밤바계곡 한편에서

내가 쬐던 이 빛을 그대로 쬐고 있었을 것인데

지금 그들의 후손들은 안데스의 비탈에서 여전히 옥수수와 감자를 심고

알파카 몇을 거닐며 대를 이어가고 있고

우리별에 어떤 환란이 올지라도 살아남아서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태초의 인간이자 최후의 인간이 가진 모습이 이러할진데

그들은 하늘을 숭배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철저한 자연인이며

이웃과 조화롭게 살고자 노력하며 또 이웃을 이롭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소한 타인에게 得을 주지 못할지언정 害를 끼치지 않으려는 그들에게도 재앙은 있었으니

그 재앙은 태초이래 그들을 힘들게 온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 대한 침략과 약탈이며

그 침략자들은 다름아닌 동족(?)들이었고

그 동족들에 의해서 끊임없는 노동력이 착취 되었다.




마츄피츄에 서광이 비친다. 잉카인들이 숭배하던 자연의 빛이다.


그 산물이 이 땅위에 세워진 神殿이며

그 신전에서 침략자들은 참배를 강요했다.

그들은 태양신을 대리하는 제사장의 신분으로 백성들을 착취했으며

안데스의 해가 뜨기전 부터 달이 떠 오르는 초저녁까지

이 신전에 바쳐질 재물과 신앙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다.

史家들은 이런 행위를 기록하여 歷史를 쓰고

역사속에 쓰여진 각종 행위들은 건축과 회화등으로 구분했으며

후세인들은 이 행위를 근거로 文化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안데스의 잉카나 유카탄의 아즈텍에는 글(文)이 없다.

그들에게 역사는 口傳으로 전해지는 것이 전부였으며

의사전달은 대부분 입으로 전해지고 필요한 경우 그림으로 그 뜻을 전달했으나

그들은 글이 없어도 의사소통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들의 삶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이 말하는(?) 모든것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지녔다.

이들에게 두뇌는 사물을 판단할때 쓰여지는 도구일 뿐

사리를 구분하는데 필요한 인체의 장치가 아니었다.


신비롭기조차한 햇볕이다. 늘 보던 빛인데 느낌이 다르다.

우르밤바의 성스러운계곡에 흩어진채 산재해 있는 유적들과

멕시코시티의 '인류문화사박물관'에는 그 사실들을 증명해 주는

각종 유물들이 엄청나게 쌓여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려는 '속마음'을 잃지 못하고

外式으로 치장된 '꼬리표'에 정신을 잃고 있다.


이른바 오래된 유물 또는 귀한유물로 꼬리표가 달린 그 유물들은

인류문화사를 상당히 왜곡하고 있으며 그 정체성 또한 부정하고 있는,

인간이 만든 가장 우스광스러운 '작품'인데

이들도 인간의 먼 조상이 '유인원'이라 말하려고 있고

이들 학문은 '침략자'들이 만든 '고증'에 매달리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대부분의 주장중에 확신할만한 근거는 그 유물의 추정연대와 관련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 가운데도 '끼워맞추는 흔적'이 다분한데

그것은 그 유물들이 말하고자 하는 왜곡된 '진실'이다.


잉카인들도 무자비한 침략과 약탈을 일삼았고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침략과 약탈을 빼면 쓸 역사가 없을 정도이나

역사란, 패자가 쓰는 '일기장'과 같아서 주관적관점이 주를 이루고 있는 글이다.

그러므로 특정 역사를 들여다 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들여다 봐야 할것들이 그땅에 살았던 토착민들의 이른바 문화의 흔적들이다.


성스러운계곡과 마츄피츄에서 나는 속으로 많이도 울었다.

왜...꼰도르가 어느날 날아가버린 후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혹시나해서 다시 들여다 본

 주인없는 이 폐허의 도시에서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이 노래가 왜 이토록 오래토록 연주되고 사랑받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츄피츄에 방목되어 있는 잉카의 동물 야마...

인디오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간직한...알파카와 다른




꼰도르는 잉카인들이 숭배하던 하늘(sky)의 神이며

그들이 늘 그리던 천국(heaven)을 이어주는 메신저와 같은 천사였다.

땅에서는 퓨마가 그역할을 땅속에서는 뱀이 그 역할을 맡았는데

꼰드로는 늘 그들이 꿈꾸던 '자유'를 너무도 닮아 있는 신앙의 모티브였다.


'샤먼'은 퉁구스만주어로 '아는사람'이란 뜻의 shaman에서 유래된것으로

주로 시베리아인들이나 우랄 알타이어족에서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자를 말하는 것으로

 '샤머니즘'은 그런 능력을 가진자를 일컫는 것일것이나

비단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는것을 보면

우리와 인성들이 많이 닮아있는 잉카인들을 통해서 '종교의 원형'을 다시금 보게 되고

그들의 잃어버린 '신앙'을 그리워 하는 노래가 'El condor pasa'가 아닌가 여겨진다.



 

잉카의 텃밭에 풀들만 무성하다. 아침햇살을 받은 이 풀들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산허리로 그어진 줄이 잉카트레일인데 우린 저 길을 걷지 않고 다른 트레일을 거쳤다. 



잉카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은 산간 오지며 그들의 농토는 산비탈이다.

안데스는 대부분 그런 지역이며 열대우림이 들어선 아마존보다 주거에 알맞다.

그들의 주거형태는 움막과 같은 집이며 취사도구들 대부분이

原始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잉카인들의 생활상을 마치 화려한 문화로 포장하는 것은

'침략자'들의 침략행위를 미화하는 한 행위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매우 위험하다.


내가 잉카트레일을 하면서 깨뜨린 첫번재 편견이 바로 그것이었다.

잉카인들의 화려한 문화란, 제사장의 그릇된 지배문화며 지배자의 문화이자

침략자들의 문화일 뿐 토착 원주민들의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문화였으므로

이 노래를 들으며 그들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이것은 마치 '삼천궁녀'를 그리워하는 '전설'과 같은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

실상은 전혀 '왜곡되어 있는 사실'과 다르다.

혜은이 마츄피츄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다.




이 노래또한 작사가가 자신들의 '논리'에 적당한 어휘를 골라 쓴 흔적이 보인다.

짐작컨데 이 작사가는 '침략자'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다.


...(중략)

꾸스꼬(잉카제국의 수도)에서 날 기다려 다오
중앙광장에서 말야
그래서 우리 함께 마추피추와
후야나피추도 걸어 보자꾸나.


전술한바와 같이 잉카의 토착민들은 성스러운 계곡이나 마츄피츄와 같은 곳에서

살 수도 없고 살 계급이 되지도 못하는데 무슨 마츄피츄와 같은 곳을 걷자고 하는지...

마츄피츄는 오늘날 도시에 조경된 공원이 아니고 놀이터도 아니며

잉카의 백성들이 그렇게 한가하게 다닐 시간이나 공간이 되지 못했다.

다만, 이 곡은 이들의 정서에 매우 부합되어서

이 곡을 들을 때 마다 마치 '히브리노예'들이 자유를 찾아서 행진하고 있는듯한 착각에 빠지는데

그것은 그들을 구속한 지배자들로 부터 해방을 꿈꾸는 정서가 깊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모습을 드러낸 마츄피츄 전경...그들은 이곳의 한 봉우리를 깍아서 이 터전을 만들었다.



나는 혜은과 함께 잉카트레일을 하면서 사력(?)을 다해서 이곳에 당도했다.

이들과 전혀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었지만

인간이 걸어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체험을 통해서

잉카인들을 이해해 보려고 수도없이 노력했지만 헛수고 였다.

'얼치기'들이 소개하는 마츄피츄의 지배자였던 잉카인들은 그 키가 2m도 넘는 거인이었는데

왜 지금은 그런 '거인'을 볼 수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들이 지각의 변동이 있기전에

태평양의 솔로몬제도에 사는 거인과 같은 존재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오지 않았나 상상이 되었다.

이스터섬이나 피지등지에 흩어져 있는 유물들과 흡사한 것은 '거석문화'였다.




우리와 체구가 비슷한 인간들이 하루종일 뚝딱 거려도 진척이 없는 일을

인디오들이 대신해서 만들었다니 지배자들의 지배구조와 논리하며 그 강도는

요즘 사람들이 상상도하지 못할 일들이며

그들이 만든 건축물 속에 있었다는 '황금'이나 '장식품' 조차도

이곳을 지배한 에스파냐인들에게는 알려진것 보다 훨씬 초라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거대석축사원에 그런 유물들이 '인테리어'될만한 장소나 장치가 없었다.

오히려 피사로와 그 일행들은 본국에 보고할 '전리품'을 두고

무척이나 고민했을 것으로 보이며 그 부하들은 잉카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이들의 '황금찾기'에 혈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잉카인들의 유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한때 그들이 약탈한 금들 때문에 유럽의 금시장이 인플레를 격었다는 사실은

순전히 뻥!~이자 침소봉대한 하수인들의 헛소문에 불과하다.

그 덕분에 오히려 신비스러워진것이 잉카의 문화가 되었다.

역사는 그렇게 또 아이러니를 만들고

그 유적으로 침략자의 후손들과 토착인디오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내가

이 마츄피츄에서 해후하고 있다. 웃긴다.





나도 한동안 저 도시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겼다.


레옹은 아침일찍 호텔로 찾아 왔다.

그가 손에 든 것은 두장의 티켓이었다.

그 티켓에는 마츄피츄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또 다른 한장의 티켓에는 내가 '꿈의 기차'라 불렀던 '페루기차표'였다.

오토밀과 쥬스와 커피로 간단히 조식을 마치고 가벼운 차림으로 호텔을 나섰다.

아구아깔리엔떼에는 세계각지에서 온 관광객들과 트레커들로 붐볐다.

아구아깔리엔떼 역에서 가까운 곳에서 버스를 탓다.






아직도 이 계곡에는 햇볕이 들지 않아 쌀랑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추위를 느꼈다.

나흘간의 트레킹으로 많이도 피곤했지만

그토록 보고싶어햇던 마츄피츄로 인해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어제 우리가 걸어왔던 그 길을 따라서 버스가 움직이다가

우르밤바강을 건너서 버스는 좌회전 우회전을 반복했다.

지그재그로 닦아놓은 마츄피츄로 가는길은 험했다.

몇몇 트래커들은 이 길을 걸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 길을 다시 걸어서 올라가야 된다면 한 이틀 더 쉬고 올라야 했을지 모른다.

하이램빙엄이 빌카밤바를 만나기 전에 원주민들의 소문으로 찾은 이 유적이

빙엄을 곤혹스럽게 했을지 모르지만

어쨌던 빙엄의 노력으로 50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우리가 이 유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빙엄은 대단한 발견을 했으며

빙엄의 이 발견으로 페루는 잉카문화 재건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

이 유적이 없다면 페루는 남미에서 '종갓집'구실을 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마츄피츄의 입구에는 패스트푸드를 판매하는 상점과 관리사무소가 함께 있다.

관리사무소에 배낭과 큰짐을 맡기고 사무소 뒷편의 길을 다라서 올라가자

먼 산 봉우리에서 볕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 한편으로 장엄하게 펼쳐진 이 공중의 도시가 실체를 드러냈다.

사람들은 너나할것 없이 먹이를 본 동물같은 감각으로 셔터를 눌러댓다.

그리고 한 동안 그 광경에 홀린듯 말없이 지켜보다가

이 도시가 잘 바라보이는 언덕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랬고 혜은도 그랬다.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만 보앗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세계 어디서도 이와같은 감명을 주는 건축물을 본적이 없을 정도로

그 위용과 건축된 장소에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한편으로는 이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과 노동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초에 창조주는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들은 바벨탑을 만들고 또 창조주를 대적했다.

인간의 위대함은 창조주에게 있지만

인간 스스로 그 위대함을 드 높이려는 시도와 교만함으로 스스로 자멸했다.


창조주는 그 바벨탑을 넘어 뜨리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며

인간끼리 교통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로부터 인간은 고아처럼 버려졌고

교만한 인간들은 도처에 또다시 성전을 짓고 있다.


창조주가 바라는 것은

썩어져 가는 성전건축이 아니라

잃어버린 창조주를 되찾는 노력이며

그것은 창조주가 만든 인간의 마음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천년을 버텨 온 저 돌무더기나

또 수천년을 더 견딘 인간들의 육신속에

창조주의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으면

그 형상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안데스에 울려 퍼지는 간절한 이 노래는

꼰돌을 다시 불러들이는 의식이자

처음인간 인디오들의 간절한 기도다.


꼰돌은 아직도 안데스에 머물고 있는데

교만한 인간들 눈에 그 꼰돌이 보이지 않는다.


꼰돌이 슬퍼하며

저 안데스를 배회하고 있다.


노숙자처럼 버려진 꼰돌

잃어버린 아버지, 잃어버린 아나로그 곁에서


사람들은

황금사원을 꿈꾸며 홀로 버려져 있다.


그들은 머리만 달린 디지털에이리언들이다.


나는 누구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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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Zou willen dat 't eeuwig duren kon
Wij tesaam,
steeds opnieuw,
zoals 't begon.
Ik wou dat ik nu dicht bij jou kon zijn
Heerlijk warm
in je sterke armen
maak ik me klein

Met jou kan ik 't leven aan
Jij bent voor mij heel m'n bestaan
Mijn sprookjesprins, m'n diamant
De haven van m'n veilig land
Mijn veilig land

'k Zou willen dat je altijd bij me bleef
Bij elkaar
jij en ik
zolang ik leef.
'k Wou dat ik jou kon geven zonder spijt
Wat je vraagt
steeds opnieuw
maar geef me tijd.


하늘의 왕자, 위대한 꼰도르야
날 집으로 데려다 주렴, 저 안데스까지...

위대한 꼰도르야
내 잉카형제들이 있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그들이 가장 보고 싶구나...!

아... 위대한 꼰도르야...

꾸스꼬(잉카제국의 수도)에서 날 기다려 다오
중앙광장에서 말야
그래서 우리 함께 마추피추와
후야나피추도 걸어 보자꾸나.

(이 가사는 케추아어를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번역한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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