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대접 속 '매헌 윤봉길' 의사,
우리 부끄러워 해야!!
오늘은 조국광복 63주년을 맞이하는 실로 뜻 깊은 날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일제로 부터 '자유'를 찾아서 조국광복을 맞이한지 63년이 흘렀다는 이야깁니다.이 뜻깊은 날에 평소 몇번 찾아 가 봤던 매헌 윤봉길의사의 기념관이 있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선생의 동상이 모셔져 있는 시민의 숲에는 아침 일찍부터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찢는 듯 했습니다.
마치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국광복 63년을 맞이했건만 우리에겐 광복의 의미가 없는듯 서러워 우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윤봉길 의사는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이자 시인이며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광현당에서 태어났으며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 육군형무소金澤陸軍刑務所에서 총살 당했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농민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선생은. 1929년 오치서숙을 졸업한 윤봉길은 농촌계몽활동, 농촌부흥운동, 야학 활동, 독서회운동 등을 시작하면서 1927년 농민독본 3권을 저술하였습니다.
1928년에는 부흥원 설립을 기념하는 공연인 우화 <토끼와 여우>의 공연과 월례강연회를 개최하였으며 기사년己巳年 일기日記를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1930년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라고 하는 유명한 글귀를 남기고 집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의 운명과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르는 운명적인 여행이었고
그 여행으로 우리가 조국광복의 기틀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서 상하이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야채장사를 하던 중에
조국독립의 뜻을 품고 1931년 겨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인 김구선생을 찾아가서
독립운동에 몸 바칠 각오임을 호소하며 그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습니다.
김구선생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훙커우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인 천장절天長節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행사를 폭탄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며,
협의 끝에 윤봉길이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첫 번째 실험에서 폭탄이 터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실험을 한 것입니다.
윤봉길은 말쑥한 차림에 오른손에는 일장기, 왼손에는 물통과 도시락으로
11시가 되자 중국주둔 일본군(천진군) 총사령관인 사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이 등장했고
11시 50분,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윤봉길은 물통폭탄을 단상으로 힘차게 던졌습니다.
경축대 위에 폭탄이 명중한 것을 확인한 윤봉길이 다시 바닥에 놓아둔 도시락폭탄을 집어 들려는 순간 일본 헌병이 덮쳤습니다. 윤봉길은 팔목이 잡힌 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고 외쳤습니다.훙커우공원에서의 폭탄 투척을 실행한 윤봉길은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시리카와 요시노리,
상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 등을 죽이고, 총영사 무라이,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주 중국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폭탄 투척 직후 체포되어 곧바로 헌병으로 넘겨졌습니다.
윤봉길은 1932년 5월 28일 상해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1932년 11월 18일 일본 오사카로 후송되어 20일 오사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1932년 12월 19일, 윤봉길은 조국광복도 보지 못한 채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총살당했습니다.1932년 12월 19일 새벽 7시 27분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시 형무소에서는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는데 윤봉길은 형틀에 묶인 채 미간에 총알을 맞고 13분 뒤에 숨졌고 시신은 아무렇게나 수습돼 가나자와 노다산 공동묘지 관리소로 가는 길 한복판에 표식도 없이 암매장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압제 일본으로 부터 조국광복에 이르기 까지 윤봉길 의사 외에도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생명이 담보 되었고 마침내 오늘과 같이 조국광복 6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로 부터 독립된 후에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채 오늘날에 이르렀고
이런 모습은 보혁갈등을 유발하며 여전히 국론을 분열하는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진 선조들은 조국광복의 주역임에도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이고 독립유공자들이 친일후손들 보다 홀대를 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최근에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는 '양재 시민의 숲'의 이름을 조국광복 63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시와 윤봉길 의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매헌 공원'으로 바꾸자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고승덕(서초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일 서울시에 '공원명 변경에 관한 의견' 공문을 보내 양재동 '시민의 숲'의 명칭을 '매헌공원'으로 바꾸지 말아달라고 공식 요청했다고 전해 집니다.
그가 명칭변경을 바꾸지 말도록 한 이유는 "윤 의사는 서초구와 아무 연고가 없는 등 여러 문제점이 있다. 또 매헌기념관이 특별히 서초구 내에 있을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집니다.
서울 서초구는 대한민국 땅이 아니고 조국광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시민들이 모여사는 것일까요?
제가 이른아침 시민의 숲을 찾아서 다시금 윤봉길의사를 돌아 본 이유였습니다.
조국과 정부가 애국선열들에 대한 푸대접을 계속하는 한 광복63주년의 의미는
한낱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마음없는 허례허식을 하기 위한 숫자에 불과 합니다.
조국이 스스로 호국선열들을 업신여기면 누가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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